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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1일 수요일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왕상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왕상17:1-7


하나님은 각 시대를 구원하실 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담대한 마음의 소유자를 사용하셨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그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엘리아도 담대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라.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가치관이나 신념을 붙잡고 살고, 어떤 이는 건강, 또 다른 이는 배운 지식 또는 소유와 재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서 우리를 영원히 두려움에서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받고 소망을 두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시146:3,5절)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고 다시 오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신해야 수시로 찾아오는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할 수 있다. 엘리야가 악한 왕 아합 앞에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그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맹은 하나님이 살아서 지금 내 곁에 함께 계신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라.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하나님께 사랑 받을 자격이 없고, 또 맡은 일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에 붙잡혀 자주 뒤로 물러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격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또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우리를 각각의 자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우연히 살거나 사람의 뜻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존재이다.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 부르심을 알고 부르신 자리에 서 있을 때 두렵지 않고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엘리야의 담대함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부르심의 확신이 있으면 공부해도 재미있고 궂은 일, 힘든 일을 해도 행복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말씀대로 순종한다.(요14:21)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엘리야의 담대함은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인 하나님의 말씀의 확신에서 나왔다.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마다 모두가 세상과 환경의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살았다.


결론

하나님은 사용할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이다. 부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뜻을 세상에 전하는 축복의 통로이다.

축복의 통로 (히11:20, 눅67:38)

축복의 통로 (히11:20, 눅67:38)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통로로 부름을 받은 존재다.

건강한 믿음으로 자라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축복하며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오늘은 축복 잘 해서 좋은 믿음으로 인정받은 이삭을 통해서 어떻게 축복하며 사는지를 배우자


첫째 자신이 축복의 통로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벧전3:9에 그리스도인이 부름 받은 것이 복을 빌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 사실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말씀하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12:3)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공부한다는 뜻으로 ‘공부해서 남 주냐’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또 건강과 형통을 꿈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의 죽은 영을 살리고, 사람들의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부르셨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으로 축복하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축복할 때 자기 식으로 축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축복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식으로 누군가를 축복하면 상대방이 축복을 받게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더 큰 고통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삭은 자녀를 축복할 때 장차 오는 일 즉 하나님의 약속으로 축복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셨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축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죄를 짓고 지친 인생들의 구원할 많은 약속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이름, 성령, 믿음, 기도 등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으로 세상을 축복해야 한다. 약속을 믿고 축복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 세상을 축복하신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하라.


사람은 더 축복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고, 또 누군가를 축복할 때 특별히 축복하고 싶은 내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구하듯이 축복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축복해야 한다.

이삭은 에서를 더 축복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야곱을 더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삭은 에서를 더 축복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야곱을 더 축복케 하셨다. 요셉도 장자인 므낫세를 더 축복하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차자인 에브라임을 더 축복하는 것이었기에 그 뜻대로 에브라임을 더 축복케 하셨다. (창25:23, 창27:33, 창48:18-19) 그리스도인은 축복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배달하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


누군가를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축복케 할 뿐 아니라 자신 또한 더 큰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

(눅6:38) 그러나 세상을 축복하는 일을 멈춘다면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에 거할 뿐 아니라 훗날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따라 세상을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축복을 날마다 꿈꾸는 자가 되자.

2010년 7월 6일 화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 창37:5-11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 창37:5-11


성경에는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 비범한 인생을 살게되는 많은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이런 비범함의 공통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고 그 꿈을 성취한 삶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성취하는 지를 배워보자.

첫째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한다.

씨앗을 심어야 싹이 나고 열매를 얻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꿈은 마치 씨앗과 같다. 먼저 하나님의 꿈을 받고 그 꿈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그 꿈이 성취가 된다. 하나님의 꿈을 받으려면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행2:16-18은 성령이 꿈을 주신다고 말씀한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꿈을 주신다. 그리고 받은 꿈을 끝까지 간직하라. 자신의 약함, 환경, 고난 등이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주신 꿈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신뢰하라. 요셉은 하나님께 받은 꿈 때문에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가는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셨다. 고난은 꿈을 포기하라는 사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꿈을 통해 명품 삶이 될 것이라는 증거임을 확신하라.

둘째 하나님의 꿈을 말하라.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그 꿈을 형제와 부모님께 말하였다. 그리고 그 꿈을 말한 후에 격려를 받기는커녕 아버지께는 꾸중을 들었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께 꿈을 받은 사람들은 요셉과 같은 반응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받은 꿈을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꿈을 말하면 그 꿈이 더 구체화되어 흔들리지 않는 꿈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루는 동역자를 만나게 해 주신다. 당신의 꿈을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 드려라. 그리고 자신에게 늘 말해 주라. 사람들이 그 꿈을 알도록 말하라.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함으로 애매한 고난도 받았지만 말한 것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라.

셋째 하나님의 꿈을 준비하라.

꿈을 받을 때 현실은 꿈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꿈은 사장, 재벌, 리더가 되어있지만 현실은 말단사원, 학생 또는 버스비가 없어 걸어 다니고 있을 수 있다. 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현실에 불성실한 채 시간을 허비한다. 하나님의 꿈을 받을 때 하나님이 꿈을 반드시 이루실 것으로 받아야 함과 동시에 이제부터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꿈을 받은 사람은 영적인 것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현재 주어진 삶에 성실해야 한다. 요셉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성실하였듯이(창39:22-23 ) 지금 맡은 일에 타의추종을 불어할 수준으로 살라.
결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꿈의 성취를 통해서 최상의 축복된 삶을 살 뿐 아니라 세상을 축복되게 하는 삶은 산다.
지금 당신 안에 어떠한 하나님의 꿈이 있는가?
당신은 꿈 때문에 설레이며 그 꿈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말하며 살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주어진 삶에 성실하여 주변에서 칭찬 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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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6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37:1-10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정하는 일에는 희망을 가지지 않고 가능성을 묻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에도 가능성을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할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지고 계시다.


첫째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거친 파도가 잠잠해지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우리가 대언할 때 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하였을 때 마른뼈가 살아났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었다. 사람 모양이 되었다.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죽은 삶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서 에스겔처럼 우리는 먼저 대언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대언하라. 우리가 대언할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살리실 것이다.


둘째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을 임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마른뼈들이 맞추어 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짐으로 사람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생기가 없어 움직이는 못했다. 이 때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기가 그 속에 임하도록 대언하자 살아 움직이는 큰 군대가 되었다. 생기는 성령을 말씀한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 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살리는 길은 말씀과 성령이시다. 우리는 죽은 가정과 잠든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한다. 동시에 성령께서 생기로 임하기를 구해야 한다. 성령은 죽은 것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셋째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부흥을 원하시고 부흥을 주시는 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부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에스겔처럼 1.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2. 하나님의 분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다.   3. 살리시는 하나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꿈꾸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은 몽상가가 아니다. 몽상가는 현실성이 없는 것을 꿈꾼다. 현실성이 없이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하며 세월을 낭비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가진 비전의 사람은 현실을 자각하고 현실을 소화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을 진단하기에 대가를 지불하고 열매를 거두는 자이다.

지금 각 영역에 하나님의 부흥이 필요한 세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은 교육도 정치도 사회개혁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과 성령의 생기를 통하여 부흥을 이루어가신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김용복 목사 칼럼] 하나님께서 높이는 사람 마26:36-46

사람은 모방의 존재이다. 학습을 통해서도 배우고 성장하지만 모방을 통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모습, 마음, 생각을 닮아감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하신 일은 우리가 고난을 만나 마음이 고민되고 슬플 때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첫째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마음에 심히 고민이 되실 때 하나님께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듯이 마음이 낙심되고 슬플 때 문제를 옮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응답의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1. 기도할 때 기도는 문제를 대비하게 하게 되어 문제 때문에 시험들지 않게 한다.
2.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하게 한다.
3.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문제의 산을 옮겨 주신다.
4. 기도할 때 자신이 변화된다.
5.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라.

겟세마네 동산에 헤롯의 군사들이 주님을 체포하려고 모여들었을 때 베드로는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의 행동를 막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칼집에 넣어라. 내가 하나님께 구하면 열두 군단도 더 되는 하늘군대를 보내줄 수 잇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언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앞에 마음이 심히 고민되고 슬플 때에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선택을 하셨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직접 이루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신다. 말씀을 이룰 때 하나님은 형통함으로 복을 주신다. 열왕기상 17장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가서 공궤를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그 집을 복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기록이 나온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르밧 과부를 찾아가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기근이 지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말하자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 그 결과 실제로 가뭄이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이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통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론

세상에 문제를 만나 더 큰 고통의 자리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지만 문제를 통해 더 큰 기회를 잡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고난을 만나 마음이 고민되고 슬플 때 예수님을 모방하여 기도하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을 예수님을 높이듯이 높여주신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김용복 목사 칼럼] 내가 받은 은혜 눅5:1-11

베드로는 밤 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있었다. 힘없이 그물을 씻고 있는 그 새벽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올라오셔서 군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한 후에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예상외로 그물이 찢어질 듯이 많은 고기를 잡아 자기 배는 물론 동료 배에까지 만선을 이룬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가 듣고 깨닫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은 텅 빈 배같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복을 주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존재로 창조하였다고 말씀한다. (창1:22)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인생은 수치를 당하고 마치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 같은 텅빈 인생이 된다고 가르친다.(렘17:3, 미6:13-15절) 사람들에게 사는 재미가 있느냐고 물을 때 가장 많은 대답이 “그렇저럭 산다. 마지 못해서 산다. 죽을 수 없어서 산다”이다. 이것은 “나는 하나님 없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다른 표현이다. 하나님 떠나면 건강 잃어 빈배가 되고, 직장잃고 기쁨잃어 빈배가 된다. 수고하지만 열매를 얻지 못해서 빈배가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유하였음에도 빈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늘 늘 텅 빈 가슴, 빈 건강, 빈 가정, 빈 행복으로 인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훼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에서 인생의 실존이 빈배임을 말하고 후에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둘째 예수님은 인생의 빈배 인생을 찾아와 채워주신다.
  
사람은 있는 자, 잘난 자, 높은 자 곁에 모여들지만 못난 자, 실패한 자로 전락하면 냉정하게 떠나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가 떠난 우리의 텅 빈배로 더 가까이 찾아오시고 채워 주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날도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실패로 낙심이 가득하였다. 텅빈 가슴으로 그물 손질을 하는 베드로 곁에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빈배를 차고 넘치도록 채우셨다. 사람은 자신의 배운 지식과 경험 상식으로 살 때 얕은 곳에서 텅빈 배의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텅빈 배같은 인생을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그 빈자리가 ㅍㅡㅇ성함으로 채워지는 삶이 됨을 잊지 말자.


셋째 각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사명을 이루며 산다.
  
빈배 같은 인생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 각자가 다양한 사명을 발견한다. 어떤 이는 불치병의 빈배에 건강으로 채움을 경험하고 어떤 이는 전도하다가 빈배가 채워짐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 때 받은 은혜로 어떤 이는 남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다른 이는 전도의 사명에 불이 붙어살게 된다.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지는 경험을 한 후에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마치 병원에 가면 외과, 내과, 정신과, 안과,치과 등 여러 분야가 있듯이 각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따라 자신의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롬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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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8:22-39

어느 날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따라 갈릴리 호수를 건너갔다가 오면서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또 군대 귀신들려 짐승처럼 사는 사람을 치유하시는 것을 목격한다. 이 사건은 믿음은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를 가르쳐준다.


첫째 인생의 풍랑 만날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한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다 풍랑을 만나 죽게되었다. 그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주여 우리가 죽게되었으니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을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며 꾸짖으셨다. 이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나쁘다든지 육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서가 아니다. 성경은 환란 만날 때 부르짖으리라고 말씀하고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책망받은 것은 풍랑 만날 때 풍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하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풍랑 만나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않고 주무시는 예수님께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여 죽는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부르짖었으나 탄식이며 원망이었지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행위는 불신앙임을 기억하자.


둘째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여 예수이름으로 쫓아낸다.

악한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온전히 정복하려고 한다. 마귀에 붙잡힐 때 어떤 술, 마약, 도박 등 어느 한 곳에만 강하게 집착하게 된다. 특히 마귀는 자신만의 변치 않으려는 생각, 전통, 고정관념을 틈타 들어와 붙잡는다. 그 결과 주님과 교회를 위한다면서 결과적으로 교회를 해치고 주님을 거스리도록 만든다. 이러한 마귀를 쫓아내는 길은 예수이름 밖에 없다. 예수 이름 앞에 마귀는 쫓겨나가고 마귀의 역사는 무너진다. 믿음은 이 사실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다. 벧전5:9은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믿음은 예수의 이름은 악한 마귀와 귀신을 능히 쫓아낸다는 것을 신뢰하고(막16:17) 쫓아내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전하며 살아간다.

예수님은 귀신에 붙잡힌 한 광인을 구하기 위해서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오셨다.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당부하셨다. 예수님은 죄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은 가족과 이웃, 세상에 일일이 고하는 것이다. 성지 순례 때에 가이드는 “그 후로 거라사인 광인은 집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전하여 온 마을 전체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 교회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교회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행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며 살게한다.


결론

성도들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도 우리 곁에는 풍랑을 다스리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다. 이것을 믿을 때 첫째 풍랑 만났다고 원망, 불평하는 대신 감사함으로 기도한다. 둘째 깨어서 악한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여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다. 셋째 하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된 소식을 일일이 사람들에게 말하며 산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막3:1-6

세상에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으로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신앙세계 안에도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당시에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들은 종교적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과 헌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라고 탄식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실 때 기뻐하고 축하할 자리에서 못마땅하게 여기고 분노하며 나아가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심을 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6개 조항을 만들고 각 조항에 39가지의 세부지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은 붙잡으면서 정작 붙잡아야 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버렸다. 바리새인은 법을 지키겠다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라고 준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바리새인은 선한 일,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계획하고 또 열심을 가질 때 하나님과 하나님마음을 잃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한다. 하나님 없는 예배, 선교는 그 열매가 하나님을 위하지 못한다. 하나님 마음을 잃으면 생명을 구하겠다고 열심을 낼수록 죽이는 결과를 냄을 기억하자.

둘째 마음이 완악해지면 그렇게 된다.
'완악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자기 중심으로만 굳어진 마음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기에 변화가 없다. 자기중심의 신앙이 된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여 늘 자신이 체험한 것을 절대화하고 모두 자기처럼 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왜 자기들처럼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졌다.(막2:18) 자기중심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남을 말로 정죄하는데 사용하였다.
내 신앙만이 옳고, 자신이 속한 교회와 교단만이 바르다는 생각을 가질 뿐 아니라 이것을 말로 나타내어 정죄한다면 우리는 죽이는 것을 구하는 바리새인 신앙이다.

셋째 예수님을 만나야 잘 못된 모든 것이 회복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상식적인 자리와 상식을 벗어난 자리에 교대로 머물며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자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 중심이 된다. 이 때는 육신의 손은 건강하더라도 영과 마음의 손이 마른 것이다. 이 때는 주님이 오실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손 마른 자를 찾아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쳐주신 예수님은 당신의 마른 마음, 마른 사랑, 마른 꿈 마른 신앙과 삶을 펼게 하실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정죄하지 않고 고쳐주실 것이다.

결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은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살게 된다. 신앙인이 이것을 방치하면 신앙과 삶이 점점 말라가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탄식듣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신앙 삶이 말라있더라도 찾아가면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마른손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 고후6:1-2

신앙생활은 은혜로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가 무엇인지 은혜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은혜를 받는지'를 모른 채 살고 있다.
은혜로 살기 위해서는 은혜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오늘날 예배 마지막에 목사님들이 축도의 시작은 민6:22-26절에서 근거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제사장들에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러면 백성들을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은 축도의 내용이 고후13:13절로 바뀌었다. 목사님들은 예배 마지막에 예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 성령님과의 교통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복한다. 은혜가 있다는 것은 복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 은혜가 무엇인가? 무궁해서 다 말할 수 없지만 롬3:24, 엡1:7절은 죄사함, 구원, 의롭게 되는 것이 은혜라고 말씀한다. 또 엡3:7-8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 은혜며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도와주시는 것이 은혜라고 말씀하신다.(히4:16)

둘째로 은혜는 주님 닮아 변화하게 만든다.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유용한 자로 변화되었다. 은혜는 선한 일을 사모하게 하고 사모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변화시킨다. 은혜 받으면 삶의 방식이 변한다. 육체의 지혜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 은혜로 살아간다.(고후1:12)
은혜는 어그러진 자화상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 겸손한 자의 자화상을 가지게 된다. (고전15:10) 또한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가지고 살게되어 사방으로 우겨 싸이는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고 능히 이겨낸다. 은혜는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게 한다.

셋째 은혜는 자라가게 해야한다.
은혜를 자라가게 하기 위해서 히4:16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것을 권면 한다. 은혜 받는 보좌는 지금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은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롬6:11) 죄사함 받은 자로 여기라. 기도한 후에는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 줄로 여기라. 또 은혜의 보좌는 상한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이며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다. 은혜의 보좌는 겸손함이며 말로 행실로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결론
은혜가 있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사는 사람이다.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갖추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더 큰 은혜를 구하여 은혜를 자라게 하는 자이어야 할 것이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2010년 4월 7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예수님 부활이 주는 꿈 막16:1-11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의 종 아래서 절망하며 사는 인류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 아니라 새 꿈을 꾸게 하였다.

첫째 부활은 고난 뒤에 영광이 찾아온다는 꿈을 꾸게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멸시, 모욕 천대 뒤에 부활을 영광을 주셨다. 막8:31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출애굽한 후애 먼저 광야의 고난을 겪게 하신 다음에 가나안의 영광을 얻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고난 없는 영광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항항 고난 뒤에 영광을 얻게 하신다. 그 이유를 신8장 2절에 2가지로 답한다. 첫째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말씀에 순종케 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참된 영광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성도의 고난은 영광을 위한 전주곡이다. 고난이 큰 만큼 영광도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영광을 소망하며 잘 참자.


둘째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의 꿈을 꾸게 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던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처음 믿지 못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거 하는 증인으로 변화되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하게 하였는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과 제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는 것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7귀신에서 치유 받았다. 이들은 당장은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지만 그들 안에 있는 은혜가 그들을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꾼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은혜 받은 자가 교회와 복음의 일꾼 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부활의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보이신 이유라고 생각한다. 은혜가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도 가지게 하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능력도 가지게 한다.


셋째 부활의 증인되리라는 사명의 꿈을 꾸게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12번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증거하셨다. 5번 째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에게 평강과 사명 그리고 성령충만과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요20:19-23) 그리고 성령 받은 후에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자신에게 적용할 것 4가지가 있다. 당신이 먼저 평강을 누리라. 당신이 먼저 사명 안에 살라. 성령충만하고 서로 용서하라.


결론

예수님의 부활은 절망 속에 살아야할 인류에게 고난 뒤에 찾아올 영광을 바라보게 하였고 성도는 은혜로만 산다는 것과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복음을 누리는 신앙이 되고자 함을 깨닫게 하였고 그것을 꿈꾸게 만들었다.


<전 유럽 한인 대표 신문 유로저널, http://www.eknews.net>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요11:38-44

속박을 받지 않고 사는 것, 자유와 해방을 얻고 인권을 누리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 일을 위해서 오셨다.
사람은 어떻게 참 자유를 얻고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첫째. 인간은 종으로 태어나고 종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자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죄와 세속, 저주와 가난과 죽음과 지옥의 종이 되어 산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이 술, 마약, 도박, 성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종된 삶의 증거로 자유와 평안이 없다.
늘 두려움이 사로잡혀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 선을 원하면서도 마음껏 선을 행할 수 없다. (마7:19)
왜 인간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요8:34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밝히고 있다.
사람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품에서 쫓겨나 마귀의 노예가 된 것이 종으로 살게 만든 것이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로만이 죄로 종이 된 인간을 자유케 할 수 있다.

인류는 종된 인간의 삶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을 끝없이 해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인간의 노력은 마치 사해바다에 유입되는 물이 사해바다의 밥이 되어버린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위대한 철학과 사상, 종교나 과학의 물을 끌여 들였지만 죄의 바다에 들어가서 다 죽은 물이 되어버렸다.
영원히 죄의 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깨달은 철학자 케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절망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유의 길을 발견하고 갈5:1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종에서 자유케 하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에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종이 된 인간을 살리고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셋째.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죄에서 자유를 얻고 살아났으나 수의에 묶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풀어놓아 다니게 할 것인가?
첫째. 믿음을 예수님의 말씀위에 두라. 마르다는 자신의 믿음을 과거나 미래에 두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은 내가 말하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기도가 풀어놓아 다니게 한다.
기도는 속박을 풀게 하는 능력임을 모르고 칭칭 감겨 사는 사람이 많다.
기도할 때 영.혼.육의 절름발이가 펴지고 자유게 된다.
셋째 진리를 입술로 말하라. 진리는 말할 때 형상화된다.


결론

예수님은 죄와 저주, 죽음과 질병, 지옥의 종이 되어 두려움 속에 사는 인간의 해방자이시다.
종이 된 인간의 실존을 인정하자.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의 근거를 두고 기도하자.
구원을 얻은 것 뿐 아니라 말씀대로 자유를 누리고 사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전 유럽 한인 대표 신문 유로저널, www.eknews.net>

[김용복 목사 칼럼] 환상을 본 후에 행16장 1-10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꼬였다.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바나바와 다툼으로 팀이 나뉘었다.

아시아 선교의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였지만 브루기아가 막히고, 갈라디아, 무시아 비두니아가 계속해서 막혔다. 결국 바울이 세운 계획은 모두 막히고 전혀 원치 않던 드로아에 당도하게 된다.

자신의 계획이 무산한 끝자락에서 바울은 환상을 본 것을 계기로 유럽복음의 문이 열리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사건은 자신의 계획이 계속해서 막혀서 고통당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를 배우게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 문을 닫으실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행16장 6절과 7절은 바울의 아시아 전도 계획을 성령이 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의 전도계획을 막으신 성령은 때때로 우리의 계획도 막으실 때가 있다. 아시아 선교를 하지 말라는 뜻이거나 바울이 죄를 지어서 막은 것이 아니라 그 때는 유럽선교가 필요하고 더 중요한 때였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계획을 막으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바울의 문을 막으실 때 한 쪽을 열어 드로아로 인도하였고 그곳에서 환상을 보여주셨다. 성령은 우리의 문을 다 막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문이 막힐 때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드로아에 당도할 때까지 기다리는 자가 되자.



둘째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야 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일, 자기 뜻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서부터 점점 자기 중심을 떠나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된다. 장성할수록 내 중심이 줄어들고 이웃 중심과 하나님 중심이 되어간다. 성령은 때때로 우리의 뜻과 계획을 막으심으로 내 중심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이 되는 일을 하신다. 예루살렘 교회를 보라. 8천명 이상의 성도가 되어 자기 교회 중심에서 자라나지 못할 때 핍박이 일어나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성령께서 막으신 것이다. 바울의 아시아 선교 계획을 막힌 것도 성경은 성령께서 하신 일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막힐 때는 하나님 중심이 되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16:24, 행16:14)



셋째 꿈과 환상을 가져야 한다.

개인과 역사,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세상을 완전하신 계획을 가지고 통치하신다.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알려주시는 선물이다. 꿈과 환상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방향을 가지는 것이다.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변화되고 세상에 구원의 복음이 증거 되게 된다. 그래서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차원에서 살게된다.


결론

이유도 모른 채 내 뜻이 막힐 때에 그리스도인은 더 좋은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의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막으실 뿐 아니라,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이실 뿐 아니라, 꿈을 통해서 당신과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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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목사 칼럼]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6-19

하나님을 아는 것은 건강한 신앙과 교회를 갈망하는 자가 늘 해야할 기도제목이다. 무엇보다 성령과 함께 31살을 출발하는 우리 교회가 할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1. 은혜와 평강이 풍성해진다. (벧후1:2)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햇빛, 공기, 자연, 역사, 먹고 마시는 것을 선물로 주신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주시는데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선물이다. 특별 선물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예수님을 믿을 때 환경이 좋고 일이 잘 풀려갈 때나 그렇지 못할 때 태풍의 눈처럼 마음에 안전함의 평강을 주신다. 벧후1:2절에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풍성케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2. 하나님을 아는 자는 마귀를 향하여 강하고 용맹을 발하게 된다. (단11:32)
단11: 32에“...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강하다'는 것은 사방에서 압박을 준다 할지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용맹을 발하다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확장하여 자기공간을 넓혀감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환경에 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바꿔 가는 자가 된다.

3. 주님을 닮아 자라간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죄에서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거듭났다. 중생했다. 아직은 신앙에서 어린아이이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닮은 자로 자라감으로 어린아이 일을 버려야 한다.(고전13:11)




둘째 어떻게 하나님을 알 것인가?


1. 지혜와 성령으로 알 수 있다.
지식은 정보라면 지혜는 원리와 이치라고 말 할 수 있다. 지식은 책이나 학교, 연구로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하나님이 부어주실 때 가지게 된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에 관하여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 성품과 뜻은 지혜로 알 수 있다.


2.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계시의 영이시다. 지혜나 계시의 정신이 되시는 성령은 하나님이 주셔야 얻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하나님께 늘 간구 해야 한다.


3.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지식을 통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사귀어 보고 알게 된 체험적 지식, 관계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성품, 마음 뜻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적 지식은 말씀을 순종하여 체험할 때 얻는다. (요14:21)



결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면 거룩한 삶을 살고, 사랑의 하나님을 알면 사랑의 삶을 비로소 살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앙의 목표요 본질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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