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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6일 수요일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6-19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6-19

하나님을 아는 것은 건강한 신앙과 교회를 갈망하는 자가 늘 해야할 기도제목이다. 무엇보다 교회가 할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1. 은혜와 평강이 풍성해진다. (벧후1:2)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햇빛, 공기, 자연, 역사, 먹고 마시는 것을 선물로 주신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주시는데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선물이다. 특별 선물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환경이 좋고 일이 잘 풀려갈 때나 그렇지 못할 때도 마음에 안전함의 평강을 주신다. 벧후1:2절에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풍성케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2. 하나님을 아는 자는 마귀를 향하여 강하고 용맹을 발하게 된다. (단11:32)

단11: 32에“...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강하다'는 것은 사방에서 압박을 준다 할지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용맹을 발하다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확장하여 자기공간을 넓혀감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환경에 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바꿔 가는 자가 된다.

3. 주님을 닮아 자라간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죄에서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아직까지 어린아이이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닮은 자로 자라감으로 어린아이 일을 버려야 한다.(고전13:11)

둘째 어떻게 하나님을 알 것인가?

1. 지혜와 성령으로 알 수 있다.

지식은 정보라면 지혜는 원리와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은 책이나 학교, 연구로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하나님이 부어주실 때 가지게 된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에 관하여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 성품과 뜻은 지혜로 알 수 있다.

2.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계시의 영이시다. 지혜나 계시의 정신이 되시는 성령은 하나님이 주셔야 얻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하나님께 늘 간구 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지식을 통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사귀어 보고 알게 된 체험적 지식, 관계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성품, 마음 뜻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적 지식은 말씀을 순종하여 체험할 때 얻는다. (요14:21)

결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면 거룩한 삶을 살고, 사랑의 하나님을 알면 사랑의 삶을 비로소 살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앙의 목표요 본질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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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고전15:10

오직 은혜 고전15:10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은혜에 의해 사는 삶이다.

은혜는 성경에서 가장 강조되는 내용 중 하나 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은혜에 의하여 사는 삶인가?

첫째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은혜란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에게 찾아와 임재하시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십자가의 공로가 무엇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고’ ‘예수님은 찔리고 상하시고.’ 또 ‘예수님이 징계를 받으신’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사53:4-6)

따라서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이 우리가 당해야 할 질고, 슬픔, 허물, 죄악을 대신한 것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로로 평화와 치료를 얻고 죄사함을 받으며 자유케 되었음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에게 때를 따라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데 이 능력으로 사는 것을 은혜에 의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이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는 삶이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가 있다.

1. 예수그리스도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기준임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주셨을 뿐 아니라 매일 삶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신다.

은혜의 시작이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또 매일 은혜 받는 길도 예수그리스도시다.

은혜에 의해 살아가는 삶은 첫째도 예수, 둘째도 예수, 마지막도 예수이다.

2. 신앙생활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긴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정해주시는 신앙, 봉사, 헌신을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3. 아는 것, 경험 그리고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전통들을 내려 놓는다.

셋째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는 삶이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대가를 지불하고 받아야 한다면 이 세상에 은혜를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에 값을 메기지 않고 값없이 주시겠다고 정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이 주신다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을 통해서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 믿음을 5가지로 표현하라.

1. 하나님은 은혜가 한없이 풍성하신 분이심과 은혜 주시기를 원하심을 신뢰하라.(민6:25)

2. 하나님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히4:16)

3.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라.

4. 겸손하라. (벧전5:5) 겸손은 주님을 내 앞에 계신 분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다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5.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은혜 주신 목적에 온 삶으로 동참하라.
그리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에 머무르라.

결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풍성하신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에게 찾아와 능력을 나타내시어 그 능력으로 살게 하시는데 이것이 은혜에 의해 사는 삶이다.

바른 신앙생활은 날마다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능력을 받고 그 능력으로 살며 또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전하며 사는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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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삶 롬1:17

믿음으로 사는 삶 롬1:17

신앙생활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성령충만을 받는다.

믿음으로 기도응답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는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살 수 있는가?

첫째 믿음이 아닌 것들을 버려라.

믿음이 아닌 것들은 아무리 믿고 붙잡아도 믿음의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믿음이 아닌데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몇 가지만 예로 든다면 먼저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믿음이 아니다.

또 자신의 열정이나 가치관에 근거한 확신도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내가 정한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달라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인도하여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것이다.

지식, 지적 동의도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바른 일이지만 그것이 믿음이라면 바리새인은 최고로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귀신들도 믿음이 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 꾸중을 들었고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여 두려워 떨었음에도 믿음을 깨는 존재였다. 그리고 환경이나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

둘째 바른 믿음을 붙들라.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표현되는 3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믿음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 신뢰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께서 조명하여 알려주실 때만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알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건다. 라합은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 주었고,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나아갔다.

노아는 비를 본적도 없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를 지었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가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살았기 때문이다. 반은 하나님은 반은 다른 것에 거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100%를 하나님께 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본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믿음으로 영생 얻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 믿음을 민수기 21장에 기록된 한 사건을 통해서 가르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은 장대 위에 놋뱀을 높이 달고 바라보게 하심을 살게 하셨다.

이것은 믿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봄을 통해서 살고 구원얻게 됨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삶이 정리되고 풀린다. 막혔던 문제가 열리고 새 길이 보임을 경험한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울수록 약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본다.

결론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믿음이 아닌 것들을 분별하여 내려 놓아야 함을 기억하자.

그리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어보라 하나님은 책임지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바라보자. 요동치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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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행1:4-8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행1:4-8

신앙생활은 성령에 의해서 사는 삶이다. 신앙생활에서 성령이 빠지면 정신 수양이거나 종교생활일 수 있어도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생활은 아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에 의한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첫째 성령세례눈 예수님의 명령임을 받아들이라.
우리 신앙의 모델이신 예수님은 전적으로 성령에 의한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과 대화 중에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아셨을까? 성령이 주신 지식의 말씀의 은사 때문이었다. 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할 때에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다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하난 둘돌을 내려 놓고 돌아갔다.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에게 성령의 지혜의 은사가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에 의한 삶을 사실 뿐 아니라 성령에 의한 삶을 가르치셨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에 의한 삶을 살았다. 그 기록이 사도행전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우리에게 성령에 의한 삶을 가르쳤다.(엡5:18) 성령세례는 교리나 개인의 취향 또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반드시 행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영역이다. 제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듯이 이제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에 의해서 살아가야 할 차례이다.

둘째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해하라.
하나님은 성령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권능을 나타내신다. 성령의 권능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표적, 기사, 기적이라 부른다. 또 내적으로 나타날 때 평강, 확신, 사랑, 기쁨 등의 열매라고 부른다. 지속적으로 성령에 의하여 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왜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목적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신앙 성숙의 척도라고 생각하거나 노력에 대한 대가로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또 하나님이 신임한다는 징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전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이해이다.
하나님께서 성령 은사를 주어 권능이 나타내시는 목적을 크게 3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1.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행1:8)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심으로 은사를 전도의 도구로 사영하였다.(행4:31)
2.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3. 직분을 잘 감당하여 교회에 유익을 주게 하기 위함이다. (엡4:11-12)

셋째 성령세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세례는 자주 성령충만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성령충만과 구분할 때 처음으로 성령받는 사건을 성령세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중생하고 다른 성령의 역사다. 중생은 성령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감화 감동의 역사이고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녀에게 임하는 2차적인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한 성경적 가르침이 있다.
1. 성경대로 예수님을 믿어라. 예수님을 죄사함의 구주로 믿어야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2.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지금 마음을 깨끗이 하라.(엡4:30-31)
3. 믿음으로 성령충만을 구하라.(눅11:11-13) 성령세례는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심
4. 성령충만을 간절히 갈망하라. (요7:37-39, 사44:3)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 갈망하라.

결론
성령의 권능은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령이 권능이 은사로 나타내심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죄와 세상, 악한 마귀에게서 승리케 하기 위함이다.그래서 우리는 매일 호흡을 하듯 지속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하여 성령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성령세례를 구하자. 마음을 깨끗이 하여 구하되 목마른 사슴이 물을 구하는 갈망함으로 기도하되 주실 때까지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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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에 힘쓰는 교회 막1:35-39

복음전파에 힘쓰는 교회 막1:35-39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과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복음전파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것이다. 어떻게 전도에 힘쓰며 살 수 있을까?
첫째 전도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서 있다는 증거임을 확신하라.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전도를 목적으로 사신 삶이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본받아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행5:42) 바울 역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심의 목적이 이방인에게 전도하라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딤후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전도에 힘쓰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서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도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구원의 기회를 잃을 것이고 하나님의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겠다고 말씀하신다.(에스겔3:18)

둘째 전도에 대한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라.
전도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정확하게 전해 주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만들어 주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도에 대해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1. 전도는 쉽다. 누구나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믿고 천국가세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세요’라고 한다면 전도한 것이다.
2. 전도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3. 전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고전1:21)
4. 전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다.
전도를 듣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난다. (롬1:16 고전1:18)

셋째 어떻게 전도할 지를 배우라.
최고의 전도법은 예수님을 따라하는 것이다. 전도에 대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 이 있다. 예수님은 전도를 목적으로 사셨고 또한 예수님은 전도를 계획하셨다.(막1:38) 예수님은 생활 속에서 전도의 기회로 포착하며 사셨다. 예수님을 따라 전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5가지를 따라야 할 것이다.
1.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전도의 기초가 된다.(롬10:13-14)
2. 변화된 삶을 살아라. 때때로 비기독교인들은 복음을 말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이 변화되어 복음을 누리고 사는 삶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3. 기도하라 - 전도의 시작은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골4:3)
4. 성령의 충만을 구하라. - 성령은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주님을 닮게 하신다.
5. 자신은 하나님이 세운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라.

결론
코카콜라 사장이 내 피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공산권에까지 코카콜라는 들어가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전도라고 알고 사셨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따라 전도를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전 생애를 기회로 복음을 전한다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이 꿈을 품고 금년에 우리는 함께 복음전파에 힘쓰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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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회를 축복하는 교회 민6:22-27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세상을 축복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성도들은 왜 이웃사회를 축복해야 하고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알고 실천해야 하겠는가?

첫째 그리스도인이 이웃과 세상을 축복할 이유 3가지을 알자.

1.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의 근거는 믿음이고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성도가 이웃사회를 축복하는 근거는 바로 하나님이 이웃사회를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장 아시는 예수님의 삶은 축복을 실천하셨고 가르치셨고 마지막에는 축복하시며 승천하는 삶이셨다.(눅24:51)
2. 성도는 축복의 통로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복을 주셨다. 그 복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복을 주신 목적은 그 복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 삼은 성도가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민6:27) 만일 성도가 세상을 축복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통로가 막히는 것이 된다.
3. 세상을 축복함으로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담겨 있다. 성도가 그 목적을 알고 사용하면 복을 누리게 되나 목적을 무시하고 살면 자신은 물로 세상에 고통을 주게 된다. 성도들에게 복을 주신 목적이 이웃을 축복하라고 주신 것이기에 세상을 축복함으로
성도 자신도 복을 누리게 된다. 교회 역사 속에서 개인, 가정 교회에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살 때는 언제나 복을 주신 목적대로 이웃사회를 축복할 때였다.

둘째 어떻게 축복할 것인지를 알자.
사람들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축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인가 있으면 축복할 수 있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축복하는 것은 이것하고 전혀 다르다. 축복이라는 말이 ‘복을 빌다’는 뜻이듯이 성도가 축복하는 것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축복하시도록 부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복을 비는 존재, 부탁하는 존재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백성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 3가지를 축복하라고 가르치신다.
1.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기를 축복하라. (24)
2. 은혜의 축복 베풀기를 축복하라.(25절)
3. 평강 주시기를 축복하라. (26절)

결론
성도가 축복하면 약속대로 하나님은 세상을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축복하는 일을 멈춘다면 세상은 축복의 기회를 잃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탄은 사이비 복을 참 복이라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할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7)을 기억하며 다시 이웃과 사회를 축복하는 일을 시작하자.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복이심을 알고 이 복을 받고 살 때까지 축복하는 일을 쉬지 말자. 이것이 당신과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복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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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은 우리의 생활에 3가지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죄로 막힌 하나님과 관계를 치유하고 이웃과 관계를 치유한다. 그리고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이러한 권능으로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 믿게 함으로 치유하여 회복하신다. 성령의 권능의 나타남에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떤 믿음을 통해서 나타날까?



첫째 성경을 기반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이어야 한다.

바른 신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성령의 인도를 믿어야 한다. 성경만을 고집하며 성령을 무시하거나 성경 없는 성령의 인도만을 주장한다면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 없이 말씀만을 외치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에 실패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사두개인들은 어떤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 성경도 모른다고 책망을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없이 말씀만 붙잡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말씀 없이 성령만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듯이 성령없이 말씀만을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은 말씀의 기초 위에 성령의 인도를 믿는 신앙이다.



둘째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구현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구원 이후에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신다. 또 구원얻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신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성령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뵙자말자 거룩해지기 시작했다. 모세가 온 지면에 있는 사람보다 온유한 자가 된 것도 온유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을 던지는 백성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의 고민은 행하는 신앙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이 되게 하신다.



셋째. 육신을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육신을 좇으면 망한다며 엄하게 경고한다. 육신은 타락한 죄악의 성품으로 마귀를 좇아 스스로를 도적질하고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한 때 선을 원하는데 자기 안에 다른 것이 자신이 미워하는 악을 행하게 한다고 탄식하였다.(롬7:15, 롬7:21-23) 바울은 악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육신이고 이 육신은 성령을 좇을 때에 이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갈5:16-17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른 믿음은 육신을 이기기 위해서 금식하고, 결심하는 것보다 성령을 좇는 것을 따르는 신앙이다.



결론

성령의 권능은 믿음을 통로로 나타나 개인,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성령이 권능을 나타나기 원하는 자마다 자신의 믿음이 바른 믿음인가를 살펴야 한다.

1. 당신의 믿음은 말씀을 기초하여 성령께 인도하심을 믿는 신앙인가?

2.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생활 속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인가?

3. 당신은 성령을 좇아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신앙인가?

우리 교회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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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을 회복하라 계2:1-7

그리스도인들은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단장하듯이 매일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속 사람을 단장하며 살아야 한다. 말씀을 거울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딤후3:15-16) 오늘 본문 말씀을 거울 삼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세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사는 일에 민감 하자.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어서 자랑할 것이 많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의지하는데 민감성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좋은 목회자가 교회를 이끌어 왔다는 것(바울, 아볼로, 디모데, 사도요한)과 어려움을 참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그리고 신앙의 전통이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였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할 위험이 있을 때 예수님은 오른 손으로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별은 교회이고, 금촛대는 교회의 영적지도자다. 하나님은 교회의 주인이시고 교회 지도자의 주인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삶에 주인이고 가정의 주인이시다. 삶의 전 영역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가자.


둘째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한 행함을 기뻐하신다.
사람은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를 언급하시며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이루어진 행위를 믿음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한 행동들, 믿음 때문에 참고, 용서하고, 예배드리면 이 모든 행위를 그의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신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를 드리더라도 믿음 없이 드린 것이라면 그 아름다운 덕목들조차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 인내 등을 칭찬하신 것은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오고 믿음으로 한 행함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셋째 첫 사랑을 회복하자.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목회자들에게 체계적인 신앙훈련을 받은 덕에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부러움을 살만큼의 수준이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봉사할지를 알았다. 훈련을 잘 받아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빠진 것이 없이 완벽하게 잘해내고 있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었다. 예배에 감격이 없고 기쁨이 없다. 봉사의 즐거움이 없다. 하나님은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권태기에 빠지면 예전처럼 다하지만 곳곳에 미스가 생긴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잃으면 형식적으로 다 해도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의 순수함과 신비함이 회복할 시기라고 말씀한다. 첫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때 그것이 서툴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결론
모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할 때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신앙의 삶을 살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3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사는 일에 민감하자.
둘째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하는 행위를 기뻐하신다.
셋째 첫 사랑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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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4:1-14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4:1-14

마땅히 해야할 사명을 포기하면 그것은 신앙의 담대함을 잃어 확신 있게 살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애에 부딪혀 성전 재건을 그만 두었을 때 그들의 신앙과 삶은 점점 병들어 갔다. 하나님은 사명회복의 길을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이심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스가fi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의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할 것인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에게 오셔서 이 어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문제의 산을 옮겨 달라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때때로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얼마나 기도했을까? 그런데 14년이나 성전재건의 문을 열리지 않던 어느날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너희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네가 너희에게로 가겠다. 먼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문제의 산을 옮기시겠다는 것이다. (슥1:3)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마땅히 해야 할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 우리는 먼저 할 것이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임을 기억하자.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예배 없는 데서 예배의 자리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시각을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리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둘째 성령께서 회복시키신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짓 고소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는 성전 재건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성전재건이 중단된지 14년간이 지나면서 백성들의 마음에는 성전 재건은 넘을 수 없는 큰산으로 인식되어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집이나 가꾸는 현실적 향락에 빠져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이는 힘과 능으로 안되지만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불가능해서 못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모든 준비가 다 되었던 것이 왜 중단되었는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도 재건 될 상황이 아닌데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 되어지는 것임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가 사명을 이루는 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주실 때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 또 자격이 안되는 우리에게 조건없이 호의를 베풀어 주셨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 시편103편에서 잊지 말라고 말했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신 은혜 또 생명을 파멸에서 건지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왜 은혜를 간직하기를 원했을까? 은혜는 하나님께 맡겨주신 사명을 쉽고 즐겁게 감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은혜가 떨어지면 짐이 되어 여러 이유를 대며 사명을 놓아버린다. 아무리 큰 일도 은혜만 있으면 특권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잃어버린 사명 회복을 위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이다.

결론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심으로(요17:4) 사명받은 자의 본이 되셨다.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회복하여 그 일에 열매를 거두자.
1.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2. 성령의 회복을 기대하라. 3. 은혜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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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을 잘 한자들은 복이 있다. 딤전3:8-13

직분을 잘 한자들은 복이 있다. 딤전3:8-13

‘왜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은 사명을 깨닫고 이루어가는데 유익하다. 본문은 집사의 자격에 대한 기록이지만 본문을 통해서 ‘왜 집사가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질문해 볼 수 있다. 본문은 사명자가 갖출 7가지 자질을 가르친다



첫째 단정해야 한다. (8절)

단정함이란 깨끗하고 품격 있는 인격과 거기서 나오는 행동과 태도를 말한다. 집사에게 단정함을 요구하는 것은 단정하지 않으면 마귀의 올무에 넘어져서 봉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귀는 언제나 단정하지 않은 틈을 노려 넘어뜨린다. 엡4: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둘째 일구이언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확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교회에 말 잘하는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우나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교회가 튼튼하게 서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가 바른 언어생활을 할 중요한 이유이며 더 나가서 적극적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시기, 질투의 말로 이간질시키지 않아야 한다.(11절)



셋째 술에 인박이지 않아야 한다.

술은 적은 양이라도 가까이 하면 인박이게 되고 죄로 이끌어 사명과 꿈을 빼앗아간다. 그리고 모든 싸움, 폭언, 성적 죄가 술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술취함을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엡5:18) 술은 보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잠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넷째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 한다.

더러운 이란 불법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다. 돈 자체는 더럽지 않으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하게 벌 때 하나님은 더럽게 보신다. 세상은 돈을 사랑하고 우상시하여 돈버는 일에 양심을 팔고 목숨까지도 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바른 길을 선택하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기로 매일 결단해야 한다.



다섯째 믿음의 비밀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여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일을 맡겨 주신 것을 축복과 특권으로 여긴다. 믿음의 비밀을 아는가 모르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주님의 일은 믿음 없이 보면 가장 불쌍한 일이나 믿음 안에서는 만입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감사거리다.



여섯째 충성되어야 한다.

특히 작은 일에 충성되어야 한다. 내게 맡겨진 작은 일을 큰 일처럼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일을 맡겨주신다. 그러나 작은 것에 소홀하거나 힘들어서,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일곱째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라.(12절)

교회 일은 열심인데 배우자나 자녀를 돌보지 않는다면 바른 믿음이 아니다.

가정이 화평해야 자연스러운 봉사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라고 가르치신다.



결론

집사는 헬라어 디아코노스에서 나온 말로 종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종을 천하게 여기나 하나님은 종을 더 존귀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종이 되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자를 크다 여기시고 그를 지도자로 세우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장자에게 두 몫을 주셨듯이 사명 받은 자에게 두 몫의 은혜와 복을 주신다.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큰 담력은 직분을 잘 감당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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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있는 신앙 히11:5-6

증거 있는 신앙 히11:5-6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변화된 삶을 살거나 밋밋한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이 변하여 뜨겁고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때 큰 격려를 받고 닮고 싶은 소망을 가지게 된다.

에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닮고 싶은 소망과 격려를 주는 신앙의 모델이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을 우리도 갖기 원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을까?


첫째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반드시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남다른 성경지식, 기도, 봉사, 헌금생활이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이 좋은 신앙의 증거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증거까지 되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반드시 믿는 증거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실존을 반드시 믿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반드시 믿는 믿음은 반신반의하거나 의심하는 것과 다른 행동으로 표현된다.

(약2:17,22)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큰 민족을 만드실 것을 진정으로 믿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순종하였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을 믿자 생명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은 모세의 간증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던 장인 이드로까지 하나님을 믿게 만들었다.(출18:1-10)


둘째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즉 하나님은 믿는 자를 책임지신다고 믿음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한 후에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모든 양식이 떨어졌다.
이 때 하나님은 내가 하늘에서 양식을 주어 먹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백성들은 매일 일용할 양식만을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그 때에 일부 사람들은 그 날 먹을 양식 외에 다음에 먹을 것도 미래 챙겨서 거두어갔다.
이유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내 삶의 전 영역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책임지시는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산다면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에녹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를 하나님은 책임지신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누군가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뜻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내 뜻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기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듯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뜻, 내 자아를 깨뜨려야한다.
또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미지근한 신앙을 벗어나는 신앙의 전환점들이 있어야 한다.

에녹은 65세가 신앙의 전환점이었다.

65세 이후부터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 죄를 심판하러 임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 후로 그는 아들 이름을 므두셀라로 짓고 그 아들을 보면서 세상 죄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깨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오늘날 잠자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만을 생각하며 방종하며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심판하실 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깨닫는 신앙의 전환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결론

신앙 생활은 믿는 것이 생활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믿는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며 사는 것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은 가지면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생활 속에 나타나 그를 보는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당신과 나는 그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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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그리하자. 히10:19-25

더욱 그리하자. 히10:19-25



예수님은 한 율법사의 질문에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죄로 깨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시키신 후에 사람들로 그 사랑으로 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중점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회복된 관계를 바르게 세우며 사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관계를 세울 수 있는가?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22절)

관계는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세우는 것이다.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관계를 바르게 세우려면 지식이 필요하고 기술을 배워야 한다.
또 지식대로 행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에게도 관계를 바로 세울 지식이나 능력 부족하다.
내가 준비되었는데 상대방이 안되었고 상대방은 준비가 되었는데 내가 준비되지 않아서 늘 관계에 문제를 경험하며 산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관계를 온전케 세워주신다.

그것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병든 자아상이 치료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직접 깨지고 병들어 회복이 불가능한 관계라도 온전케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잠16:7이 바로 그 약속이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둘째 서로 격려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관계에 승리하는 사람들은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 좋은 점을 칭찬하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남의 장점을 무시하고 깎아 내리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평생 다윗의 허물을 찾고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신앙도 삶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바나바는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던 사울의 장점을 보고 그를 격려하여 사울이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는 것은 신앙과 삶을 세우는 영적 원리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하고 격려할 것이 보인다.
그것을 진실되게 칭찬하는 것은 그를 크게 격려하여 좋은 관계를 맺게 할 것이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 관계를 세우는 힘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사랑과 선행을 찾아 격려하기로 결심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난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한다.
비난은 그 비난을 듣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을 죽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무서운 독소이다.

그래서 잠6:19에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한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고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결국은 관계의 실패자가 됨을 기억하자.



결론

관계가 깨질 때 가정과 교회도 지옥처럼 변한다.
관계가 깨질 때 모든 좋은 것은 가장 나쁜 것이 되어 돌아온다.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을 신앙생활의 우선순위임을 기억하며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더욱 힘쓰자.

둘째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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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7-17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7-17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을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간다. 감사하면 구원받은 확신, 말씀에 대한 확신, 응답에 대한 확신 등 영적으로 견고해 지게 되고 또 감사할 때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또한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감사가 사라지면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삶 속에서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감사는 우리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통로이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골로새서 3장은 범사에 감사하기를 가르치면서 옷을 비유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첫째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림으로 감사할 수 있다.(8)

우리에게는 감사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들이 있다. 옷으로 비유하면 5가지인데 이것을 벗어야 감사할 수 있다.
1. 분과 분노의 옷이다. 분은 안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의 태도, 발전하면 외적으로 폭발하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2. 악의의 옷이다. 악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고자 나쁜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함
3. 훼방의 옷이다. 훼방은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좋지 못한 말로 상대를 비방하는 것임
4. 입의 부끄러운 말의 옷이다. 상대방 앞에서 치욕적인 말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
5. 서로 거짓말하는 옷을 벗어야 감사할 수 있다.

 
둘째 새 사람으로 옷을 입음으로 감사할 수 있다.(12절)

1. 긍휼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벧전 3:8)=예수님의 마음이다
2. 자비입니다. 자비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3.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4. 온유입니다. 온유는 길들임을 받아 순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말한다 .
    진정한 온유는 하나님께 길들임을 받은 것을 말한다
5. 오래참음입니다. 인내는 상대방의 부당한 처사에도 함부로 분노하지 않는 생활태도이다.
 


셋째 용납과 용서의 외투를 입을 때 감사할 수 있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죄의 문제에 접할 때 감사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 이러할 때도 감사하기 위해서

1. 용납의 옷을 입자. 사람들과 만날 때 죄는 아닌데 다를 때 입어야 할 옷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죄는 아니나 내 기준이 아닌 것은 용납할 때 감사할 수 있다.
2. 용서의 옷을 입자. 죄를 지었을 때 입어야 할 옷이다.
3. 사람의 띠를 묶어라. 사랑은 허물을 덮고 오래 참는 것이다.


 
결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없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대부분 믿음이 적을 때 가장 큰 갈등이 헌금 문제이다. 하나님은 감사와 자원함으로 드리는 손길을 기뻐하신다. 감사는 우리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통로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지키기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누군가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지킬 수 없는 명령을 주시고 지키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명령하실 때는 더 좋은 계획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은 더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면 감사를 받는 대상과 관계가 좋아진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과 더 친밀해진다. 어떤 사람에게 감사하면 그와 관계가 좋아진다.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은 믿음이 견고해진다는 말하고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믿음이 있는 자로 여겨 믿는 자가 받는 복을 주신다. 골2:7, 시50:23

눅17장에는 예수님께 고침받은 10명의 문둥병 환자중 하나인 사마리안이 자신을 고쳐주신 것을 감사한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역대하 20장에 여호사밧 왕이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 연합군이 침략할 때 하나님의 책임져주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성가대를 조직하여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 하도다󰡑외치며 나가자 하나님은 침략자들이 서로 싸우다 다 죽게 만들어 버리셨다. 하나님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다.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할 수 있다.


범사에 감사는 사람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찬송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함을 노래했다. 시103:1-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는 3 방면에서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

1.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 (시103:3 -5)
2. 현재에 누리게 하시는 은혜를 세어보며 감사할 수 있다. 
3. 미래에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실 것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


둘째 감사는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자.


감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서 반드시 순종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다. 범사에 감사는 선택이 영역이 아니기에 감사할 방법을 찾아 해야 한다.

1. 어떤 상황이든지 감사하며 살기로 결단하자.
2. 불평이 나오기 전에 먼저 감사한 말을 하자.  예) 감사하지. 감사하구만. 감사하네요.
3. 감사할 것을 찾아서 감사하자.
4. 감사는 배우고 훈련을 통해 잘 할 수 있다. 
5.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으로 감사하라.
  1) 찬송으로 감사하라.  2) 기도로 감사할 수 있다.  3) 물질을 드리며 감사하라.



결론

믿음이 좋은 성도가 자녀가 믿음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와 사귈 때  2가지를 꼭 보라고 가르쳤다. 첫째는‘그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인가?’ 두 번째는 ‘그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인가를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사람을 배신하고 손해를 끼쳐 억울하지 않을 신앙의 사람, 하나님이 복주실 사람이라고 교훈해 주었다. 범사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고 그 복으로 세상을 축복하며 사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행7:8-16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행7:8-16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기념비에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왜 가장 좋을까? 요한계시록3-4절에는 사망,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없는 천국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삶에 천국이 임하는 이유 2가지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우리가 묻지 않고도 행할 영역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학생이 공부에 열심하는 것이나 성도의 주일 성수는 마땅하게 행하여 열매를 얻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죄사함, 마음에 평안, 천국은 사람의 노력으로 안된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된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심하며 살거나 하나님만이 다하신다고 말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균형을 잃은 삶이 되어 눈물과 고통, 사망의 그늘아래 살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행하게 하며 또한 그 일을 완성되도록 하기 때문에 늘 천국을 경험하게 된다. (고전10:31, 빌1:6, 고후9:8)





둘째 고난 중에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고난 중에 크게 두 가지로 우리는 형통함으로 인도받는다.



1. 고난을 통과하지 않도록 막아주셔서 형통하게 하신다.



이삭이 극심한 가뭄의 해에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얻었다. 우물을 잘 찾아내어 많은 가축을 먹이는 자가 되었다. 이유를 블레셋 왕의 입술을 통해서 듣게 된다󰡒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습니다.“



2. 고난을 다 통과하게 하신 후에 형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고난을 겪게 하신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고 또 감옥의 고난을 다 겪게하심을 통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이 처럼 고난을 통해서 온전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을 때는 기도하고 금식해도 고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난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없애는 대신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도록 힘을 주신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영원하지 않고 감당할 만한 고난이 되게하시며 이 고난의 끝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기억하라 신8:1-8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모든 성도들을 광야와 같은 삶에 처하게 하실 때가 있다. 그것은 엄마가 아기를 더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고 강제로 아기의 젖을 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광야의 삶을 통해 성도들을 더 성숙한 신앙과 삶으로 다듬어 가신다. 그리스도인은 광야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시는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첫째 광야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훈련장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하나님은 자신만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것마다 들어주시고 또 자기 뜻대로 해도 다 용납하심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맞아?’라는 의문에 빠질 때가 다가온다. 그것은 자신이 환경과 사람 때문에 광야 같은 삶에 처해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예기치 않는 문제로 낙망한다. 질병을 만나 좌절하는데도 왜 하나님은 가만히 두시는가? 믿고 바라고 살던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제시하는 기준으로 살라고 훈련하는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 12해 혈루증 앓던 여인, 다윗, 모세 ...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므로 광야에 처할 때는 원망하지 말고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기억하는 자 되어야 한다.



둘째로 광야는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를 일생이라고 하듯이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후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라 가는 전 과정을 영적 일생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구원받은 것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을 닮아 계속 변해 가야한다. 그러나 어떤가? 구원은 받아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성품은 구원받기 전이다. 대부분 옛 사람의 말, 생각, 가치관,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척박한 사건을 경험케 하심을 통해서 옛 사람을 벗고 하나님 닮은 새 사람으로 훈련해 가신다. 모세를 보라. 그는 광야에서 겸손을 배웠다.(민12:3), 다윗은 광야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l119:67) 또 하나님은 광야에서 원망을 버리고 감사하며 살도록 훈련하신다.



셋째 광야를 지나면 틀림없이 좋은 일이 일어난다. 

광야는 고난의 자리다. 눈물의 자리다. 많은 것을 잃는 자리다. 그러나 잃은 모든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장 좋은 것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얻고 하나님 닮은 성품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예비하신 것을 선물을 얻는다. 어떤 이에게는 관계의 승리를 주시고, 어떤 이에게는 영적 능력을 선물로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한 가나안을 주셨지만 우리에게는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얻게 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광야에 거할 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라도
“틀림없이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라고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

주 안에서 당신이 삶이 꼬이고 당신 뜻대로 이루어 주시지 않아 광야에 있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앙이 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인정하신 것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훈련되어질 때라는 사인일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광야 이후에 틀림없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광야에 머물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고, 하나님 닮은 주의 백성이 되게 하심임을 기억하자.

2010년 9월 8일 수요일

제자신앙 막8:27-35

제자신앙 막8:27-35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무리와 제자이다. 무리들은 오직 자기의 필요를 얻을 목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배우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더 사랑하여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그리고 제자들을 세우라고 유언하셨다. 제자신앙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말씀한다.











첫째 제자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간절히 만류하다가 예수님의 큰 책망을 받았다. 이유는 베드로의 예수님을 위한다는 진심과 충성심에 자기 부인이 빠졌기 때문이다. 자기 부인이 빠진 신앙은 무리들처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문제 해결, 병 치유, 기적만을 구한다. 필요가 사라지면 미련 없이 예수님을 떠나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게된다. 이러한 무리들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는데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어디를 가느냐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기를 바란다. 제자신앙은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이다. 자기 부인은 나를 성취하고 나를 실현하는 자기 중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하나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자신의 뜻,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 부인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한다.



자기 부인은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하기에 자기 것을 잃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잃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자신의 뜻, 계획, 의지조차도 부인되어야 한다. 이처럼 다 포기하면 우리는 무엇으로 산단 말인가?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신앙에는 더 큰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다. 나누어주며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산다. 자기 부인, 자기 포기가 주님을 따르기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 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때를 따라 꼴을 먹여주시고, 강한 산성과 피난처가 되사 원수의 공격을 막아 주신다. 또 우리 대장이 되어 원수에게서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궁핍과 패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라 하겠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1. 먼저 하나님을 체험케 하여 강력한 영적 군사가 된다.



2. 제자들은 하나님이 준비한 선물을 얻으며 산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를 개발하고 실현하게 된다.



4.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며 한다.











결론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복 있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더 복된 것은 제자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제자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 것을 포기하는 제자신앙을 가지는 것은 당장 손해처럼 보일 수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우리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하실 뿐 아니라 세상을 축복되게 하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1일 수요일

유쾌하게 되는 길 행3:11-21

유쾌하게 되는 길 행3:11-21




하나님은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 삶이 회복되어 새롭고 기쁨이 가득찬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 본문은 이러한 삶을 유쾌해진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베드로 설교를 통해서 유쾌함에 이르게 길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첫째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유쾌함에 이르려면 사람과 환경만을 바라보던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던 사람이 치유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몰려왔다. 이 때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앉은뱅이가 치유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설교하였다. 이 말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유쾌해지도록 정한 길은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외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유쾌함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정에 유쾌함이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는 직장생활에 유쾌함이 임한다. 예배도, 찬양도 봉사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면 유쾌함에 이른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유쾌하게 하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게 된다.







둘째 죄를 처리하여야 한다.



죄는 영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우리를 파괴하여 유쾌함을 빼앗아간다. 말씀을 읽고 들어도 죄가 있으면 영혼은 계속 메말라간다. 처리되지 않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고 말씀한다. 유쾌한 삶을 위해서는 회개로 죄를 처리해야 한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희게하시고(사1:18) 회개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사 43:25, 히10:17) 회개로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은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유쾌함에 이르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과 죽음, 저주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엡1:7, 롬3:24, 골1:14) 그래서 행4:12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말씀한다.







셋째 예수를 전하야 한다.



섬기는 것보다 대접받고 존경받고 칭찬 받을 때 기쁘고 행복하지만 이보다 유쾌해지는 길이 있다. 바로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할 때이다. 대접받으면 나만 행복해지지만 예수님이 잘 전해지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나 뿐 아니라 복음을 받은 사람도 유쾌함에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 위해서 핍박받고, 예수님 때문에 악한 말을 듣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 말씀을 깨닫고 실천한 사림이다. 그는 자유자였으나 스스로 종이 되었다. 자신이 원치않는 유대인처럼 되기도 하고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되기도 하였다. 그 이유를 고전9장 23절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바울의 일생은 유쾌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결론



범사에 예수님을 바라보면 불쾌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유쾌함에 이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유쾌함을 막는 죄를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면 전하는 자도 행복해지고 듣는 자에게도 유쾌함에 이르게 한다.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신분이 변하면 삶도 변해야 한다. 막2:18-22


신분이 변하면 삶도 변해야 한다. 막2:18-22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어떤 것일까?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혼인 잔칫집이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둘러싼 환경이 열악하고 자신 속에 연약함들이 가득하더라도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 넘치는 삶을 산다. 본문을 통해 혼인잔칫집 같은 기쁨 가득한 신앙생활을 위해 어떤 신앙이 되어야 할지 3가지 질문을 통해서 알아보자.

첫째 나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은 개인과 나라, 온 우주를 타이밍을 가지고 통치하신다.(전3:1-8)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따라 살면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살게 되어 삶과 영적인 일에 열매를 거두게 된다. (고후6:2)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사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님에게 지속적으로 기적을 나타내셨다. (요2:4-5, 요7:8)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조차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해야함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의 때를 따르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구원의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둘째 나는 늘 변화하는 것에 신앙의 초점을 두는가?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비유로 새 천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않는 다는 것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새 천 조각,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를 믿고 좇는 사람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상징하고 낡은 천과 낡은 가죽 부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의 사람과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이 비유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삶의 방식도 새롭게 변화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위한다하면서 늘 초상집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그들의 변화되지 않은 삶이 그들을 천국을 경험케 하는 신앙이 아님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화되는가? 말씀과 성령을 통해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지는 것이 변화된 삶이다.(롬12:2, 엡4:23-24)

셋째 나는 목적과 본질을 추구하고 있는가?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율법과 전통을 말했음에도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신앙의 실패자가 된 것은 율법과 전통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것이며 또한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내 죄악이 얼마나 큰지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금식의 본질과 목적을 뺀 채 금식을 하였다. 금식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것이 되고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되었다. 금식할 줄도 아는 신앙이라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드러내려고 하려고 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봉사하며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받을 때 그것의 목적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할 때 그렇게 하는 본질과 목적을 기억해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2010년 8월 19일 목요일

꿈꾸는 자 창37:1-11

꿈꾸는 자 창37:1-11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시고 꿈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꿈을 꾸고 살면 그 꿈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결정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은 강력한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오늘 무엇을 소유했고, 어떤 위치에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는가이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라.



우리가 꿀 꿈은 생리적인 꿈이나 정신적인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꿈을 말한다. 계시의 꿈은 성령께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실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요셉은 꿈에 열 한 보릿단들이 자신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고 또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 42장과 47장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성취된다. 어떤 고난도 이것을 막지 못한다. 사탄도 막지 못한다. 하나님은 계시의 꿈을 주실 뿐만 아니라 꿈꾸는 자와 함께 하시여 그 꿈을 직접 성취시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 요셉과 함께 하여 그를 형통케 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꿈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꿈을 꾸는 자 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꿈은 말하라.



하나님이 주신 꿈은 말해야 하는 것은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쉽게 이루어시고 꿈이 성취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꿈을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꿈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혹시나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실제로 요셉은 꿈을 말했다가 형들에게 더 미움을 받게 되었고 종으로까지 팔렸다.





꿈을 듣는 사람들이 황당하게 여기고 거부반응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그 일로 인해서 요셉처럼 고난이나 핍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꿈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말해야 하나님이 이루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하나님의 꿈을 늘 말해야 한다. 또 자신에게 주신 꿈을 말해야 한다. 꿈을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셋째 꿈을 좇아 살아라.



꿈을 가진 자는 꿈을 좇아 현실에 충성하나 몽상가는 현실에 불성실하다. 몽상가는 막연하게 꿈을 꾸다가 가는 길이 힘들고 지치면 금방 포기한다. 무엇보다 현실에 충실하지 않는다. 미래에 이루어질 크고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지금 일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사람이냐면서 지금 맡은 일에 불성실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꿈을 꾸는 자는 현실에 성실한다. 지금 맡은 일이 미래에 이루어질 꿈에 비해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일에 충성한다. 맡은 일이 청소면 청소에, 봉사면 봉사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지금 맡은 일에 열매가 있고 칭찬 받는 자가 된다.







결론



요셉은 하나님을 꿈을 받아 꿈을 꾸면서 살았다. 또 꿈을 말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하였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성취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다. 요셉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꿈꾸는 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