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불편한 진실
요즘 우리 나라를 봐도, 또 세계를 봐도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가 너무 극심하다 보니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곱지 못하다.
그야말로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가진 자들은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는 반면,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누리는 것의 손톱만큼도 누리기가 어려운 불공평한 세상이다.
비록 지금은 화제가 되었던 초반에 비해서는 흐지부지 되어버린 형국이지만,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된 가진
자들을 향한 시위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로 번졌고, 지구촌의 민초들은 이 시대에 만연한 ‘불공평’에 분노하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를 가진 자로 봐야 하고 어느 수준까지를 가지지 못한 자로 봐야 하는지는 아무로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가진 것을 유지하고 심지어 증가시켜서, 또 그것들을 그대로 자손들에게 되물림
하려 한다. 분명 하늘의 축복은 아닐 듯 한데, 이들은 이미 가진 것들을 기반으로 더 많은 것들을 너무나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어있다.
반면에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나마 가진 것들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고, 또 그렇게 가지지 못한 인생을 자손들
에게 되물림하게 된다. 분명 하늘의 저주는 아닐 듯 한데,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갖기가 너무나 어렵고, 심지어
그나마 가진 것들도 잃게 되어있다.
이 잔인한 자본주의의 법칙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로 바뀔 수 있는 길은 그야말로 로또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식으로, 정말 아무런 배경 없이도 스스로의 노력 만으로 인생의 역전을 일궈
내는 성공신화가 제법 있었지만, 현 시대는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올 수 없도록 구조화되고 제도화되었다.
이제 용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부모의 재력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 단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되물림되고, 또 대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들이 되물림되면서, 가지지 못한 자로 인생을
사는 게 너무나 고달프기에 우리는 가진 자들을 향해 분노를 내뿜는다.
그런데, 이렇게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두 가지 경우일 수 있다.
하나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유지시키는 구조적, 제도적으로 잘못된 현실이 진정 안타까워서
목숨을 걸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의 시선이다. 이들은 이렇게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와 지나치게 가지지
못한 자가 지금처럼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아마도 가진 자들을 보며 분노하는 이들 가운데 이렇게 정의의 시선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결국 이들을 통해 변화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다른 하나의 시선은?
자신은 많이 갖지 못했기에 그 가진 자들이 너무나 밉고 못마땅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가진 자가 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는 시선이다.
즉, 빈부격차가 부당하다고 믿으면서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즉 가진 자들이 미우면서도 부러운 시선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서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썩은 정치인을
비판하면서도, 그 썩은 정치인이 누리는 부와 지위는 은근히 부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솔직한 속마음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비록 지금은 가지지
못한 자에 속하지만, 언젠가는 가진 자가 되고 싶다는 바램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 대다수는 여전히 이러한 시선과 바램을 지닌 채, 그러나 겉으로는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부당함과 불공평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그렇게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본인은 이익을
취하고 풍요를 누리는 입장이 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인지 알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 나의 현재 상황에서 분명히 어딘가 존재하는 나보다 못한 이들, 나보다 낮은 이들을 위해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양보할 의사가 있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명색이 언론 공부를 했고, 기자라는 명함을 5년 째 갖고 있는 필자건만,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정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가진 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들 가운데, 앞서 언급한 구조적, 제도적으로 잘못된 현실이 진정
안타까워서 목숨을 걸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의 시선을 가진 이들이 정치인이 되고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는게
내 개인적인 바램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너무나 드문데, 하물며 얼마든지 가진 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예비 정치인들 중에서는 얼마나 드물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드문 사람을 분간하고, 알아보고, 지지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요즘 우리 나라를 봐도, 또 세계를 봐도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가 너무 극심하다 보니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곱지 못하다.
그야말로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가진 자들은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는 반면,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누리는 것의 손톱만큼도 누리기가 어려운 불공평한 세상이다.
비록 지금은 화제가 되었던 초반에 비해서는 흐지부지 되어버린 형국이지만,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된 가진
자들을 향한 시위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로 번졌고, 지구촌의 민초들은 이 시대에 만연한 ‘불공평’에 분노하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를 가진 자로 봐야 하고 어느 수준까지를 가지지 못한 자로 봐야 하는지는 아무로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가진 것을 유지하고 심지어 증가시켜서, 또 그것들을 그대로 자손들에게 되물림
하려 한다. 분명 하늘의 축복은 아닐 듯 한데, 이들은 이미 가진 것들을 기반으로 더 많은 것들을 너무나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어있다.
반면에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나마 가진 것들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고, 또 그렇게 가지지 못한 인생을 자손들
에게 되물림하게 된다. 분명 하늘의 저주는 아닐 듯 한데,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갖기가 너무나 어렵고, 심지어
그나마 가진 것들도 잃게 되어있다.
이 잔인한 자본주의의 법칙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로 바뀔 수 있는 길은 그야말로 로또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식으로, 정말 아무런 배경 없이도 스스로의 노력 만으로 인생의 역전을 일궈
내는 성공신화가 제법 있었지만, 현 시대는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올 수 없도록 구조화되고 제도화되었다.
이제 용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부모의 재력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 단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되물림되고, 또 대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들이 되물림되면서, 가지지 못한 자로 인생을
사는 게 너무나 고달프기에 우리는 가진 자들을 향해 분노를 내뿜는다.
그런데, 이렇게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두 가지 경우일 수 있다.
하나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유지시키는 구조적, 제도적으로 잘못된 현실이 진정 안타까워서
목숨을 걸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의 시선이다. 이들은 이렇게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와 지나치게 가지지
못한 자가 지금처럼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아마도 가진 자들을 보며 분노하는 이들 가운데 이렇게 정의의 시선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결국 이들을 통해 변화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가진 자들을 바라보는 다른 하나의 시선은?
자신은 많이 갖지 못했기에 그 가진 자들이 너무나 밉고 못마땅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가진 자가 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는 시선이다.
즉, 빈부격차가 부당하다고 믿으면서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즉 가진 자들이 미우면서도 부러운 시선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서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썩은 정치인을
비판하면서도, 그 썩은 정치인이 누리는 부와 지위는 은근히 부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솔직한 속마음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비록 지금은 가지지
못한 자에 속하지만, 언젠가는 가진 자가 되고 싶다는 바램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 대다수는 여전히 이러한 시선과 바램을 지닌 채, 그러나 겉으로는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부당함과 불공평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그렇게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그래도 본인은 이익을
취하고 풍요를 누리는 입장이 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인지 알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 나의 현재 상황에서 분명히 어딘가 존재하는 나보다 못한 이들, 나보다 낮은 이들을 위해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양보할 의사가 있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명색이 언론 공부를 했고, 기자라는 명함을 5년 째 갖고 있는 필자건만,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정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가진 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들 가운데, 앞서 언급한 구조적, 제도적으로 잘못된 현실이 진정
안타까워서 목숨을 걸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의 시선을 가진 이들이 정치인이 되고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는게
내 개인적인 바램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너무나 드문데, 하물며 얼마든지 가진 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예비 정치인들 중에서는 얼마나 드물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드문 사람을 분간하고, 알아보고, 지지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