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Royal Hospital Chelsea에서 매년 5월 개최되는 첼시 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는 영국왕립원예학회(The Royal Horticultural Society)가 주관하는 무려 180년 전통의 세계적인 축제다.
1827년에 처음 시작된 본 행사는 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이어져 왔으며, 세계 최고 권위의 정원 및 원예 박람회로 인정받고 있다.
본 행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출품된 다양한 꽃과 정원이 전시되며,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찾는 대형 행사로,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을 비롯 각국의 정ㆍ재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이번 행사에서는 특별히 한국의 정원이 180년 행사 역사 상 최초로 선을 보였다.
환경미술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인 황지해 작가는 우리 한국의 전통 화장실을 테마로 `Hae-woo-so: Emptying One’s Mind(해우소: 마음을 비우는 곳)'을 출품했으며, 처음 출품한 한국의 정원에 큰 관심을 보인 세계 각국 원예ㆍ정원 전문가들과 해외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은 끝에 출품한 Artisan Garden(소형 정원) 부분에서 최고상인 금상(Gold Medal)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특별히, 각 부문 심사 및 언론 공개가 이루어진 23일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가야금 연주자 정지은 씨가 `Hae-woo-so: Emptying One’s Mind' 정원 앞에서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면서, 한국의 전통 정원과 한국의 전통 음악이 어우러지는 진풍경을 연출, 영국 공영방송 BBC를 비롯한 해외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관객들의 시선은 물론 청각까지도 집중시켰다.
한국 첫 출품에서 최고상의 쾌거를 이룬 황지해 작가를 유로저널이 만나보았다.
유로저널: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이번 첼시 플라워쇼에 출품한 첫 한국 정원으로, 최고상인 금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황지해: 네, 저도 너무나 기쁘게 생각하며,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유럽에 계신 한인 여러분들께도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로저널: 황지해 작가님께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환경미술 & 정원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황지해: 저는 대학에서 순수미술(Fine Art)를 전공했는데, 제가 환경미술이나 환경이 기반이 되는 정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지나는 바람까지도 자연을 유독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유로저널: ‘환경미술가그룹 뮴(www.muum.kr)’ 소속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경미술가’의 정의를 간략히, 혹은 일반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환경미술가’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황지해: 환경미술은 정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환경미술은 ‘사람과 자연 간 소통의 통로’입니다. 작은 담장에 그려진 벽화에서부터 자투리 땅을 이용한 쌈지공원, 조형물, 미술장식, 도시 가로디자인, 조경 등 이에 속하는 것들은 다양합니다.
유로저널: 이번 첼시 플라워쇼에는 어떻게 출품하게 되셨는지요?
황지해: 8년 전 러시아 탐험가를 통해 첼시 플라워쇼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첼시 플라워쇼에 제 작품을 출품하고 싶다는 바램을 간직해 왔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의 전통 화장실을 주제로 선택했을 때, 주최측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황지해: 처음에는 행사를 주관하는 영국 왕립원예협회가 화장실이라고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전 세계의 꽃과 정원이 전시되는 곳에 화장실을 전시하겠다니, 그들로서는 황당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화장실 해우소가 지닌 정신적인 의미, 그리고 한국 정원의 멋에 대해 설명을 듣고서는 그 가치를 존중해주더군요.
유로저널: 그렇다면 황지해 작가님께서 해우소를 통해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는?
황지해: 화장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며, 자신과 독백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곳으로, 그것은 마치 티타임과 같은 시간이자 가장 고요한 시간입니다. 화장실 가는 길을 통해 몸을 비우고 또 마음을 비움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자 했던 선조들에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화장실 가는 길 양 옆으로는 다양한 한국 약용식물을 식재하여 우리 선조들의 민간요법과 삶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흙과 토종식물의 뿌리를 거쳐 정화된 물을 흘러내리게 해, 사람들이 손을 씻게 하고 발효 항아리를 배치함으로써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재생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해우소의 문을 1.2m 높이로 낮게 설계하여 고개를 숙여야만 출입하도록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겸양의 의미도 담았고요.
유로저널: 이번 첼시 플라워쇼에 출품 및 실제 전시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황지해: 한국 자생종을 한 그루라도 더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식재 통관 상 어려움이 있어서 1차는 통과가 되고, 2차를 통과하지 못해서 한국 자생종들을 충분히 영국에 들여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국 내 유사 식재들로 한국 정서를 표출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국내에 첼시 플라워쇼와 정원 문화에 대한 인식 부재로 100% 스폰서로만 이루어지는 행사 특성 상 스폰서의 부재로 행사 직전까지도 식물들을 물론 목재, 기와, 돌담, 바위 등 각종 재료들을 영국으로 운송하는데 필요한 비용 등의 필수적인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 난항이었습니다.
유로저널: 첼시 플라워쇼에 한국 정원이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왜 그 동안 한국 정원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황지해: 스포츠나 영화 산업과 같은 동적인 문화는 세계 무대를 향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지만, 정원은 그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인 성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국에는 통상적인 ‘정원’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셈이었습니다. 주변에 산천초목이 바로 정원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 나라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독특한 겸양 정신은 우리만의 정원문화이며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세계에 알리지 못한 것은 소통의 통로를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해우소’를 접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황지해: 인분을 발효화하여 퇴비로 사용했다는 점, 한국 고유 건축물의 구조적인 특성, 그리고 비움과 환원이라는 한국 정원 문화의 독특한 겸양 정신과 자연성, 정신 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유로저널: 출품하신 Artisan Garden(소형 정원) 부분에서 최고상인 금상(Gold Medal)을 수상하신 소감은?
황지해: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첫 눈을 밟는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책임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내년 행사에도 출품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황지해: 이번에 출품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스폰서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번에 출품한 Artisan Garden(소형 정원) 말고, 내년에는 Show Garden(대형 정원) 부문에 출품하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및 한국의 정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이나 아이디어를 조언하신다면?
황지해: 첼시 플라워쇼의 후원 효과가 무려 15억 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 우리 나라만 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웃 국가들만 봐도 일본은 무려 80년 전부터 첼시 플라워쇼에 출품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를 통해 일본 문화와 스타일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힘써왔고, 중국 역시 3년 전부터 국가가 나서서 첼시 플라워쇼 출품을 권장하고 제도권 내에서 추진하며 장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도 첼시 플라워쇼가 창출하는 문화적, 경제적 파급 효과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라며, 한국 정원 문화의 저력을 해외에서 꾸준히 선보일 수 있도록 많은 기업들과 공기관들이 물심양면 관심과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로저널: 오늘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내년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첼세 플라워쇼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활발해져서 Show Garden(대형 정원) 부문에서 황지해 작가님의 한국 정원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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