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붕괴의 비용은?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정치적 비용이 더 엄청 나
강력하고도 신속한 정치적 의지만이 붕괴막을 수 있어
이제 유로존 붕괴가 서슴없이 거론되고 있다. 저명한 학자들은 유로존 붕괴 가능성이 50% 이상되며 원래부터 잘못된 이유로 성립된 유로존이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 과정을 걷고 있다고 큰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필자는 그러나 아직도 유로존 붕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수차례 강조했듯이 유럽통합의 한 과정에서 도입된 단일화폐는 주로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정치적 의지, 그것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신속하고도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독일을 비롯한 주요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이렇게 행동하지 못해 경제위기를 더 악화시켰고 시장의 신뢰를 잃어 버렸다.
일단 유로존 붕괴의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개략적으로 검토한 후 왜 붕괴보다 유로존 유지가 더 큰 이익인가를 따져보자.
“유로존 붕괴 시 첫 해 그리스는 GDP의 절반, 독일은 1/4 정도 손실”
일단 유로존 붕괴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으나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 등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이 자발적 혹은 타의로 유로존을 이탈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최근 독일에서 제기된 경제가 좋은(최상급의 국가신용등급을 보유한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AAA 국가들) 몇몇 나라가 유로존을 이탈해 새로운 통화동맹을 결성하는 안이다(가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화폐는 지금의 유로가 아닌 ‘신유로’라 부르자-필자의 명명). 두 번 째 안은 독일의 경제인연합회(우리의 전국경제인연합회, BDI) 전 회장을 지낸 경제학자 한스-올라프 헨켈(Hans-Olaf Henkel)이 지난 7월 주장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한다면 그리스의 손실은 이탈 첫 해에 국내총생산(GDP)의 40~50%, 이어 다음 몇 해 간은 15%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투자은행 UBS 연구진의 추정). 그리스가 폐기해버린 드라크마(drachma)를 다시 도입한다면 이 화폐는 현재의 유로에 비해 엄청나게 평가절한된다(1997년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 원화 가치가 미 달러에 대해 700원 정도에서 거의 2000원 까지 간 점을 기억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로 보유한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치솟게 되고, 그리스 은행에 예금을 맡긴 투자자들은 예금 인출을 하느라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돈이 없어 공무원들 봉급도 지불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 위기가 정치적 위기, 그리고 분노한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 등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부터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해 줄기차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리스 시민들을 보면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1970년대 군사독재 정부를 종결하고 1981년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이 된 그리스는 30여년 간 유럽통합으로 막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이런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독일이나 AAA 국가들의 손해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통화동맹을 결성할 경우 독일은 결성 첫 해에 GDP의 20~25%, 다음 해 부터는 10~12.5%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신유로’의 가치가 기존의 유로존이 사용하는 유로보다 가치가 크게 오르게 된다. 경제가 튼튼하고 부도날 염려가 없는 ‘신유로’에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 새 화폐의 가치가 크게 오른다. 이럴 경우 수출대국인 독일 수출업자들의 경쟁력은 급속하게 하락해 경제성장이 둔화한다. 또 유로화 자산을 보유한 독일의 대형 금융기관들은 유로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증자를 해서 자본을 새로 충당해야 한다.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단일화폐와 함께 이룩한 단일시장도 이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유로존의 교역도 쉽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비용이외에 독일은 유로존 붕괴의 가장 큰 책임, 비난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유럽통합은 1,2차 대전의 업보를 지닌 독일의 호전적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수단으로 2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서유럽 각 국은 평화 교란자로서 독일을 제어하고 민족주의라는 ‘지니’의 발호를 억제할 수 있었다. 독일은 유럽통합에 적극 참여해 호전적 민족주의를 제어했고 경제성장을 이뤄 국제사회의 신뢰할말한 구성원으로 복귀했다. 또 유럽통합의 틀 안에서 국토분단도 평화적으로 극복해 통일을 이룩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경우로 그리스, 혹은 독일로 나뉘어 유로존이 붕괴하게 된다면 독일이 붕괴의 책임 대부분을 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유럽통합의 최대 수혜자 독일이 자신의 편협한 국익을 위해 유로존 위기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아 유로존이 붕괴됐다는 비난을 평생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비용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지만 나치독일이라는 낙인처럼 독일에게는 또 하나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낙인이 될 것이다.
유럽연합(EU) 전체로 봐도 통합의 위대한 업적인 단일화폐의 붕괴로 국제정치경제에서 EU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가장 앞선 통합을 이룩했던 EU가 지역통합을 하나의 규범으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수도 없게 되고 국제정치경제에서 EU의 목소리는 더욱 더 미약하게 된다.
따라서 독일은 그리스와 구제금융 국가들의 구조개혁 실행과 연계해 추가로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의 경제위기 전염을 막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조치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붕괴시의 비용과 비교할 때 매우 적은 액수다.
이런 해답은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학자, 역사학자들이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제기했다. 문제는 이런 정책 실천의 타이밍이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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