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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강하고 담대하라 왕상17:1-7

강하고 담대하라 왕상17:1-7


신앙생활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신앙생활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성도는 쓰러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 믿음의 승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승리자로 부르셨다. 성도의 승리의 근거는 십자가 복음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믿음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한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함을 가지는 것은 믿음을 지키며 사는 한 가지 방법이다. 
어떻게 마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을 만나 밤새 고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를 걸어 
찾아가셨다. 이 때 제자들이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할 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 말라고 밝히자
”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나아간다. 그러나 잠시 후에 다시 바다에 빠지게 된다. 
마태복음 14장 13절에 그 이유를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는 악한 왕 아합 앞에서도 담대하여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 환경을 바라보는 
순간 한 여자 이세벨이 말을 전해만 듣고도 극한 우울증에 빠진다.


(왕상19:1-7) 동일한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믿음에 견고하였지만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나약한 사람이 된 것이다. 바울을 보라. 그는 살 소망까지 끊어진 환경에 
처할 때 바울은 하나님을 바라고(고후1:8)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라고 권하였다. 다윗은 눈물이 
음식이 되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일어서는 신앙의 본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
(시42:3-5)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함으로 믿음을 지켜 승리할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을 때였다. 2절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절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우리를 지켜준다. 잠7:1-4은 말씀을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한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잠 7: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말씀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자.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자. 레마의 말씀을 들어 붙잡을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라. 말씀을 지키기를 쉬임 없이 힘쓰라. 이런 사람에게 말씀은 하나님의 복이 된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결론

그 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더 나아가 세상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통로로 불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항상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믿는 자라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궤계가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마음과 담대함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하게 살기 위해 실천할 교훈을 배웠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은 모두가 마귀의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살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을 때 믿음을 지키며 살았다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첫째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기도하자. 둘째 말씀 붙잡고 살기를 기도하자.



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교회에는 성령충만과 관련해서 세 부류의 교인들이 있다. 첫째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둘째 성령충만을 사모하나 회개하지 않는 장애물 때문에 충만하지

못한 교인들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닮아 자라가는 교인들이 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들에 신앙생활이 쉽고 즐겁고 전해 주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러한가?

첫째 성령충만하면 기쁨이 충만해 진다.

신앙생활을 할 때 새벽기도, 봉사, 주일성수 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힘든 교인들이 있는 반면 신앙
생활이 쉽고 즐겁다고 말하는 교인들도 있다. 차이는 기쁨이다 기쁨이 있으면 신앙은 쉽지만 기쁨이

없으면 신앙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영역이 된다. 남녀가 연애하면서 서로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물질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쁨으로 하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이

생긴다. 이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비록 취직이 안되더라도 기뻐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다. 내 뜻대로 안될 때도 기뻐한다. 성령이 주는 기쁨은 복음을 경험하게 하여 신앙
생활이 쉽고 즐겁게 한다.

둘째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 바라보는 관심도 변한다. 어린아이 신앙은 신앙의 초점이 자기 중심이 되고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질 수록 신앙의 초점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겨진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신앙이 보이는 것에 머물기를 바란다. 이런 신앙은

작은 미혹에도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은 오셔서 썩어서 없어지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기고 살던 우리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에 바라보게 한다. 특히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긴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바라본 신앙의 승리자이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가지도 용서하며 죽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유가 무엇인가?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자 시각이 변한 것이다. 하늘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는 시각으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셋째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나타난다.

우리는 가끔 사람 앞에 서면 말을 못한다는 사람이 사람 앞에 설 때 여유있게 지혜롭고도 유창하게

말하는 성도를 만나게 된다. 또 실력이 없어서 아무 것도 맡기지 말라고 하면서도 일단 맡기면

전문가가 뺨칠 만할 정도로 잘 해내는 성도들도 만난다. 내숭을 떨어서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급한 성격이나 도마의 지나친 의심하는 성품 그리고

야고보.요한의 극한 경쟁심은 복음을 전하는데 분명한 장애 요소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복음전하는

귀한 그릇들이 되었다. 이것도 성령충만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부족은 핸디캡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기회이다.

결론

성도는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술 취하면 잠시 기쁨과 담대함을 얻지만마귀에게

붙들려 영과 마음이 혼미케 되고 주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가 된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게

한다. 성령충만함을 받자. 성령충만을 막는 죄를 회개하고 사모하여 기도하자. 하나님이 약속대로 성령
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을 날마다 기대하자.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 요4:19-30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 요4:19-30

하나님 이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배, 선교, 교육, 봉사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이 중에 예배에 대해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 하도록 강조하며 온전한 예배자가 되도록 강조한다.

첫째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왜 중요한가?

1. 예배를 통해서 잃어버린 복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 토지, 교제의 복을 상실하였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땀흘려도 수고한 만큼 얻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잃고
인간 관계마저 깨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잃어버린 복을 회복할 길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레위기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예배임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나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출29:42-43, 출25:22) 이것이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는
자가 죄를 이기는 힘을 얻고 예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이 보호와 치료, 부족함이 없게
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이유다.
2.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행할 가장 합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어떻게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 은 이사야와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이것이 빠지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될 것이다. 드리는 예배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1.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2.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한다
    진정에 담긴 핵심적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예배는 흠없는 것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마음, 뜻,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 하며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여야 한다. 구별된 삶을 살려고
    힘쓰고, 행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하며 드는 예배이다
3.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찬양을 선택하고 부를 때,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전할 때 성령의 감동과 인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예배드릴 때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신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에 이르게 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새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나가 예수님을
    전하였듯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결론

하나님 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예배, 말씀을 좇아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자에게 잃어버린 생명, 토지, 교제의 복을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이 예배에 성공하면 개인이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서 성령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예배에 성공하여 삶에도 승리하자.
예배에 성공하여 세상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자.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칼럼을 쓰는 입장

제가 칼럼을 쓰는 입장에 관하여 두어 번 독자 여러 분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보통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되는 책(학자의 저서, 고전, 경전 등)이나
학자나 성직자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칼럼의 내용에 나의 경험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사실이 아닌 자기 나름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허상에 불과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러한 경지의 존재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두 번째는 아는 것을 말하는가, 된 것을 말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말과 글은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되어 말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면서 얻어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문헌을 참고하고 요즘은 인터넷을 뒤져서 그것을 토대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경지만큼의 칼럼을 썼습니다.

 또한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책에서, 세상의 귀감(龜鑑)이 되는 사람에게서, 신앙이나
수양(修養)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은연 중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면 그냥
그렇게 삽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얼마든지, 그리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어떠한
말보다도 진실되고 차원 높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여도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서 칼럼 쓰기를 제의 받고는 자신이 없어 두 달여를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써보겠다고
하였더니 한번 시작하면 일년은 써야 된다는 말에 또 망설이는 나를 보더니 최소한 여섯 달은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되든 한번 써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아홉 해째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주제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꺼내어 자판을
두들기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정도 그러한 경지가 되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주제가 떠오르지만 그때그때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저의 칼럼은 허상의 마음세상에서 참 세상에 한 발짝 내디딘 입장에서 참 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고 좋은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하시어 다 함께 참의 존재가 되어 하나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은 우리의 생활에 3가지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죄로 막힌 하나님과 관계를
치유하고 이웃과 관계를 치유한다. 그리고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이러한 권능으로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 믿게 함으로 치유하여 회복하신다. 성령의 권능의 나타남에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떤 믿음을 통해서 나타날까?

첫째 성경을 기반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이어야 한다.

바른 신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성령의 인도를 믿어야 한다. 성경만을 고집하며 성령을
무시하거나 성경 없는 성령의 인도만을 주장한다면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 없이 말씀만을
외치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에 실패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사두개인들은 어떤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 성경도 모른다고 책망을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없이
말씀만 붙잡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말씀 없이 성령만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듯이 성령없이 말씀
만을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은 말씀의 기초 위에 성령의 인도를 믿는 신앙이다.

둘째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구현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구원 이후에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신다. 또 구원얻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신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성령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뵙자
말자 거룩해지기 시작했다. 모세가 온 지면에 있는 사람보다 온유한 자가 된 것도 온유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을 던지는 백성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의 고민은 행하는 신앙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이 되게 하신다.

셋째. 육신을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 경은 육신을 좇으면 망한다며 엄하게 경고한다. 육신은 타락한 죄악의 성품으로 마귀를 좇아 스스로를
도적질하고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한 때 선을 원하는데 자기 안에 다른 것이 자신이 미워하는 악을
행하게 한다고 탄식하였다.(롬7:15, 롬7:21-23) 바울은 악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육신이고 이 육신은
성령을 좇을 때에 이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갈5:16-17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른 믿음은 육신을 이기기 위해서
금식하고, 결심하는 것보다 성령을 좇는 것을 따르는 신앙이다.

결론

성령의 권능은 믿음을 통로로 나타나 개인,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성령이 권능을
나타나기 원하는 자마다 자신의 믿음이 바른 믿음인가를 살펴야 한다.

1. 당신의 믿음은 말씀을 기초하여 성령께 인도하심을 믿는 신앙인가?

2.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생활 속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인가?

3. 당신은 성령을 좇아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신앙인가?

우리 교회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관계회복의 열쇠 히10:19-25

관계회복의 열쇠 히10:19-25


대인관계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써 신앙은 물론이고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대인관계의
원리를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첫째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또 관계를 잘 맺으려고
시도하지만 더 큰 상처만 주고받는 경험들도 있다. 사람으로 할 수 없을 때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라. 1. 관계의 문이 열린다. 2. 남의 탓 만하는 사람도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한다.
3. 원수를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둘째 내적 상처를 치유하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사랑 받으며 살 존재로 태어난다. 그래서 충분하게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나쁜 경험이나 죄를 통해서도 상처를 받는다. 받은 내적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이것은 마음과 기억, 감정에 쌓여 관계를 깨는 장애물이 된다. 또 내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영적 성숙도 막는다.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를 갖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어 나쁜 자화상과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용서와 회개를 통해 심령 속에 쌓여 있는 영적 쓰레기를 제거하여 그리스도 안의 온전한 자로
서기를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어떻게 내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1. 예수 그리스도 피를 의지하라.
)히10:19(  2.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확신하라. 3. 인내하라.)약1:4( 4. 참된 통회와 겸손의 마음
)사57:15하반절, 시34:18, 약5:16(


셋째, 관계를 위해 헌신하라.


인간관계에 승리하기 위한 근거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외적. 내적 질병을
치유하고 죄를 사하신 것을 믿고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근거 위에서 인간 관계에 승리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1. 사람은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차이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단지 너하고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2. 주 안에서 만남은 동역자임을 신뢰하라.
    경쟁자로 여길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일정한 벽을 쌓고 대화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결고 바른 인간관계가 세워지기 어렵다.


3. 칭찬과 격려자가 되기를 힘스라.
    경솔한 말 한디로 원수가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 잘해서 평생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랑과 선행의

    격려는 인간관계를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다.
    히10: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결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의 관계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인은 관계의
승리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관계의 승리자로서 삶의 승리자 신앙의
승리자의 삶을 살아야한다.

관계의 승리자의 삶을 위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

첫째 하나님께 나가라.
둘째 내적 상처를 치유하라.
셋째 관계회복을 위해 헌신하라.


2011년 11월 2일 수요일

삶을 관리하라 삿14:1-4

삶을 관리하라 삿14:1-4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을 마친 후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 하셔야 사람의 행하는 모든 일이 완성된다는 믿음과 아울러 하나님은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신다는 믿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일에도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관리해야 한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12대 사사로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의
삶을 관리하지 못해 믿음을 잃어버렸다. 삼손을 통해 믿고 행하기 위해 어떻게 삶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 만남을 관리해야 한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부름을 받은 자로서 기대가 되는 출발은 하였지만

한 여자를 잘못 만나서 기대 밖의 인생으로 전락하였다. 삼손의 실패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만남을 관리하는데 있어야
할 교훈을 준다. 삼손은 3가지 면 때문에 만남을 관리하지 못했다. 1(보는 것의 실패, 2(자신만을 위한 선택, 3(가지
않아야 할 곳을 찾아감. 그러므로 축복된 만남을 위해서는 반대로만 하면 된다. 1(잘 보아야 한다. 2(하나님의 영광에
유익이 되는 만남을 가져야 한다.)창1:26( 3(가지 않아야 할 곳을 피해야 만남이 관리된다. 승리의 비밀은 넘어질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창39:7-9(

둘째 약점을 관리하라.


사람은 약점이 인생을 실패케 만들고 장점이 인생을 강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점이라도 잘 관리함을

통해서 얼마든지 신앙과 삶을 더 성숙케 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삼손은 남자 앞에는 강하고 담대하나 여자 앞에는
잘 허물어지는 약점의 사람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성에 약한 자신의 약점을 알고 대처하지 못해 믿음을 잃음으로써 두
눈이 뽑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삼손을 통해 배우는 약점 관리의 교훈이 있다. 1)먼저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라. 약점을 알면 아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2)약점을 개선하는 법을 배우라.(삿14:3) 삼손이 부모님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삼손의 약점은 능히 극복될 수 있었다.(3절) 그러나 삼손은 약점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듣고 배우려고
하지 않아서 약점 때문에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관리되지 않는 약점은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약점이라고 관리되면 하나님의 더 큰 역사를 경험케 하는 믿음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사명을 관리하라.


나실인으로 바쳐진 삼손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 구별됨의 증표로 머리를 길러야 했다. 삼손은 머리를 기르고

사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 초인적인 삶을 살았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비밀이었다. 이처럼 사명은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살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이다. 하나님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을 복주사 그가 시작한 일을 이루어 완성시키신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 성경적
가르침이다. 사명은 축복의 열쇠이다. 사명의 자리에 있을 때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유혹을 이기게 되며 믿음의 역사를
경험케 된다. 그래서 사탄은 끊임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하여 사명의 자리를 떠나게 만든다. 그러나 끝까지
사명을 붙잡는 자에게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결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보시고 승리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믿음으로 행한 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후에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된다. 삼손이 삶의 관리하지 않은 것 때문에 믿음을 잃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해 삶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교훈해 준다. 그것은 만남과 약점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명을 잘 관리함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4:1-14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4:1-14

마땅히 해야할 사명을 포기하면 그것은 신앙의 담대함을 잃어 확신 있게 살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애에 부딪혀 성전 재건을 그만 두었을 때 그들의 신앙과 삶은 점점 병들어 갔다. 하나님은 사명회복의
길을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이심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스가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의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할 것인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에게 오셔서 이 어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문제의 산을 옮겨 달라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때때로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얼마나 기도했을까? 그런데 14년이나 성전재건의 문을 열리지 않던 어느날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너희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네가 너희에게로 가겠다. 먼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문제의 산을 옮기시겠다는
것이다. (슥1:3)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마땅히 해야 할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 우리는 먼저 할
것이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임을 기억하자.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예배 없는 데서 예배의 자리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시각을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리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성령께서 회복시키신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짓 고소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는 성전 재건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성전재건이 중단된지
14년간이 지나면서 백성들의 마음에는  성전 재건은 넘을 수 없는 큰산으로 인식되어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집이나 가꾸는 현실적 향락에 빠져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이는 힘과 능으로 안되지만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불가능해서 못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모든 준비가 다 되었던 것이 왜 중단되었는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도 재건
될 상황이 아닌데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되어지는 것임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가 사명을 이루는 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주실 때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 또 자격이 안되는 우리에게 조건없이 호의를 베풀어 주셨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 시편103편에서 잊지 말라고 말했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신 은혜 또 생명을 파멸에서 건지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왜 은혜를 간직하기를 원했을까? 은혜는 하나님께 맡겨주신 사명을 쉽고 즐겁게 감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은혜가 떨어지면 짐이 되어 여러 이유를 대며 사명을 놓아버린다. 아무리 큰 일도 은혜만 있으면 특권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잃어버린 사명 회복을 위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이다.

결론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심으로(요17:4) 사명받은 자의 본이 되셨다.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회복하여 그 일에 열매를 거두자.

1.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2. 성령으로 회복을 기대하라.
3. 은혜를 받자.

런던 순복음 교회 담임 김용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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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문제를 풀어야 탁월해 진다. 행6:1-7

문제를 풀어야 탁월해 진다. 행6:1-7

문제를 만나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문제가 기회가 될 때가 있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문제를 푸는 원리가 있다.

첫째 문제는 풀기 위해서 주어진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자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을 원망한다.
문제를 보고 남을 원망하는 것은 문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는
나쁜 일에서 발생하고 나쁜 결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처럼 문제는 부흥할 때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문제가 풀려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온다고 바라보아야 한다.
사도들은 원망의 문제가 생기자 즉시로 제자들을 불러모아 자신들이 말씀 전함에 소홀함과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뽑아 그들에게 공궤의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것을 말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들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여 결국은 교회를 깰 수 있는 문제는 교회를 견고케 하는
기회가 된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둘째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라.

헬라파 과부들의 매일 구제에 빠진 것 때문에 발생한 원망사건을 해결할 때 사도들은 이해 당사자를
불러 오해를 해소시키려고 하는 대신에 자신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겠다고 결정한다.
이것은 사도들이 문제의 본질은 표면에 드러난 것처럼 구제에 빠졌느냐 아닌가라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구제를 잘 했어도 원망할 수 있고 구제를 빠뜨렸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1. 은혜의 수위 문제이다.
은혜가 떨어지면 가장 먼저 입술이 고장난다. 무익한 말, 비판, 원망의 상처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은혜의
수위가 낮아졌다는 경고등이 울린 것과 같다. 아무리 자고 쉬어도 피곤하고, 말씀을 들어도 가슴이 냉냉하다면
은혜받으라는 신호이다.

2. 칭찬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도들은 칭찬 듣는 사람을 추천 받아 그들에게 구제의 일을 맡긴다. 문제의 본질을 사람, 관계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관계가 좋으면 큰 문제도 작게 여겨지고 용납된다. 칭찬 받는 사람이 잘못을 범해도 실수로 용납해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작은 문제도 큰 문제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칭찬을 통해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탄은 칭찬이 사람을 세우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칭찬하지 못하도록 덫을
설치한다. ‘아부하지 말라, 편애하지 말라.’는 말을 퍼트려 칭찬하지 못할 분위기가 되게 한다. 잠27:21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칭찬은 자신을 문제 해결자가 되게 할 뿐 아니라
남을 문제 해결자가 되게 한다.

결론

선생님은 학생에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내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풀 수 있는 문제를 허락하신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문제를 풀어 기회로
삼기 위해서 1. 문제를 항상 풀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라. 2. 은혜의 수위를 높이자. 3. 칭찬 듣는 사람이 되고
칭찬을 통해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되자.


런던 순복음 교회 담임 김용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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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수요일

침묵만 잘해도 가나안에 들어간다 수6:1-11

침묵만 잘해도  가나안에 들어간다 수6:1-11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자로 성숙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여리고성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막듯이 우리 신앙성숙을 막는 여리고성들이 많이 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사건은 우리의 여리고성은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게 되는지를 교훈해 준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10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신뢰함으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38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으로 여기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그것은 과거에는 불신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안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여리고성을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7바퀴를 돌은 후에 제사장의 양각 나팔 소리에
맞추어 크게 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에게 약속대로 우리를 막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주신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보존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로고스 말씀이지만 성령께서 감동하실 때 우리를 향한 약속의 말씀 즉 레에마 말씀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면 그 말씀이 이루어 질 것을 믿고 받은 약속을 끝까지 보존해야 한다. 보이는 현실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친히 이루신다. 예) 나아만 장군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 수 있는가?
1. 인내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다가 의심하여 멈추었다면 여리고성을 그 대로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듯이 (히6:13-150 때로는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들더라도 인내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2. 입술을 관리하라. 어떻게 입술을 관리할 수 있을까? 엡4:29은 할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말씀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1) 더러운 말을 금하라. - 비판, 비방, 비난의 말, 부정적이고 원망의 말, 추한 말, 악한말, 수근 수근 하는 말이 약속을
잃게 하는 더러운 말이다.
2) 선하고 은혜 끼치는 말을 하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용서합니다...
” 등의 믿음을 붙잡게 해주는 선한 말을 하라.

셋째. 침묵만 잘해도 약속이 이루어진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소리도 내지 말고 침묵하라고 명했다. 수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 믿음을 붙잡게 하는 선한 말을 할 수 없을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말하면 실수가 예상 될 때를 만날 때도 있다. 이 때 침묵하며 여리고성을 돈 이스라엘 백성처럼 침묵하라.
침묵만 잘 해도 하나님의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막는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할 수 있다.

결론 

부정적인 자는 세상을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낙관주의자는 자기의 생각대로 믿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보이신 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보이신 꿈을 막는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이루어 질 때까지 끝까지 붙잡으면 하나님이 장애물을 옮겨주신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내와 입술관리이다. 침묵을 잘 활용하여 믿음을 막는 실수를 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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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1-13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1-13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높은 건물일수록 기초도 깊게 파야 한다. 예수님 닮은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기 위해서도 기초를 잘 닦는 것이 중요하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건강하고 강력한 믿음을 세우는 기초다.
 
첫째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된다. 감사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가정에 감사가 가득하고, 직장도 감사함으로 다니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봉사도 감사함으로 행해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올 전반기 알파 수양회에 참석한 많은 성도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을 선물로 받고 기뻐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열매의 배후에는 감사함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시편50:23절 말씀을 이루셨다.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둘째 감사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라는 증거이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은 사람과 환경을 보면 결코 지킬 수 없는 명령이다. 변치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아야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신뢰할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감사한다. 하박국은 감사신앙의 사람이다.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셋째 감사는 삶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게 하는 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안에서 뿐 아니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서 경험하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이다. 성경은 감사신앙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음을 명백하게 가르친다. 예수님이 벳세다 광야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누어주자 남자만 오천명이 되는 군중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또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에 장사한 나사로를 살릴 때도 먼저 감사드리고 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오라고 명령하자 살아난 것을 본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한 밤중에 찬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자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감사의 사람이다. 사울에게 쫓기며 사경을 넘나드는 환경에서 수 없이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그것을 시로 기록한 것이 시편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다.
 
결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사람이고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다윗에게 감사를 배우자. 다윗처럼 감사를 선택하자.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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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8일 수요일

그 땅을 고칠지라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18

경수가 끊어진 사라는 과학적으로 자녀를 낳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낳게 하셨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부흥이라고 말한다. 즉, 부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며 그 본질은 영적 회복이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전 영역에서 일어난다. 어떻게 부흥이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난 곳에서 발견하는 3가지 특징들이 있다.

첫째 부흥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진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후 3차례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모두 회개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가 성도들 앞에서 “한국 땅에는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 한국은 안된다”고
생각해온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자 이것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부흥운동이 퍼져나갔다.
또 1907년에 일어난 두 번째 부흥운동도 평양 장대현 교회 집회 강사였던 길선주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죽기 전 아내 대신 재산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하다가 아무도 몰래 상당한 돈을 사취했다’고 모든 사람 앞에 상세하게 밝히고 통회 자복한
것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인 부흥운동이 되었다.

하 루에 3천명 5천명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도 회개할 때 일어난 부흥이었다.
모두 회개할 때 부흥이 일어났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대하7:14에 의하면 악한 길에서 떠나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과 같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부흥을 약속하신다.(욜2:14)

둘째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부흥하는 개인과 교회의 특징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이 있는 곳에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부흥의 모델인 초대교회 역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도들과 그 말씀을 듣고 배우는 성도들이 있었다.(행2:46)
삼상 7장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침략에 위기에 처했을 때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자
블레셋이 군사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때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만들어 패하게 만드셨다. 말씀 앞에 모일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이루신 것이다.
말씀 있는 곳에 모이라. 영적 부흥이 일어난다. 영적 부흥을 이루라.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부흥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마음을 부흥시키신다. 작은 문제에도 쉽게 낙심하고 패배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일 때 하나님은 기도로 능히 이런 마음을 이기게 하신다.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은 영적 부흥을 주신다.
기도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 더욱 가까워진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삶을 부흥케 하신다.
죄를 이기는 능력을 주신다. 오래참을 수 있는 능력,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신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대신 모든 일을 해 주신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아빠에게
말씀드리듯이 진실하게 솔직하게 기도하라. 하박국처럼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자.

결론

본문은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흥이 회개, 기도, 말씀 사랑에 근거함을 깨우쳐준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흥이 필요한 사람이다.

. 당신은 악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돌아가기를 힘쓰는 사람인가?

.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있는 곳에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인가?

. 필요한 것들이 작다하여도 솔직하게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은 당신이 부흥하기를 원하신다.

말씀 앞에 반응하여 하나님이 부흥시키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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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7일 수요일

속사람을 강건케 엡3:14-21

                 속사람을 강건케 엡3:14-21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사람도 보이는 겉사람과 보이니 않는 속사람이 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보이는 세계를 잘 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잘 가꾸어야 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했다.(고후4:18) 또한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첫째 왜 속사람이 강해져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요즘 자녀들은 과거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다. 모두가 얼굴에 윤기가 나고 평균 신장도 커졌다. 모두가 미남 미녀다. 그런데 가끔 ‘부모에게 꾸중듣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겉사람은 좋아졌지만 속사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고든 맥도널드라는 분이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늘 쫓겨다니는 인생을 사는 사람과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쫓겨다니는 삶을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종합하면 속사람이 약한 자가 쫓겨다니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속사람이 강해지면 어떤 일이 경험되어질 것인가?

1. 속사람이 강해지면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게 된다.
    마8장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중에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 
    은 죽음에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은 풍랑 만난 것을 편히 자도될 사소한 일로 해석하셨지만 제자들
    은 풍랑 만난 것을 죽을 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속사람의 차이는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게 한다.
2. 속사람이 강할수록 그리스도와 교제가 깊어진다.
3. 속사람이 강할 때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
4. 속사람이 강할 때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한다.
5. 속사람이 강할 때 낙심할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
   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둘째 어떻게 속사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1. 기도가 속사람을 강하게 한다. 사도 바울이 기도했듯이 기도하라.
2.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진다.
   성령은 중생하게 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 진리를 깨달을수록 속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해 진다. 
   예)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마을을 변화시키는 여인이 된다.
3.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될 때 속사람이 강해진다. 

결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약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환경이나 다른 요인이 아니라 그것은 속사람이 약해졌단 소리다. 속사람을 강건케 하라. 세상에서 강한 자가 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는 능력임을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능력임을 경험할 것이다. 낙심할 환경을 능히 이겨내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성령의 능력 안에 강해질 것이다. 
속사람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속사람을 강건케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자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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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1일 목요일

문제는 풀라고 주어진다.

문제는 풀라고 주어진다. 왕상19:1-8

우리는 하나님께 문제를 만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문제를 이겨내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벧전4:12, 약1:2-4) 그래서 바른 신앙은 문제 만나는 것을 탓하고 낙담하기 보다 문제가 다가올 때바다 능히 극복하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본문은 엘리야를 통해 문제를 이겨내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워보자

첫째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릴 때나 막힐 때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다. 이런 신앙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 하신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다가 바다에 빠지면서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외친 적이 있다. 마4:29-31에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시각의 문제였다. 갈멜산에서 대 승리를 거둔 엘리야가 큰 두려움에 휩싸여 죽기를 자처하고 있는가? 3절에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저가 이 형편을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던 눈이 형편을 바라보는 눈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형편을 바라보면 사소한 문제에도 낙담하며 두려워 떨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태산 같은 문제라고 당당하게 이겨내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된다. 바울을 보라.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문제를 만나고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였다. 다윗은 대적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스스로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라”고 격려하며 문제를 이겨내었다. 결국은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시각이 문제이다. 문제를 푸는 신앙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잊지 말라.

둘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
자아상이 병들면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며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게 된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늘 긴장하며 산다.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한다. 나아가 자신을 가장 중요시 여기며 ‘내가 얼마나 헌신했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 했는데...’를 중얼거리며 자주 시험에 빠진다. 이것은 사탄의 거짓 메시지에 속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아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탄은 거짓 메시지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과소 평가하거나 과대 평가하도록 미혹한다. 자아상이 공격당하면 자주 시험에 빠지며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자리에 이르지 못한다. 엘리야는 마귀의 덪에 걸린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또 “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왕상19:10)
시험을 만날 때 능히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 자녀의 자아상을 회복해야 한다.
1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아상을 가지라.(롬8:33-39)
2. 약속하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자아상을 갖자.

결론
인생에 문제는 풀라고 다가온다. 문제 올 때 이상하게 생각하여 시험에 들 것이 아니라 풀어서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자. 두 가지 기억하자.
첫째 끝까지 하나님 바라보자. 둘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아상을 가지라.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이다.’ ‘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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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유쾌하게 되는 길 행3:11-21

하나님은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 삶이 회복되어 새롭고 기쁨이 가득찬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 본문은 이러한 삶을 유쾌해진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베드로 설교를 통해서 유쾌함에 이르게 길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첫째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유쾌함에 이르려면 사람과 환경만을 바라보던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던 사람이 치유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몰려왔다. 이 때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설교하였다. 이 말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유쾌해지도록 정한 길은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외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유쾌함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정에 유쾌함이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는 직장생활에 유쾌함이 임한다. 예배도, 찬양도 봉사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면 유쾌함에 이른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유쾌하게 하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게 된다.

둘째 죄를 처리하여야 한다.
죄는 영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우리를 파괴하여 유쾌함을 빼앗아간다. 말씀을 읽고 들어도 죄가 있으면 영혼은 계속 메말라간다. 처리되지 않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말씀한다. 유쾌한 삶을 위해서는 회개로 죄를 처리해야 한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희게하시고(사1:18) 회개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사 43:25, 히10:17) 회개로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은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유쾌함에 이르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과 죽음, 저주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엡1:7, 롬3:24, 골1:14) 그래서 행4:12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말씀한다.

셋째 예수를 전하야 한다.
섬기는 것보다 대접받고 존경받고 칭찬 받을 때 기쁘고 행복하지만 이보다 유쾌해지는 길이 있다. 바로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할 때이다. 대접받으면 나만 행복해지지만 예수님이 잘 전해지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나 뿐 아니라 복음을 받은 사람도 유쾌함에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 위해서 핍박받고, 예수님 때문에 악한 말을 듣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 말씀을 깨닫고 실천한 사림이다. 그는 자유자였으나 스스로 종이 되었다. 자신이 원치않는 유대인처럼 되기도 하고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되기도 하였다. 그 이유를 고전9장 23절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바울의 일생은 유쾌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결론
범사에 예수님을 바라보면 불쾌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유쾌함에 이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유쾌함을 막는 죄를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면 전하는 자도 행복해지고 듣는 자에게도 유쾌함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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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8일 월요일

단순한 신앙이 강력하다 느6:15-16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수록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킬 줄 알게 된다. 그리고 단순화시키면 더 큰 능력이 나타난다. 신앙이 어릴 때는 복잡하다. 의문이 많고 질문이 많다. 단순하게 믿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갈수록 복잡한 것들이 점점 정리가 되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순종하고 나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신앙이 단순화되어 갈수록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난다. 어떻게 신앙이 단순화되게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첫째 단순한 신앙은 기도에서 나온다. 
환경, 사람, 문제로 신앙과 마음이 복잡해져 있어도 기도하면 신앙이 단순해진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이 보이게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하면 결국‘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단순한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믿음이 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을 때 한 사람이 벙어리 들린 아이를 데려와 고쳐 주신 적이 있다. 나중에 제자들이 왜 우리는 고칠 수 없었는지를 묻자 예수님은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심으로 기도 없는 믿음은 모양은 화려하나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심을 가르치셨다. 느헤미야는 52일 만에 불에 탄 성문, 성벽을 재건하였다. 대적들이‘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면 충분하다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단순한 믿음이 되어지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함께 협력하라.
하나님의 일을 함께 협력할수록 얻는 축복은 더 크고 넓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이면 충분하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변해간다.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완공을 기록한 느혜미야 3장에는 32절 중에서 22절에 걸쳐 29 차례나 ‘그 다음은’이라는 구절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15가지 직업을 가진 75명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기록인 것이다. 교회에는 독불장군이 없다. 강한 자 약한 자, 잘난 자 조금 못난 자가 함께 세워져 가는 곳이다. 협력하는 것이 더 어렵고 늦더라도 함께 이루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도 더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 이유는 그것이 믿음이며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셋째 장애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라. 
그리스도인은 장애물을 만나 생각과 믿음이 혼란스려워질 때“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근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의 허물, 죄악, 저주, 죽음, 질병,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여 처리하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면 장애물이 주는 혼돈, 무질서가 잠재워지고 하나님이면 충분하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충만해진다. 가나안의 12 정탐꾼을 보라.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장애물을 있는 그대로 보다가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장애물 앞에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하며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 단순한 믿음을 지켜냈다. 느헤미야는 어떠한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막는 대적들의 외적. 내적인 방해 앞에서 낙심하여 포기하지 않은 것은 방해를 절망으로 해석하지 않고 과정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본 사람들은 단순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들은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들 하였다.
결론
하나님은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환경이 어떻든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하나님이면 충분하다’고 믿고 나가는 사람을 찾으신다. 이 믿음은 단순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강력한 신앙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믿음을 사모한다. 기도를 시작하라. 하나님의 일을 협력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을 체험하라. 장애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라. 그러면 복잡한 믿음이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세워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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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 요한복음 17장 6-16절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 요한복음 17장 6-16절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믿음의 담대함을 잃고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처럼 살 때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살 때에는 스스로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구원의 기준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구원의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말씀의 반응이 다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믿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은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할 뿐 아니라 장성한 신앙인지 어린아이 신앙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어린아이들은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편식하듯이 어린아이 신앙은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해 갈수록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강력한 신앙이 된다. 

째 믿는 말씀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더라도 그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거짓으로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7:21) 고백하는 데로 살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구원받은 신앙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데로 예수님을 의지한다. 보혈에 능력있다고 말하는데로 보혈의 의지하며 산다. 구원받은 신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과 말, 행동 속에 이루어진다.  그는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다.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럽다. 하나님의 일을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다. 신앙이 자라갈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고백한다.

셋째 승리의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 때가 있다. 또 세상의 죄와 악에 물들어 영혼이 비참해 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승리의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산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중보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되고 기쁨이 충만하고 악에서 보호되기를 중보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요17:20, 롬8:34)

결론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답게 세상을 이기며 담대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리면 작은 문제 앞에도 낙담하며 뒤로 물러가는 삶이 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 죄사함을 위해 흘린 보혈을 믿자. 신앙적 회의에 빠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의 기준을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 위에 두자. 구원받은 당신은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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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5일 화요일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왕상17:1-7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왕상17:1-7

하나님은 각 시대를 구원하실 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담대한 마음의 소유자를 사용하셨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그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엘리아도 담대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라.
사람들 은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가치관이나 신념을 붙잡고 살고, 어떤 이는 건강, 또 다른 이는 배운 지식 또는 소유와 재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서 우리를 영원히 두려움에서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받고 소망을 두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시146:3,5절)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고 다시 오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신해야 수시로 찾아오는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할 수 있다. 엘리야가 악한 왕 아합 앞에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그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맹은 하나님이 살아서 지금 내 곁에 함께 계신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라.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하나님께 사랑 받을 자격이 없고, 또 맡은 일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에 붙잡혀 자주 뒤로 물러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격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또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우리를 각각의 자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우연히 살거나 사람의 뜻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존재이다.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 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 부르심을 알고 부르신 자리에 서 있을 때 두렵지 않고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엘리야의 담대함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부르심의 확신이 있으면 공부해도 재미있고 궂은 일, 힘든 일을 해도 행복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라.
하나님 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말씀대로 순종한다.(요14:21)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엘리야의 담대함은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인 하나님의 말씀의 확신에서 나왔다.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마다 모두가 세상과 환경의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살았다.

결론
하나님 은 사용할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이다. 부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뜻을 세상에 전하는 축복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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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3일 수요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빌2:13-16 골3:15-17

감사하는 자가 되라 빌2:13-16 골3:15-17

신앙과 삶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서 잘못 살아온 지난 날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는 원망. 불평하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14절)고 권면 한다. 그리스도인은 원망.불평하지 않아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비전)을 따라 세상에서 빛들로 살기를 원하시는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한다. (빌3:13-16) 원망.불평은 배후에 마귀의 침투에 의하여 행해지는 악한 습관이기에 자신도 불행하지만 남도 불행하게 만든다. 어떻게 모든 일을 원망 불평없이 행할 수 있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하는 체질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오늘은 모든 일을 감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 하시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첫째. 감사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감사하면 마음에 평강이 임하고, 짧게 자도 단잠을 이루어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 얼굴이 밝아 사람들이 좋아해서 대인관계가 좋아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자를 겸손하게 보시어 은혜를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벧전5:5) 원망.불평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불행하게 만들지만 감사는 도무지 행복할 수 없는 환경에 쌓여있어도 천국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할 감사 대신 원망.불평하기 때문에 고통 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본받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다.(롬12:2, 살전5:18) 감사해야 십자가를 통한 천국이 임하기 때문이다.

둘째 감사는 더 큰 축복을 받게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성도만의 특권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부족함을 채우심으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약1:5, 약5:13. 시50:13) 성도가 풀리지 않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도에 담긴 축복이 크지만 기도한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감사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구할 때 응답을 물론이지만 응답하지 않은 것까지도 헤아려 축복해 주신다. 예수님은 열명의 문둥병자 중에 찾아온 한 명에게 구하지 않은 구원을 더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일천 번제로 감사한 솔로몬에게 그가 구한 지혜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을 주셨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의 삶은 하나님의 뒷받침해 주시는 은혜가 늘 함께 한다.
이것이 기도하든, 봉사하든, 예배드리던 무엇을 하든지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빌4:6, 시50:23)

셋째 감사는 하나님의 기적을 얻게 한다.
예수님이 기적이 필요할 때마다 늘 보이신 모범이 있다. 기적이 필요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벳세다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게하려면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였다. 이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손에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그것으로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은 기적이 일어났다.(마14:19) 또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사로를 나오라고 명하시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 일어나 걸어나왔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감사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이 공산당에게 총살당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10가지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손 목사님을 존경받는 성인으로 높여주셨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고통하는 세상에 살지만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기적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은 고통하는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그리스도 복음을 믿어 천국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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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를 채우시는 예수님 눅5:1-11

빈 배를 채우시는 예수님 눅5:1-11

사람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예수님이 찾아오심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 신앙을 가지게 되고 믿음이 자라간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체험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가르쳤다. (벧전1:23, 벧전2:33)
본문은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건의 기록이다. 베드로가 밤새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지친 몸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의 배 위에 올라오셔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어 주기를 요청하셨다. 군중들에게 말씀을 다 마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어부들은 해가 떠오르면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내리지 않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물을 내리면 물이 맑아서 고기들이 그물 내려오는 것을 보고 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힌다. 그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리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체험을 통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선생님’에서 ‘주’로 바뀐다. 이것이 베드로의 신앙생활의 시작이 된 계기이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은 텅 빈 실패도 풍성한 승리로 바꾸시는 분임을 깨닫는다. 또 우리의 삶에도 베드로처럼 크고 작은 실패를 만나 텅 빈 배와 같이 될 때가 있지만 그것은 낙담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예수님을 모실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며 사는 삶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초와 기준으로 삼으라.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 합리적인 사고, 이성, 그리고 경험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벗어나 있다면 우리의 기도, 예배, 봉사가 아무리 열심이더라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말씀을 기준으로 할 때 그것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 안전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둘째 담대해야 한다. 말씀에 의하여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게 여기고 조롱할 것이다. 또 말씀에 의하여 살지 않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핍박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담대함을 구하라. 담대함을 주시기를 기도하라. 성령으로 충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잘 듣고 묵상하라. 그리고 깨달은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

결론 하 나님의 말씀은 마치 보물 지도와 같다. 말씀 속에 구원의 길이 있다. 바르게 잘 사는 방식이 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담겨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동행하며 그의 삶을 뒷받침 해주기에 그는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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