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런던을 방문한 류승완 감독과 함께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원용기)이 주최하는 2011년 제6회 런던한국영화제(The London Korean Film
Festival 2011,
예술감독 전혜정)에서 준비한 류승완 감독 회고전참석 차 지난 11월 영국을 방문한
류승완 감독을 유로저널이 만나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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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로도 류승완 감독님의 열혈팬으로서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만나뵙게 되어
너무나 영광입니다
. 먼저 언제, 어떤 계기로 영화와 사랑에 빠지셨는지부터 들려주세요.
류승완: , 이렇게 유럽에 계신 한인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는 미국영화를
좋아하셨던 반면
, 작은 아버지는 당시 홍콩 무술영화를 매우 좋아하셨고,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시상영관을
다니면서 많은 무술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하면서, 어려서부터 막연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습니다
.
유로저널: 그 막연한 바램이 학창시절에도 꾸준히 이어졌나요?
류승완: 중학교 시절부터 이야기(영화의 스토리)를 만들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직접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 당시에는 캠코더가 너무 비쌌기에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종로 3가에 있는
카메라 가게에 가서
8mm 카메라를 사서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완성한 영화는
단 한 편에 불과했고
, 나중에는 필름 현상소도 문 닫아서 8mm 카메라로는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지요
.
유로저널: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어떤 진로를 택하셨는지요?
류승완: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늘 영화를 찍으러 다녔으니 공부는 뒷전이었고, 대학에도 떨어졌는데 재수를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일년에 6개월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벌고, 나머지
6
개월은 그렇게 번 돈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고 또 영화 촬영 현장을 보러 다니면서 지냈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 돈이 생기면 다시 영화에 몰두하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을
그 시기에 박찬욱 감독님을 만나게 되면서 당시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하신
3인조라는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어서 영화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유로저널: 그렇다면 정규교육기관 등을 통해 정식으로 영화를 배우지 않고서 바로 현장에서 시작하신
셈이군요
.
류승완: 아마 대학 영화과를 나온 이들도 영화를 정식으로 배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웃음) 영화라는
것은 정식으로 배우고 못 배우고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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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인상 깊었던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군 복무 시절 주말에 부대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관람했는데, 당시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
류승완: 이 영화를 군대에서 보셨다고요? 한참 끓을(?) 시기에 보셨군요. (웃음)
유로저널: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렇게
네 편의 단편 에피소드가 합쳐진 영화인데
, 패싸움현대인을 각각 개별 단편영화로 완성하신
뒤에
, 나중에 두 편의 에피소드를 덧붙여서 결국은 연결된 한 편의 장편영화로 탄생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첫 두 편의 단편을 만드시면서부터 이렇게 계획을 하셨던 것인지요
?
류승완: , 처음부터 네 편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어서 한 편의 작품이 되도록 계획은 했었습니다. 막상
영화판에 뛰어들기는 했는데
, 제가 확실한 재능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마냥 상황을 버틸 수 있는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 주위에서 많이 걱정들을 하셨습니다
. 시나리오를 여러 편 써서 여기 저기 공모했는데
좀처럼 당첨되지 않고
, 어렵게 만든 단편영화들도 단편영화제에서 다 떨어지더군요. 아무래도 저 만큼의
현장 경험을 갖춘 이들은 영화판에 워낙 많으니
, 제작자들에 제게 장편영화를 만들 기회를 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 그런데, 만들고 싶은 영화는 있고,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게 그 영화를
조금씩
(?) 완성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첫 에피소드인 패싸움이라는 한 편의
단편영화를 결혼 후 만들었습니다
. 이 영화마저 영화제에서 성과가 없다면 정말 영화를 그만 두려던 시점
이었습니다
. 제작비를 조달하느라 와이프와 모은 주택부금 통장을 털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다행히
패싸움이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아서 다음 에피소드를 찍을 수 있는 작은 여력이
생겼습니다
. 이후 완성한 단편영화인 현대인(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당시 가장
규모가 큰 단편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면서 그 상금으로 나머지 두 편의
에피소드들을 완성해서 결국 제 장편영화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
유로저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면서 이장호 감독님이 배우로 출연하신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류승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작비가 워낙 빠듯해서 배우들을 캐스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젊은 배우들을
낮은 출연료로
, 심지어 출연료 없이도 출연해줬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 배우들은 배우가 직업이고
생활이라 낮은 출연료로 캐스팅하기가 어려웠고
, 그래서 무턱대고 이장호 감독님을 찾아뵙고 출연을 부탁
드렸더니
,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그 때는 워낙 절박하게 영화를 찍었기에 그냥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웃음) 당시 현장에서 가장 출연료를 많이 받은 배우가 3만원을 받았을 정도였으
니까요
. 그런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감독님들이 의외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도 될 수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영화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정식 배우를
출연시키기에는 약간 애매한데 밀도는 높은 그런 역할일 경우
, 주저하지 않고 감독님들을 카메오로 출연시킵니다.
유로저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도 그렇고, 감독님 작품들을 보면 감독님이 출연하실 때는 극중
이름을
석환, 동생이신 배우 류승범 님이 출연하실 때는 극중 이름을 상환이라고 (가장 최근작
부당거래는 제외) 지으시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지요?
류승완: 이 질문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네요. (웃음)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작품마다 극중 인물들의
이름을 짓기가 귀찮아서요
. 마음 같아서는 등장 인물들을 번호로 표시하고 싶은데, 그러면 배우들이 서운해
할까봐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 (웃음) 석환, 상환은 제 동창들의 이름입니다. 그래도 최근작인 부당거래
에서는 류승범 씨 이름을 상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
유로저널: 류승완표 액션영화라는 말도 있을 만큼, 액션 연출에 일가견을 보여주셨습니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액션영화란
?
류승완: 예전에는 제 머릿속에 있는 액션의 이미지들이 제 영화의 원동력이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더 이상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액션이 있지는 않습니다
. 류승완표 액션영화라는 말도
언론이 만든 허수일 뿐
, 실제로 저는 매 작품마다 다른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에 액션 전문 감독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 그럼에도 제가 생각하는 좋은 액션영화에 대해 답변 드리자면, 저는 좋은 액션만 있는 영화는
좋은 액션영화가 아니고
, 좋은 영화 안에 좋은 액션이 있는 게 좋은 액션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액션
장면들만으로는 나쁜 영화를 구원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 좋은 액션영화는 액션으로 감정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 언젠가 강우석 감독님께서 제게 해주신 얘기인데, 기관총 백 발보다 따귀 한 대가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