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1)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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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어려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배를 타고 하는 여행은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거동이 불편하지 않으면서 그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까지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기 어려운 목적지 중의 하나가 남극이었다. 그러나 남극은 배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남극으로 가는
여행을 한 이후 나는 소위 크루징이라는 배를 타고 하는 여행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호화스럽고 쉬운 여행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배를 타고 가기로 한 곳은 파로군도(Faroe Islands), 그린랜드(Greenland), 그리고
아이스랜드(Iceland)다. 나는  크던 작던 지도 보기를 좋아한다. 여행 중에 구입하는 기념품은 오로지 좋은 지도
뿐이다. 북극에 가까운 이곳을 가 보려고 생각했었던 것은 어느날 방안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세계지도를
보던 중 그린랜드가 눈에 들어왔을 때였다. 카나다가 새삼스레 굉장히 넓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며 그 옆의 커다란
대륙같은 크기의 땅을 보니 온통 얼음으로 덮혀있어 척박한 땅에 아무도 살고 있지 못할것 같아 보였다.
이번에 탄 부디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배는 거의 3만 톤의 무게에 길이가 200미터가 넘고 폭이 25미터가 넘는
큰 배다.  객실은 463개, 승객은 900명까지 탈 수 있고 갑판의 층 수는10층이다.  크고 작은 수영장이 5개가 있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병원과 그 외에 필요한 시설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10층짜리 대형 건물이 물에 둥둥 떠서 간다고
생각해보면 상상이 어렵지 않다. 이번에 이 배를 두 번째 탄다.

Greenland 5.JPG

배 이름 ‘부디카’(Boudicca)는 서기 40년과 60년 사이에 영국의 동쪽에 살던 아이시니(Iceni)족을 지배했던
여왕의 이름이다. 로마가 쳐 들어 왔을 때 물리친 공이 큰 여왕이었으나 끈질기게 여러차례 쳐들어오는 로마에게 결국
굴복하고 적에게 잡혀서 죽지 않기 위해 파란만장한 생애를 자결로 마감 했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날씨에 비바람이 많은 스코트랜드라지만 내가 배를 타던 그 날은 우리나라의 초가을같이 푸르고
높은 하늘에 흰 구름이 멋지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승선수속은 간단해서 캐빈문을 여는 열쇄인 카드한개를 받아 승선하니 몇 달 전, 남극으로 여행할 때 5주간 내 캐빈을
돌봐주던 태국아가씨가 온 층계가 다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나를  반기는게 아닌가. 의외의 영접에 더 반갑게 만나다.
이내 배는 파로군도(Faroe Islands) 의 수도 토르스하븐(Torshavn) 을 향해 떠나다. 배에서는 한번 짐을 옷장에
풀어 넣으면 배를 내릴 때까지 다시 싸지 않아도 되는것이 참 편하고 좋다.

Greenland 3.JPG

저녁 식사시간은 매일 저녁 8시 30분으로 정해 놓았기에, 또 두 번째 타는 이 배의 Bar 가  어느 갑판에 있는지
잘 알기에, 익숙한 몸짓으로 가서는 이번 크루징에서 즐거운 일들이 많고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비는 한잔의 와인으로
여행은 시작되었다.덴마크의 영토인  파로(Faroe) 군도는 스코트랜드에서 아이스랜드를 향하여 북서쪽으로 450해리
정도 가면  만난다. 스코트랜드에서 하루 온종일과 온 밤을 들여 450해리를 가니 파로군도의 수도 토르스하븐
(Torshavn)이다. 이곳은 여기서는 제일 큰 도시로 수도지만 유럽에서는 제일 작은 수도라고 한다. 18개의 군도가
모여 파로군도를 이루고 있다. 수백만년 전에 터진 화산으로 이루어져서 경치가 기기묘묘하다.
높은 위도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놀랍게도 겨울의 날씨는 온화하고 항구는 언 적이 없다고한다. 자연경치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고 공기는 항상 신선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는 3도 내지 11도라하니 여기가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번 크루징의 첫번 째 기항지인 토르스하븐에서 닻을 내리고 큰 배에서 작은 배로 옮겨탔다. 항구의 크기가 작으면
3만톤의 거대한 배는 항구 밖에서 닻을 내리고 작은 배로 항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던
광광버스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섬의 다른 쪽인 서쪽 해안에 도착,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는 살을 에이는듯한
바람을 헤치고 넓은 바다로 나갔다.  바다 속으로 내려 꽂힌 듯 아니면 솟아 오른 듯 우뚝우뚝 서 있는 거대한
라임스톤의 아름다운 바위들이 600미터 높이의 절벽 앞에서 웅좌를 보이고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절벽 바로 아래의
높은 바위들 사이 사이를 배로  들고 날 때는 바위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각종 새들의 둥지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듯 보였다. 가?(Gannet) 풀마(Fulmar),
퍼핀(Puffin), 페트럴(Petrel), 키티웨이크(Kittiwake)들이 커다란 무리를 지어 절벽 주위를 돌며  짹짹, 우리를
내려다 보고는 이 사람들은 어디서 왔누? 저 동양여자 어디서 왔을까 하는 얘기를 하는것 같았다. 자그마한 크기의
새인 길리모트(Guillemot)들은 떼를 지어 물에 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바이킹의 후예들이 산다는 이곳은 수도라기 보다는 자그마한 마을같아 보인다. 밝은 색의 지붕을 한  집들이 모여있는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다.

Greenland 6.JPG

다음은 그린랜드의 꽈꼬톡(Qaqortoq).  파로군도에서 여기까지는 3일 낮과 4일밤동안 바다를 헤치고 왔다. 3일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빙산을 보며 항해했다. 가도 가도 끝 없이 펼쳐져 있는 빙산들. 북극이 저 만치 있는것이다.
언듯 지루해 보이는 항해지만 배에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각종의 프로그램들이 짜여져 있어 승객들은 여기저기로
바쁘게 오간다. 하루에 두번의 강의가 있다. 다음 행선지에 대한 역사, 지리, 관광코스를 사진들과 함께 보여주며 내용이
자세한 강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새, 동물에 대한 강의, 해양역사를 담당한 교수의 강의는 여행 중에도
많은 지식을 얻게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배의 주방장이 음식만드는것을 보여 준 후 시식을 하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일 춤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도
아주 인기가 있다. 지금은 다 생각이 안 나지만 9가지 스텝을 배웠다.
바다에서 사는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상식인 밧줄로 매듭 만들기 강의 또한 아주 실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유익한 강의였다.
간단해 보이는 매듭인데 왜 그리 만들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브리지게임룸은 항상 만원으로 아주 인기있는 게임이다. 갑판에서는 밧줄을 둥글게 묶어 말을 만들어 그 말을 던져 4/5미터
떨어진 곳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사각형의 칸에 넣는 코이츠라는 게임, 카페트에서 하는 볼링, 셔플보드게임, 화가의
지도로 수채화교실이 매일 열리는 등등 배에서의 프로그램은 다양해서 지루할 시간이 없다.
어디 그 뿐인가. 매일 밤 두차레에 걸쳐서  열리는 그란드 쇼는 정말로 볼 만해서 쇼의 끝이 빨리 오는 듯 싶었다.
운동기구가 잘 갖추어진 짐룸은 크고, 바다가 내다보이는 10충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운동 후 스팀이나
사우나를 하는 맛은 어디에 비하랴. 그 뿐인가 새 친구를 사귀는 사교장으로 옷을 벗은 채로 만나기 때문인지 금방
친해 질 수 있어 좋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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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상실

0.jpg
슬픈 노랠 들어도 슬프지 않아 
 아무 느낌도 없는 걸  
내 마음이 언제쯤 아팠었는지  
이젠 기억 조차 할 수가 없어  
조금씩 그렇게 무디어져 갔네

사랑마저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외로움에 떨던 시절에  
사랑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그저 행복하던 날도 있었지만  
이제 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뒤돌아 볼 여유가 하나도 없이  
오늘도 하루가 가네  
변해버린 자신도 못 느끼고 
 그저 앞으로만 걸어가겠지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이정선

대한민국에서 통기타를 독학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정선 기타교실
저자이자 한국 대중가요계의 대부 이정선의
상실이라는 노래 가사다.
원래부터 참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특히 요즘에는 새삼 그 가사 내용이 너무나 공감이
가면서 가슴을 파고든다
.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을 알아갈수록,
하루 하루 살아갈수록 감성이 무디어져 간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
슬픈 노래를 들어도 슬프지 않은 채, 변해버린 자신도 못 느낀 채 그렇게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으로만 걸어가다니
...
슬픈 노래가 슬픈 게 아니라, 그렇게 슬픈 노래를 들어도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이 더욱 슬픈 것 같다
.
그냥 하루 하루 밥벌이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이만 올라간다고 그게
산다는 것의 전부는 아닐 텐데
, 그것들 말고도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껴봐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그 수많은 느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리고
, 이렇게 그저 하루 하루 밥 먹고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리는 로보트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걸까
?
그래도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서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도 짧고, 또 이렇게 글도 쓰고
음악도 하면서 삶의 느낌들을 나름대로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건만
, 그럼에도 나
역시 아주 조금씩은 그렇게 무디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
아주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어른이 된 지금은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는 그 오래된
영화들을 여전히 보고 또 보면서
, 예전에 봤을 때는 분명 눈물을 흘렸던 장면인데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불안
(?)하기까지 하다.
음악을 할 때도, 어떤 날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멘트를 하는데, 하는 나 자신이
별 느낌이 없을 때가 있다
.
음악에만 푹 빠져서 연주하는 동안 어느 꿈나라를 다녀온 것 같은 그 느낌을 분명
알고 있는데
, 그 느낌이 더 이상 살아나지 않고, 심지어 그 느낌을 더 이상 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 그럴 때면 너무나 불안하고 또 속상하다.
특히,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정말 껍데기만 가지고 넋이
나간 채 연주를 할 때도 있다
. 가끔 오전에는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반차를 내고
오후에 연주를 하러 갈 때가 있는데
, 그럴 때면 유독 그런 현상이 심하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연주가 잡힐 때는 아예 하루 휴가를 내고 나름대로 연주할 수 있는 감성을
준비
(?)하기도 한다.
그나마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또 음악을 하면서 뒤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참
다행인데
, 아쉽게도 요즘 세상은 우리에게 뒤돌아볼 여유를,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
그 여유는 단지 시간의 여유라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 영혼의 여유일 것이다. 그 여유를
통해 우리는 슬픈 노래를 들으며 슬퍼할 수 있는
,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가슴이 설레일 수
있는 자유를 맛본다
.
하지만, 요즘 세상은 그런 여유가 마치 사치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밥
먹고 돈 버는 일 외에 그 어떤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 하면
, 그것은 철 없는 혹은 미련한 것이
되고
, 조금이라도 남보다 빠르고 잘나야 하는 경쟁사회에서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마음 깊은 그 곳에서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진짜 행복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것들을 조금씩 잃어간다는 사실도.
여러분들은 마지막으로 슬픈 노래를 들으며 슬퍼한 적이 언제인지, 사랑 하나 만으로
만족하며 행복하던 때가 언제인지
...
혹시 그게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오래 전처럼 느껴진다면, 슬프게도 당신은 분명
그 무언가를 상실해버린 것일 게다
.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다만 우리 마음 깊은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뿐,
그래서 당신이 그것을 깨우기만 하면 다시 가져볼 수 있는 것이기에
...


칼럼을 쓰는 입장

제가 칼럼을 쓰는 입장에 관하여 두어 번 독자 여러 분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보통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되는 책(학자의 저서, 고전, 경전 등)이나
학자나 성직자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칼럼의 내용에 나의 경험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사실이 아닌 자기 나름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허상에 불과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러한 경지의 존재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두 번째는 아는 것을 말하는가, 된 것을 말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말과 글은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되어 말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면서 얻어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문헌을 참고하고 요즘은 인터넷을 뒤져서 그것을 토대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경지만큼의 칼럼을 썼습니다.

 또한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책에서, 세상의 귀감(龜鑑)이 되는 사람에게서, 신앙이나
수양(修養)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은연 중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면 그냥
그렇게 삽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얼마든지, 그리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어떠한
말보다도 진실되고 차원 높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여도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서 칼럼 쓰기를 제의 받고는 자신이 없어 두 달여를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써보겠다고
하였더니 한번 시작하면 일년은 써야 된다는 말에 또 망설이는 나를 보더니 최소한 여섯 달은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되든 한번 써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아홉 해째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주제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꺼내어 자판을
두들기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정도 그러한 경지가 되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주제가 떠오르지만 그때그때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저의 칼럼은 허상의 마음세상에서 참 세상에 한 발짝 내디딘 입장에서 참 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고 좋은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하시어 다 함께 참의 존재가 되어 하나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