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이완 기자의 오토스케치] 자동차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 베르타 벤츠 (Bertha Benz)





1888년 여름이 한창이던 8월의 어느 이른 아침. 베르타는 두 아들 오이겐(15세), 리하르트(13세)와 함께 살고 있던 만하임(Mannheim)에서 친정이 있던 포르츠하임(Pforzheim)까지 총 106km의 거리를 남편이 만든 Motorwagen을 이끌고 역사적인 장거리 주행에 나서게 된다. 이미 남편 칼 벤츠는 1886년 1월 29일 자신이 만든 모토바겐으로 특허를 냈고, 공인된 자동차 역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말이 이끄는 마차가 아닌 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세 바퀴 물건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의 산물이 세상에서 냉정한 평가와 외면을 받는 것에 칼 벤츠는 다소 의기소침해 있었다. 베르타 벤츠는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낙천적이고 진취적이었으며 모험심이 강한 여자였다. 베르타 링거는 1872년 23세의 나이에 칼 벤츠와 결혼한다. 남편이 될 이 성실하고 전도유망한 남자가 사업 파트너로 인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결혼 지참금을 미리 그에게 줘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내게 했을 정도로 베르타 벤츠는 야무진 여자였고, 남편 칼 벤츠의 차가 마차를 대처하는 새로운 운송수단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던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를 돕기로 마음먹고 최초의 자동차 장거리 여행이자 주행 테스트를 감행한다.

비포장 흙길, 여름의 더운 날씨 등은 그녀의 주행을 결코 돕지 않았다. 엔진이 과열돼 연기가 나면 시냇물을 퍼다 냉각수로 써야 했고, 연료가 떨어지면 근처 약국에서 솔벤트를 사 기름통을 채워냈다. 체인과 브레이크용 가죽이 끊어지고, 흙먼지 탓에 노즐이 막히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그럴 때 마다 헤어핀에 스타킹까지 동원해 응급처치를 했고 결국 해가 떨어질 무렵 무사히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나중에 그녀는 기름이 떨어졌을 땐 몇 시간이고 세 명이서 자동차를 밀고 가기도 했다며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어쨌든 칼 벤츠에게 이 결과는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었고, 비판적이고 무심한 비평가와 언론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자동차가 대중 속으로 파고든 진정한 의미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지금 독일은 자동차 탄생 125년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고트립 다임러와 칼 벤츠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 1886년은 그렇게 자동차史의 원년으로 의미 있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베르타 벤츠가 시도한 ‘세계 최초 장거리 주행’이 이뤄진 1888년 역시 소중히 기억되어져야 한다. 몇몇의 자동차역사학자들은 베르타 벤츠의 테스트 과정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또한 아들 중 한 명이었던 오이겐은, 엄마는 용감한 여성인 건 분명하지만 운전을 할 줄 아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실제 핸들 레버를 쥔 것은 오이겐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운전을 했던 간에 중요한 것은 아들들을 이끌고 용감히 길을 나선 것은 베르타 벤츠 그녀라는 점이다. 그 당시 과연 누가 검증 안 된 내연기관의 3륜차로 이런 장거리 운전을 꿈꿨겠는가?

도전하는 자들을 기억한다는 역사의 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베르타 벤츠. 그녀를 통해 지쳐 있는 나의 열정과 꿈이 다시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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