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1일 수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막3:1-6

세상에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으로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신앙세계 안에도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당시에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들은 종교적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과 헌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라고 탄식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실 때 기뻐하고 축하할 자리에서 못마땅하게 여기고 분노하며 나아가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심을 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6개 조항을 만들고 각 조항에 39가지의 세부지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법은 붙잡으면서 정작 붙잡아야 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버렸다. 바리새인은 법을 지키겠다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라고 준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바리새인은 선한 일,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계획하고 또 열심을 가질 때 하나님과 하나님마음을 잃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한다. 하나님 없는 예배, 선교는 그 열매가 하나님을 위하지 못한다. 하나님 마음을 잃으면 생명을 구하겠다고 열심을 낼수록 죽이는 결과를 냄을 기억하자.

둘째 마음이 완악해지면 그렇게 된다.
'완악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자기 중심으로만 굳어진 마음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기에 변화가 없다. 자기중심의 신앙이 된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여 늘 자신이 체험한 것을 절대화하고 모두 자기처럼 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왜 자기들처럼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졌다.(막2:18) 자기중심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남을 말로 정죄하는데 사용하였다.
내 신앙만이 옳고, 자신이 속한 교회와 교단만이 바르다는 생각을 가질 뿐 아니라 이것을 말로 나타내어 정죄한다면 우리는 죽이는 것을 구하는 바리새인 신앙이다.

셋째 예수님을 만나야 잘 못된 모든 것이 회복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상식적인 자리와 상식을 벗어난 자리에 교대로 머물며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자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 중심이 된다. 이 때는 육신의 손은 건강하더라도 영과 마음의 손이 마른 것이다. 이 때는 주님이 오실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손 마른 자를 찾아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쳐주신 예수님은 당신의 마른 마음, 마른 사랑, 마른 꿈 마른 신앙과 삶을 펼게 하실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정죄하지 않고 고쳐주실 것이다.

결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은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살게 된다. 신앙인이 이것을 방치하면 신앙과 삶이 점점 말라가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탄식듣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신앙 삶이 말라있더라도 찾아가면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마른손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