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5.
꽤나 굵은 빗속에서 몸과 일부 짐은 다 젖었는데 야영은 어디에
[비오는 산죠르죠디로멜리나 피자 가게의 헛간]
빗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꽤나 굵은 비가 내린다. 그런데 머리에 미열과 함께 몸살이 좀 있다. 어제 처음으로 자전거를 오래 달렸고 체온 조절을 제대로 못 한 게 문제다. 달릴 때 제 때 옷을 벗지 않아 땀이 제대로 마르지 않았고 피자 가게에 와서는 덥다고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질 때까지 옷을 벗고 있었다. 초보자라 시작부터 문제다.
몇몇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에 포기했다는 당사자나 또는 그들의 주변인들의 사례를 들었다. 단순 힘든 것쯤이야 분투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아프면 대책 없다. 앞으로 몸 관리는 잘 해야겠다. 음식이라곤 라면과 양갱밖에 없다.
아침으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다시 자고 일어났더니 점심나절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아무래도 라면보단 피자 하나 사먹는 게 날 것 같아 비를 뚫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어젯밤 무뚝뚝하고 불친절해 보이던 아저씨는 없고 상냥하던 아주머니만 있다.
피자는 저녁부터 된다고 말해주더니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오늘 텐트를 거두길 바란다는 것을 어정쩡히 표현했다. 공짜 지붕은 이제 끝이다. 떠나든지 아니면 2층에 작게 운영하는 호텔방에 들어가든지 하나 결정하라는 뜻이다. 전혀 문제 없다고 말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문제가 많다. 인터넷도 없는 호텔방에 20여 유로 내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감기 기운 있는 이 몸을 빗속의 타악기로 내던지고 싶지 않다. 오늘은 분명 쉬어서 몸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몇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비는 여전하나 머리에 열은 사라졌다. 어차피 호텔을 이용해야 한다면 다음 마을에서 인터넷이라도 되는 호텔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비닐봉지를 셀로판테이프로 이어 붙여 자전거의 짐을 감싸고 방수 바지와 일회용 우의를 입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떠나기 전에 인사하고자 가게에 다시 들어가니 이번엔 아저씨만 있다. 아저씨는 어젯밤처럼 유쾌하지 않게 ‘너 제정신이냐’라는 표정으로 비 오는데 왜 굳이 떠나냐, 더 머물다 가라 한다. 표정이 상냥하다고 호의를 더 잘 제공하는 건 아니구나.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미 무장도 했겠다 어디 한번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빗속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겨우 20분간 다음 마을인 로멜로(Lomello)까지 5 km를 달리고 나니 신발과 상의가 이미 다 젖고 방수 바지 속도 조금 젖어 들었다. 날도 벌써 어두워졌고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빗속에서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 로멜로에서 머물러야 한다.
마을사람의 도움을 받아 함께 세 호텔을 가봤지만 모두 닫혀있거나 남는 방이 없다. 또 적당히 텐트 칠만한 곳도 없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피자가게 헛간에 머무를걸. 이미 컴컴한 밤이 됐고 더 늦기 전에 일반 가정집의 도움을 받기 위해 초인종을 눌러보기로 결정했다. 이 녀석 지금 거두어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 죽을 놈이다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 분명 반응을 보여줄 집이 있을 것이다.
아직 3월초라 날도 아직 춥다. 간절한 눈빛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나 텐트와 함께 자전거로 여행 중이야. 그런데 비가 와. 도와줄 수 있어?” “저기 호텔이 있어” “호텔 세 군데 모두 닫았거나 꽉 찼어.”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리고 절실한 고집 끝에 드디어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자전거 관련 프로 운동선수이고 남자친구도 오토바이로 여행을 종종 한다며 날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로멜로 키아라 집에 도착했을 때 뒤 짐받이의 짐과 일부 다른 짐이 이미 비에 젖었다. 뒤 짐은 방수가 아닌 비닐재질 직물의 이키아 가방이기 때문에 젖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으로 파스타 괜찮으냐는 질문에 이탈리아에서 먹는 첫 진짜의 파스타인데 당연히 기대된다고 대답했다. 아들 나이가 나와 비슷한 키아라(Chiara) 그녀는 혼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고 이탈리아 경기 침체 때문에 직업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밀라노에서 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이 로멜로 동네에 겨우 한 달 전에 인터넷 선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내가 설거지나 뭐 도와줄게 있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대신에 친퀘테레와 다른 여행지에서 두 번 엽서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싱거워 보이지만, 사실 마음이 담긴 것을 받고 싶은가 보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엽서 보내기인데 나도 당연히 정성 어린 엽서를 보내고 싶다.
[키아라가 방 하나 내어 주었다.] 모험 15일 아침, 비가 오지 않는다. 사실 어제 확인한 오늘의 일기예보는 비였다. 그래서 어제저녁 때 키아라에게 혹시 오늘도 비가 오면 하루 더 묵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내게 하룻밤만 편의를 제공하고 더 머물고 싶다면 호텔에 가길 바란다며 거절했다.
아직 추운 날 덕분에 라디에이터를 여전히 가동했고 다행이 몸도 좋아지고 신발, 옷 등도 대부분 말랐다. 더 이상 로멜로에 더욱 머물 필요가 없다.
[이튿날 키아라와 작별하고 건조해진 자전거를 다시 몰았다.] [누군가는 이미 떠나간 누군가를 잊지 못한다. ] [특이하게 제각각 기울어진 주차장 전등] 50 km쯤 떨어진 세라발레스크리바(Serravalle Scrivia)에서 밀라노에서 자전거와 자전거 기타 장비를 구입한 이탈리아 전역의 체인 스포츠 용품점 데카틀론의 다른 지점을 발견했다. 기회다 싶어 종종 작동을 멈추던 자전거 속도계를 더 고급 제품으로 교환하고 무게만 나가고 자전거 라이트로 대체할 수 있는 텐트용 랜턴을 환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비에 대비하기 위해 방수 점퍼, 방수 바지, 자전거 뒷짐을 위한 방수 커버 등을 구입했다.
뒷 페니어는 방수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사실 앞 페니어가 방수가 아니기 때문에 앞 페니어를 위한 방수 커버도 필요하다. 그러나 구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앞 페니어 한 쪽이 이미 뜯어져 오래가지 않아 결국 새로 사야 할 것 같고 산다면 제대로 된 방수제품을 구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비가 온다면 비닐봉지 등으로 그때 가서 해결책을 생각해볼 것이다.
[우천 대비책으로 방수 점퍼, 추가 방수 바지, 방수 커버를 구입했다. 방수 점퍼의 경우 기능면을 고려하여 XXXL 최대 사이즈를 선택했다.] [세라발레스크리바에서 밥, 고추장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삼겹살은 역시 덴마크가 맛있다. 이탈리아에 다양한 종류의 쌀이 있는데 이날 쌀알은 굵어 밥맛이 잘 안 났다.]
모험 16일 아침, 누군가 텐트(좌표: 44.726066, 8.856338)에 노크를 하며 날 깨운다. 내게 커피를 건네는 이 남자는 여기 슈퍼마켓 처마 아래 텐트를 치면 안 된다며 치우라고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이렇게 감동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구나.
그런데 이런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앞 페니어의 오른쪽 가방 아래 귀퉁이 역시 왼쪽처럼 터진 것을 발견했다. 맘마미아! 어찌 이 가방은 이리도 약하단 말인가. 이런 모험적 여행의 묘미는 어렸을 적 보던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문제 발생시 스스로 해결하는데 있다며 지난 왼쪽 가방 때보다 잘 꿰매버렸다.
[슈퍼마켓 앞에 텐트 치면 안 된다며 한 남자가 아침에 커피와 함께 날 깨웠다.] [슈퍼마켓 처마 아래의 텐트] [모험 13일 앞 페니어의 왼쪽 가방을 꿰맨 지 3일만에 오른쪽 가방마저 터졌다. 한 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솜씨 좋게 꿰매 버렸다.] [안장 가방이 오른쪽의 새로산 물통 케이지의 흰색 물통 끝에 달려 있었고 이처럼 큰 물통을 꼽기 위해 안장 가방을 본체 앞 두 가로 철봉 사이에 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안장 가방 내의 단단한 플라스틱 널빤지 때문에 그 사이에 들어가질 않아 이것을 도려내고 그래도 벨크로(일명 찍찍이) 걸이 길이가 부족해 미리 준비해온 여분 벨크로를 덧대어 안장 가방과 추가 물통 케이지도 잘 달 수 있었다.] 자전거를 달리다 보니 드디어 밀라노 일대의 평지가 끝나고 길 멀리 앞에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륙 지방인 밀라노에서 친퀘테레가 있는 해안가로 가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북부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야 한다. 자전거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에 눈은 점점 많아졌다. 산에 다다랐을 때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은 이 산들 어딘가에서 새 하얀 눈에 둘러 쌓인 채 캠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새 하얀 눈이 뒤덮인 산과 중간중간 나타나는 조밀히 밀집된 아기자기한 마을들, 그리고 그 속을 고독히 달리는 자전거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지만 이미 다소 어두워져 빛도 없고 어차피 산중에서 야영할 것인데 내일 밝은 낮에 촬영하면 될 것 같아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역시 아직 초보자다. 하루에 얼마나 달릴지, 얼마나 밤 늦게까지 달릴 수 있는지 아직 개념이 없는 나는 캄캄한 밤중에 결국 도로상 가장 높은 봉우리를 지나버렸고 내리막길의 짜릿함에 신이나 마음껏 달려 내려와 금새 밀라노 남쪽 해안 도시 제노바에 도착해버렸다. 이제 그 웅장한 산의 경관도 없고 새하얀 눈도 없고 작고 오래된 시골 마을도 없다.
[저 멀리 산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북부 아펜니노 산맥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은 눈이 별로 없다. ]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내리막길의 엄청난 스릴을 즐겼고 여태 최고속도 기록 시속 38.3km도 시속 49.4km로 갱신했다. 한 번은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한 번도 멈춤 없이 약 2~30분간 내려오는 동안 새로운 마을 표지판만 대여섯 번은 본 것 같다.
사실 이런 구불구불한 길을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거운 자전거 본체를 기울여 빠르게 코너를 돌다가 작은 돌멩이라도 한번 잘못 밟으면 자전거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토바이처럼 묵직한 자전거를 요리조리 기울이며, 산을 오르느라 뜨거워진 몸이 바람을 가르는 이 느낌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해안 도시인 제노바는 온통 언덕이다. 가파른 언덕이나 절벽 끝에 지어진 건물이 많다.]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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