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칼럼을 쓰는 입장에 관하여 두어 번 독자 여러 분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보통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되는 책(학자의 저서, 고전, 경전 등)이나
학자나 성직자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칼럼의 내용에 나의 경험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사실이 아닌 ‘자기 나름’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허상에 불과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러한 경지의 존재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두 번째는 ‘아는 것을 말하는가, 된 것을 말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말과 글은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되어 말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면서 얻어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문헌을 참고하고 요즘은 인터넷을 뒤져서 그것을 토대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경지만큼의 칼럼을 썼습니다.
또한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책에서, 세상의 귀감(龜鑑)이 되는 사람에게서, 신앙이나
수양(修養)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은연 중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면 그냥
그렇게 삽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얼마든지, 그리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어떠한
말보다도 진실되고 차원 높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여도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더니 한번 시작하면 일년은 써야 된다는 말에 또 망설이는 나를 보더니 최소한 여섯 달은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되든 한번 써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아홉 해째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주제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꺼내어 자판을
두들기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정도 그러한 경지가 ‘되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주제가 떠오르지만 그때그때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저의 칼럼은 허상의 마음세상에서 참 세상에 한 발짝 내디딘 입장에서 참 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고 좋은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하시어 다 함께 참의 존재가 되어 하나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