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친구 (3)

다섯 살 적에 만난 친구 성훈이에 대한 이야기 친구’, 그리고 마포구 중동에 살면서 중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2)’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명지고등학교를 다닌 탓에,
아쉽게도 고등학교 친구라고는 단 두 명
,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 두 명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와 창원이와 경철이는 같은 반이었다. 경철이와는 앞 뒤 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점심을 같이 먹는 무리에 속하게 되었고
,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
경철이는 어딘가 어른스러움이 있었고, 공부도 잘 하고, 당시 또래에 비해서는 참 이성적인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철이는 남자 3형제 중 맏형이었다.
창원이와는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당시만 해도 어지간한 영화광이 아니고서는 고등학생으로서는
빠져들기 힘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본 경험을 공유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홍콩, 그리고 중국의 매력에 심취해있던 창원이는 경철이와는 반대로 위로 누나만 둘 있었고, 참 감성적인
녀석이었다
.
우리 셋은 공통적으로 셋 다 참 차분한 녀석들이었고, 별로 튀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 그럼에도 우린 그렇게 친해져 갔다.
경철이는 연신내에 살았고, 창원이는 무악재에 살았는데, 3 수능을 마치고 무악재 창원이네 집에
놀러가서 호프집을 갔다가 신분증을 까라고 해서 결국 소위 뺀치를 먹고서 노래방에 가서 차분한 남자
셋이서 청승맞게 발라드만 냅다 불러댔던 기억이 난다
.
우리가 본격적으로 어울려 논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또 창원이가 마침 일산 우리집과 도보로 10분 거리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
금요일 저녁이면 경철이가 일산으로 놀러와서 셋이서 새벽까지 어울렸다.
당시 우리들이 밟는 코스(?)가 있었다.
1차는 늘 당시 내가 통기타 라이브 알바를 하던 생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꼭
포켓볼을 치러 갔다
. 우린 4구는 절대 안 친다. 그리고 나서 Feel을 받는 날에는 새벽까지 여는 투다리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 그리고 나서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사다가 벤치에 앉아서 먹고는 담배를 피워물고
벤치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경철이는 우리집이나 창원이네 집에서
잤고
, 다음날 일어나면 셋이서 목욕탕을 갔다.
경철이는 무역과, 창원이는 철학과, 나는 영문과, 전공도 다 다르고, 꿈과 성향도 다 달랐던 우리들이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나누었는지
, 늘 그렇게 새벽까지 그치지 않는 얘기들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그 시절, 이성에 대한 동경이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 저마다의
고민과 꿈을 되뇌이던 그 시절
...
대학 2학년 때 셋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여자친구가 생겼으니, 대학 1학년 때는 정말 셋이서 그야말로
걸핏하면 만나서 놀았던 것 같다
. 심지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셋이 만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유했던 그 시절에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서른 넘어서
이렇게 만나기가 어려워질 줄은
.
대학 1, 2학년 시절에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답답함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우리가 젊었기에
그저 그 모든 갈등과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것 조차 즐거울 수 있었다
.
하지만, 우린 마냥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었고, 인생의 다음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셋 중에서 창원이가 가장 먼저 취업이 되었다.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언론의 길도 꿈꾸었던 감성적인
철학도 창원이는 녀석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
.
추운 겨울 날 창원이의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연신내에 모인 우리, 방바닥이 따뜻한 어느 횟집에서 정작 주
인공인 창원이는 취업 준비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드러누워 잠이 들었고
, 경철이와 나만 냅다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창원이 녀석이 일 년 가량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그 좋아하는 중국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하러 떠나버렸다
.
우리 셋이 마지막으로 같이 모인 자리는 창원이가 중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만났던 2005년의 어느 봄날이었고,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셋이 만나지 못했다
.  
창원이는 그렇게 홍콩영화를 좋아하고 중국을 좋아하더니 결국 아리따운 중국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중국에 정착해 버렸다
.
그나마 경철이가 한국을 지키고(?) 있지만, 이렇게 창원이와 내가 외국에 정착한 탓에 셋이서 정확하게 일정을
맞춰서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선되셨던 16대 대통령 선거 날, 셋이 만난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우리 모두 서른이 되어 있겠구나 했었는데
, 세월은 기약없이 흘러갔고 어느덧 우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이 되어 버렸다
.
내년에는 우리 셋이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늙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