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유쾌하게 되는 길 행3:11-21

하나님은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 삶이 회복되어 새롭고 기쁨이 가득찬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 본문은 이러한 삶을 유쾌해진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베드로 설교를 통해서 유쾌함에 이르게 길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첫째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유쾌함에 이르려면 사람과 환경만을 바라보던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던 사람이 치유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몰려왔다. 이 때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설교하였다. 이 말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유쾌해지도록 정한 길은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외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유쾌함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정에 유쾌함이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는 직장생활에 유쾌함이 임한다. 예배도, 찬양도 봉사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면 유쾌함에 이른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유쾌하게 하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게 된다.

둘째 죄를 처리하여야 한다.
죄는 영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우리를 파괴하여 유쾌함을 빼앗아간다. 말씀을 읽고 들어도 죄가 있으면 영혼은 계속 메말라간다. 처리되지 않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말씀한다. 유쾌한 삶을 위해서는 회개로 죄를 처리해야 한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희게하시고(사1:18) 회개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사 43:25, 히10:17) 회개로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은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유쾌함에 이르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과 죽음, 저주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엡1:7, 롬3:24, 골1:14) 그래서 행4:12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말씀한다.

셋째 예수를 전하야 한다.
섬기는 것보다 대접받고 존경받고 칭찬 받을 때 기쁘고 행복하지만 이보다 유쾌해지는 길이 있다. 바로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할 때이다. 대접받으면 나만 행복해지지만 예수님이 잘 전해지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나 뿐 아니라 복음을 받은 사람도 유쾌함에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 위해서 핍박받고, 예수님 때문에 악한 말을 듣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 말씀을 깨닫고 실천한 사림이다. 그는 자유자였으나 스스로 종이 되었다. 자신이 원치않는 유대인처럼 되기도 하고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되기도 하였다. 그 이유를 고전9장 23절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바울의 일생은 유쾌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결론
범사에 예수님을 바라보면 불쾌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유쾌함에 이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유쾌함을 막는 죄를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면 전하는 자도 행복해지고 듣는 자에게도 유쾌함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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