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과 유로 2012
역시 축구는 아직도 유럽이다!
거의 한 달 간 유럽과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Euro 2012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유럽과 유럽연합(EU), 유로존이 경제위기로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축구는 건재하다.
그렇다면 왜 유로존 지도자들은 Euro2012 축구 선수들보다 못할까? 2년 반이나 넘게 위기를 질질 끌고 있고 리더십도 없다.
감독과 팀웍, 선수들의 기량이라는 종합 작품 축구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웍이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라도 동료 선수들이 패스나 어시시트를 해주지 않으면 골을 얻기가 쉽지 않다. 감독의 리더십을 따라 선수들이 움직이지만 이들은 순간 순간 민첩성과 융통성을 발휘하여 기회의 창을 활용하여 공을 넣어야 한다. 한 번 놓친 황금 같은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축구는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막강한 ‘인프라’를 자랑한다. 독일은 전국에 수 백 개의 축구 클럽이 있고 클럽마다 청소년 축구 아카데미가 있어 유소년을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교육시킨다. 유망한 청소년들은 프로 축구 선수가 되어 뛰면서 축구장에서 상대편과의 경기를 통하며 자신을 담금질하는 혹독한 과정을 거친다.
유로존 경제 위기는 2년 반이 넘게 계속되어 오면서 아직도 해결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 17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유로존이라는 축구팀의 감독은 독일이다. 그런데 독일의 입장이 전략적 모호성때문인지 아니면 변증법적 사고가 체질에 배어서인지 갈팡질팡 하는 듯하다. 감독이 갈팡질팡 하는 듯 한데 금융시장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않지 않는 게 당연하다.
지난달 28~29일에 열렸던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다소 희망적인 위기 해결책이 합의되었다. 1천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스페인의 경우 금융권에 직접 구제금융을 투입하게 되었다. 독일이 정상회의 직전까지 요구했던 대로 스페인 정부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정부가 감독자가 되어 금융권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독일은 금융권에 직접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유럽 차원의 단일 금융감독 기구 설립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독일의 두둑한 지갑을 여는 대신에 스페인 정부를 신뢰할 수 없으니 각 국이 은행 감독권을 유럽의 초국가 기구(여기서는 유럽중앙은행 ECB)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 금융감독기구 설립은 은행(금융)동맹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런데 유로존 차원의 예금보장도 금융감독 기구 설립과 함께 시급히 필요하다. 그러나 독일은 자국의 부담이 가중되는 예금보장을 반대했다. 위기가 가중되는 것을 저지하려면 시장의 요구보다 최소한 앞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독일은 금융시장이 요구하는 최소한을 수용하는데 그쳤다. 지난해부터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EU 정상회의가 열려 경제위기 대책을 논의하고 합의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대개 차가웠고 효과도 단기간에 그쳤다. 골을 넣을 수 있는(위기극복) 기회의 창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경제위기라는 축구장에 나갔지만 독일 감독의 리더십이 시원찮다. 여기에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상황에 맞게 민첩성과 융통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돈 주머니를 틀어 쥔 독일은 가혹한 씀씀이 줄이기를 강요해 이행을 독려해 왔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긴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긴축만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장 촉진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1300억 유로의 성장 촉진책은 기존에 나온 정책을 대부분 짜깁기 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다소나마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이 힘을 규합하여 독일을 강하게 압박하여 구제금융의 직접 금융권 투입이라는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삼국이 독일 감독을 최소한 수 년 이내에 바꿀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물밑에 있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유럽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태풍이 몰아 닥쳐야 고집불통의 감독이 유로존 단일 채권인 유로본드 도입의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서도 독일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을까?
안 병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