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적에 만난 친구 성훈이에 대한 이야기 ‘친구’, 그리고 마포구 중동에 살면서 중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2)’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다니던 시절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2)’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명지고등학교를 다닌 탓에,
아쉽게도 고등학교 친구라고는 단 두 명,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 두 명뿐이다.
아쉽게도 고등학교 친구라고는 단 두 명,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 두 명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와 창원이와 경철이는 같은 반이었다. 경철이와는 앞 뒤 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점심을 같이 먹는 무리에 속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점심을 같이 먹는 무리에 속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
경철이는 어딘가 어른스러움이 있었고, 공부도 잘 하고, 당시 또래에 비해서는 참 이성적인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철이는 남자 3형제 중 맏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철이는 남자 3형제 중 맏형이었다.
창원이와는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당시만 해도 어지간한 영화광이 아니고서는 고등학생으로서는
빠져들기 힘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본 경험을 공유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빠져들기 힘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본 경험을 공유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홍콩, 그리고 중국의 매력에 심취해있던 창원이는 경철이와는 반대로 위로 누나만 둘 있었고, 참 감성적인
녀석이었다.
녀석이었다.
우리 셋은 공통적으로 셋 다 참 차분한 녀석들이었고, 별로 튀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린 그렇게 친해져 갔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린 그렇게 친해져 갔다.
경철이는 연신내에 살았고, 창원이는 무악재에 살았는데, 고3 수능을 마치고 무악재 창원이네 집에
놀러가서 호프집을 갔다가 신분증을 까라고 해서 결국 소위 뺀치를 먹고서 노래방에 가서 차분한 남자
셋이서 청승맞게 발라드만 냅다 불러댔던 기억이 난다.
놀러가서 호프집을 갔다가 신분증을 까라고 해서 결국 소위 뺀치를 먹고서 노래방에 가서 차분한 남자
셋이서 청승맞게 발라드만 냅다 불러댔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어울려 논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또 창원이가 마침 일산 우리집과 도보로 10분 거리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금요일 저녁이면 경철이가 일산으로 놀러와서 셋이서 새벽까지 어울렸다.
당시 우리들이 밟는 코스(?)가 있었다.
1차는 늘 당시 내가 통기타 라이브 알바를 하던 생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꼭
포켓볼을 치러 갔다. 우린 4구는 절대 안 친다. 그리고 나서 Feel을 받는 날에는 새벽까지 여는 투다리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나서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사다가 벤치에 앉아서 먹고는 담배를 피워물고
벤치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철이는 우리집이나 창원이네 집에서
잤고, 다음날 일어나면 셋이서 목욕탕을 갔다.
포켓볼을 치러 갔다. 우린 4구는 절대 안 친다. 그리고 나서 Feel을 받는 날에는 새벽까지 여는 투다리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나서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사다가 벤치에 앉아서 먹고는 담배를 피워물고
벤치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철이는 우리집이나 창원이네 집에서
잤고, 다음날 일어나면 셋이서 목욕탕을 갔다.
경철이는 무역과, 창원이는 철학과, 나는 영문과, 전공도 다 다르고, 꿈과 성향도 다 달랐던 우리들이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나누었는지, 늘 그렇게 새벽까지 그치지 않는 얘기들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얘기들을 그렇게 나누었는지, 늘 그렇게 새벽까지 그치지 않는 얘기들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그 시절, 이성에 대한 동경이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 저마다의
고민과 꿈을 되뇌이던 그 시절...
고민과 꿈을 되뇌이던 그 시절...
대학 2학년 때 셋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여자친구가 생겼으니, 대학 1학년 때는 정말 셋이서 그야말로
걸핏하면 만나서 놀았던 것 같다. 심지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셋이 만났다.
걸핏하면 만나서 놀았던 것 같다. 심지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셋이 만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유했던 그 시절에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서른 넘어서
이렇게 만나기가 어려워질 줄은.
이렇게 만나기가 어려워질 줄은.
대학 1, 2학년 시절에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답답함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우리가 젊었기에
그저 그 모든 갈등과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것 조차 즐거울 수 있었다.
그저 그 모든 갈등과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것 조차 즐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마냥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었고, 인생의 다음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셋 중에서 창원이가 가장 먼저 취업이 되었다.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언론의 길도 꿈꾸었던 감성적인
철학도 창원이는 녀석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
철학도 창원이는 녀석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
추운 겨울 날 창원이의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연신내에 모인 우리, 방바닥이 따뜻한 어느 횟집에서 정작 주
인공인 창원이는 취업 준비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드러누워 잠이 들었고, 경철이와 나만 냅다 소주잔을 기울였다.
인공인 창원이는 취업 준비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드러누워 잠이 들었고, 경철이와 나만 냅다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창원이 녀석이 일 년 가량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그 좋아하는 중국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하러 떠나버렸다.
일대의 모험을 하러 떠나버렸다.
우리 셋이 마지막으로 같이 모인 자리는 창원이가 중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만났던 2005년의 어느 봄날이었고,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셋이 만나지 못했다.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셋이 만나지 못했다.
창원이는 그렇게 홍콩영화를 좋아하고 중국을 좋아하더니 결국 아리따운 중국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중국에 정착해 버렸다.
중국에 정착해 버렸다.
그나마 경철이가 한국을 지키고(?) 있지만, 이렇게 창원이와 내가 외국에 정착한 탓에 셋이서 정확하게 일정을
맞춰서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맞춰서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선되셨던 16대 대통령 선거 날, 셋이 만난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우리 모두 서른이 되어 있겠구나 했었는데, 세월은 기약없이 흘러갔고 어느덧 우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이 되어 버렸다.
내년에는 우리 셋이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늙기 전에. 선거에는 우리 모두 서른이 되어 있겠구나 했었는데, 세월은 기약없이 흘러갔고 어느덧 우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