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영국 : 런던의 한국인 파티쉐 정은미 님과 함께









몇 년 전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한국에서 새롭게 각광받게 된 직업이 있었으니, 바로 ‘파티쉐(Patisserie)’였다. 파티쉐는 드라마 속 삼순이처럼 케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디저트를 담당한다. 당연히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파티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런던의 세계적인 호텔에서 파티쉐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한국인 파티쉐 정은미 님을 만나보았다.

정은미
- 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
- 런던 르 꼬동 블루(Le Cordon Bleu) 파티쉐 과정(Patisserie Diploma) 수료
- 한국 크라운 베이커리 근무
- 여주대학교 제과제빵 강의
- 런던 사보이(Savoy) 호텔 근무
- 런던 버클리(Berkeley) 호텔 근무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어떻게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정은미: 네, 이렇게 제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에 제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제가 1남 5녀 중 막내라 언니들이 요리를 하고 저는 설겆이만 하느라 요리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면 요리를 좀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제 전문분야인 디저트는 잘 하지만 한식 요리는 잘 못합니다. (웃음)

유로저널: 생각보다 단순한 의도로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셨군요. 막상 대학에 입학해보니 어떻던가요?

정은미: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에는 요리를 직접 실습하기보다는 이론 위주였고, 대부분이 졸업 전에 학원을 다녀서 한식 자격증 따더군요. 저는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자격증을 땄는데, 그래서 더 제가 요리를 못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당시 대부분 졸업생들은 영양사가 되려 했는데, 막상 영양사 실습을 나가보니 여러가지 측면에서 제가 갈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제과제빵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정은미: 대학에 입학하고서 우연히 제과제빵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막상 제과제빵을 접해보니 일반 요리보다 좋더군요. 제가 만든 빵이나 과자가 오븐에 들어간 그 냄새, 빵 반죽을 만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과 졸업생 대부분이 영양사를 지망했고, 당시에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제과제빵을 하는 경우가 워낙 없었기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기들처럼 영양사 면접도 보러 다니지 않았는데, 그런 저를 보시고 제과제빵 동아리 강사 선생님께서 저를 제빵학원에 강사로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동아리에서 신입생을 가르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고, 결국 그 제빵학원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크라운 베이커리 내 교육기관(기술연구소) 강사직에 합격하여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근무하셨고, 대학 강의도 맡는 등 한국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갑자기 유학을 결정하게 되셨는지요? 또, 영국을 택한 이유는?

정은미: 당시에는 이러한 분야로 외국에서 유학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유학을 다녀오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더욱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고, 여러모로 제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도전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르 꼬동 블루로 정했는데, 르 꼬동 블루가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지만, 영국을 택한 이유는 영어도 너무 어려운데 다른 언어를 해야 하는 국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웃음) 또, 영국은 공부하면서 일도 할 수 있기에, 자비량으로 유학을 온 저로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가 필요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 해도 막상 유학생이 런던에 와서 해당 분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정은미: 처음에는 작은 샌드위치샵에서 일을 했는데, 영어가 안 되니 구석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설겆이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호텔에서 근무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선생님께 런던에서 어느 호텔 제일 좋냐고 여쭤보니 사보이 호텔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길로 이력서를 들고 사보이 호텔에 갔는데, 주방 담당자를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경비원한테 “나 정말 사보이 호텔 좋아하는데, 여기서 꼭 일해보고 싶다. 셰프(주방 담당자)를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 이력서를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정식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주방 담당자와의 면접을 통과하자, 저를 인사과로 데려가서 요리 테스트가 아닌 인성 테스트를 한 시간이나 보더군요. 제가 영어가 워낙 약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사보이 호텔에는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 직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영어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런데 막상 사보이 호텔에서는 그렇게 오래 근무하지 않으셨습니다만.

정은미: 네, 아쉽게도 몇 달 뒤에 사보이 호텔이 수리 공사를 하게 되어서 한 동안 문을 닫아야 했고, 저 역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습니다. 사보이 호텔이 문 닫기 두 달 전 호텔 분야 채용 박람회가 있었고, 저는 다섯 군데 호텔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 중 가장 우수한 호텔이었던 버클리 호텔에 면접을 보러 갔고, 저는 면접에 초코렛으로 만든 배 작품을 가져갔습니다. 당시에도 취업비자를 쉽게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다행히 파트타임으로 3개월을 근무하고 나서 취업비자를 지원받아서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원래 영국에서 그렇게까지 정식 취업을 하시려던 계획이었는지요?

정은미: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유학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면서 영국에서 좀 더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일단, 한국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너무 많고, 또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리 기계나 메뉴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일하는 디저트 분야는 재료가 매우 중요한 만큼, 저로서는 영국에서 더욱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유로저널: ‘파티쉐’라는 용어가 한국분들께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데요.

정은미: 파티셰는 쉽게 설명드리자면 모든 디저트를 다루는 역할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류급 호텔에만 있는 역할인데,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커피와 차 문화가 많이 발전하면서 디저트도 덩달아 발전하여 파티쉐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초코렛 역시 파티셰의 영역이고요. 특히,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파티셰’라는 용어가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제과제빵 학원 붐이 일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로는 드라마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려진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제과제빵에 종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유로저널: 파티쉐라는 직업의 매력이 있다면? 일하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신지요?

정은미: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요리는 정말 그 일을 미치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죠. 하지만, 그렇게 힘들어도 막상 다른 직업으로 옮겼다가도 다시 돌오는 게 또 이 일입니다. 맛은 물론 모양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디저트를 완성하는 과정 자체는 재미가 없지만, 완성품이 나와서 손님에게 나갈 때는 정말 뿌듯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합니다.

유로저널: 반면에 가장 힘든 점은?

정은미: 앞서도 언급했듯이 육체적으로 참 힘든 일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강한 체질을 타고났는데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단, 일을 하게 되면 보통 9시간, 10시간 씩 서 있어야 하고,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면 실수도 하기 때문에 요리를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하던 것을 완성은 해야 하고,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완성해야 하니 만들던 것을 확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미각과 후각이 약한 편이라 체질적으로 요리하는 일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 요리 보다는 강의 쪽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유로저널: 본인이 만든 디저트를 직접 드시기도 하시는지요?

정은미: 저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먹지 않고, 대신 그냥 테스코 제품을 사먹습니다. (웃음) 만들면서 여러 번 맛을 봐야 하고, 또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더욱 달게 만들다 보니 막상 만들고 나면 예쁘기는 하지만 직접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으시다면?

정은미: 우선은 다른 몇 군데의 런던의 호텔에서 파티셰 커리어를 더 쌓은 뒤에, 초코렛과 웨딩케익을 보다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제가 경험한 분야들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는 게 최종 꿈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로운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세계인들이 정은미 님이 만든 멋진 디저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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