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던 어제, 레딩(Reading) 한인회(회장 조영준)에서 주관하는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행사에
내가 활동하는 가야금&기타 듀오 KAYA가 연주를 하러 다녀왔다.
레딩 한인회에서는 매년 한국전 참전용사회 (British 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 레딩 지부
소속 회원들에 대한 위로 모임을 갖고 있다.
지난 2008년도에 당시 레딩 한인회장이셨던 조신구 회장님의 초청으로 연주를 다녀온 뒤에, 올해까지
무려 네 번이나 같은 행사에서 연주를 한 셈이다.
어차피 매년 똑 같은 한국전 참전용사회 레딩 지부 소속 회원들이 손님으로 오시는 행사인 만큼, 결국
같은 관객들에게 무려 네 번이나 연주를 들려드린 셈인데, 그분들께서 KAYA의 연주가 조금 식상하지
않으실까 싶기도 했는데, 감사하게도 계속해서 KAYA의 연주를 좋아해주셔서 매년 KAYA를 초청한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한국전 참전용사분들을 위해 연주를 참 많이도 했다.
레딩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대거 참석하시는 킹스톤 한인축제에서도, 레인즈파크 한인
교회가 주최한 한국전 참전용사 행사에서도, Hereford 관청(Council)이 주최한 한국전 참전용사 행사에서도.
그러다 보니 KAYA의 연주를 여러 번 접했다며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참전용사분들도 종종 만나게 되고,
또 이제 몇몇 참전용사분들의 얼굴이 익기도 하다.
이분들은 어리게는 19세부터 대부분 20대 청춘에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떠나와 6.25 전쟁에 참전하신 분들이다.
당연히 지금은 백발 노인들이 되셨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계시고,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해마다 참전용사 행사를 가보면 그 전 해에 비해서 한 두 명씩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 연로하신 분들이라 매년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아마도 어느 시점이 되면 이
분들이 한 분도 살아계시지 않은, 그래서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날도 오게 될
것이다.
참전용사분들을 위한 연주를 워낙 여러 번 해서 사실 어느 시점부턴가는 참전용사분들을 뵈어도 다소
덤덤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제는 왠지 행사 내내, 특히 참전용사분들의 당시 증언과 소감을 들으면서,
그 분들을 바라보면서 까닭 모를 뭉클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 젊은 나이에 전혀 알지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담보로 한 채 고향을 떠났을 그들의
심정, 그리고 그 낯선 한국 땅에서 겪은 전쟁의 시간들...
6.25가 끝난 지 벌써 수 십 년이 흘렀건만 지금까지도 참전용사회를 통해 교류를 하고 있는 그분들, 아직도
남아있는 전우애, 그리고 해마다 한 두 명씩 전우들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는 안타까움...
백발의 할아버지들은 역시 백발의 할머니가 된 아내들을 데리고, 때로는 손주들을 데리고 행사장을 찾는
분들도 계시고, 때로는 혼자서 쓸쓸히 행사장을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전기휠체어를 타신 분도 계시고, 보청기를 끼신 분들도 계시고, 그러나 그 백발의 할아버지들 속에서
청춘의 늠름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았을 그 분들의 젊은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그분들, 우리는 정말 그 분들께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음악을 연주해드림으로써 나마 그 분들께 작은 보답이라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참전용사분이 인사말을 하시면서 “Remember us(우리를 기억해달라)!”고 하셨던 말씀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 우리는 이 분들을 기억해드려야 한다.
언제 또 다시 참전용사분들을 위해 연주를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해 뵈었던 분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다음 연주에서도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