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교회에는 성령충만과 관련해서 세 부류의 교인들이 있다. 첫째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둘째 성령충만을 사모하나 회개하지 않는 장애물 때문에 충만하지

못한 교인들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닮아 자라가는 교인들이 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들에 신앙생활이 쉽고 즐겁고 전해 주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러한가?

첫째 성령충만하면 기쁨이 충만해 진다.

신앙생활을 할 때 새벽기도, 봉사, 주일성수 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힘든 교인들이 있는 반면 신앙
생활이 쉽고 즐겁다고 말하는 교인들도 있다. 차이는 기쁨이다 기쁨이 있으면 신앙은 쉽지만 기쁨이

없으면 신앙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영역이 된다. 남녀가 연애하면서 서로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물질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쁨으로 하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넘치는 기쁨이

생긴다. 이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비록 취직이 안되더라도 기뻐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다. 내 뜻대로 안될 때도 기뻐한다. 성령이 주는 기쁨은 복음을 경험하게 하여 신앙
생활이 쉽고 즐겁게 한다.

둘째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 바라보는 관심도 변한다. 어린아이 신앙은 신앙의 초점이 자기 중심이 되고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질 수록 신앙의 초점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옮겨진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신앙이 보이는 것에 머물기를 바란다. 이런 신앙은

작은 미혹에도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은 오셔서 썩어서 없어지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기고 살던 우리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에 바라보게 한다. 특히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신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긴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바라본 신앙의 승리자이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가지도 용서하며 죽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유가 무엇인가?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자 시각이 변한 것이다. 하늘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는 시각으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셋째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나타난다.

우리는 가끔 사람 앞에 서면 말을 못한다는 사람이 사람 앞에 설 때 여유있게 지혜롭고도 유창하게

말하는 성도를 만나게 된다. 또 실력이 없어서 아무 것도 맡기지 말라고 하면서도 일단 맡기면

전문가가 뺨칠 만할 정도로 잘 해내는 성도들도 만난다. 내숭을 떨어서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급한 성격이나 도마의 지나친 의심하는 성품 그리고

야고보.요한의 극한 경쟁심은 복음을 전하는데 분명한 장애 요소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복음전하는

귀한 그릇들이 되었다. 이것도 성령충만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부족은 핸디캡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기회이다.

결론

성도는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술 취하면 잠시 기쁨과 담대함을 얻지만마귀에게

붙들려 영과 마음이 혼미케 되고 주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가 된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게

한다. 성령충만함을 받자. 성령충만을 막는 죄를 회개하고 사모하여 기도하자. 하나님이 약속대로 성령
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을 날마다 기대하자.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자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자

어떨때는 길게만 느껴지던 하루도 있었는데 어느세 한해가 또 꿀떡하고 넘어가려 하는 이때 거리에도,
상점에도,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성탄절 장식이 어둡고 추운 겨울날의 밤거리를 아름답게 해주고 있어
우울해지기 쉬운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반면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세계의 정세, 특히 이란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의 정세가 참
불안하기만하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한두 나라가 아닌데 왜 이렇게 유난히 이란이 핵무기를
준비한다는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하며 그들이 중단하지 않을 경우 쳐들어 가서라도 그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일까?

왜 이란은 그들의 말대로 에너지를 만드는 매체로서의 핵을 발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나라
국민의 생활과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심각한 국제적 경제 제재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는것일까?

더 욱이 근래에 이란 정부로 부터 마땅한 보호를 받아야할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대사관과 대사원들이
그나라의 시민 폭력단으로 부터 침입과 납치를 당하는 사건이 있은 후, 이란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또 각 나라에 나가있던 이란대사들도 자기나라로 추방을 당하면서 외교관계의 문을 닫게
된것은 이란을 향한 전쟁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된다.

그런데, 만약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이 가담한 이란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것은 아마도 제 3차
세계전쟁으로 커질것 같이 보이는데,  그 전쟁이 한 나라와의 싸움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서방국들과 중동의
모스렘 국가들과의 전쟁으로 변할것으로 추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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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까?

상점들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동안의 불경기로 생긴 적자를 흑자로 올리기위해 온갖 장식과 선전으로
고객의 지갑을 유혹하고 있는이때에, 언제라도 닥쳐올지 모르는 전쟁으로 국가의 안전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촟불처럼 불안전한 이스라엘은 지금 하누카라고 하는 팔일간의 명절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 역사적으로 무수한 외국의 침노를 받아왔고 억울한 외국노의 지배를 받아왔지만,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라는 인종을 아예 지구상에서 멸종 시키려는 자들의 손을 통해 대량학살을 받으면서도 살아나왔고
아직도 "그 나라의 이름을 없애고 유대인들을 모두 다 바다속으로 밀어 넣겠다"라고 말 하는 이란의 대통령이,
그것을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밀고 나가기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그 핵무기의 완성이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시점에 살고있다.

사실, 지난번 런던에서 열린 북페어에서 아랍권 나라인 아자바잔에서 만들어진 지도를  보니 그 지도에는
아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명이 사라져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인들이 자기네 섬라고
지도에 들여놓은것에 분노늘 느끼고 있는데 하물며 온전히 나라의 이름을 없애버리다니...

오늘도 세계에 흩어져 살고있는 유대인들은 본국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빛의 잔치'라고 하는 '하누카 명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 이니라!"라고 말씀하신것도 이 하누카시절이었다고 한다.

팔일간 촟대에 불을 밝히며 지키는 이 명절은, 침략한 수많은 적군들을  소수의 사람들이 싸워 이겨내고, 3년간
모욕을 받은 성전을 다시 성화하는 예식을 하는데 필요한 촛불 기름이  하루분 밖에 없었는데 그 기름이
기적적으로 팔일간 계속 쓰여진것을 기념하며 보내는 이 명절은 어려움과 고난속에도 있을 기적의 표시로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것같다.
내가 좋아하는 성탄절 장식중에 하나는, 여느 가정의 창가에 진열되어 어두운 거리를 은은한 빛으로 밝혀주는
메노라라는 촛불장식이다.

나 는 촛불을 좋아하는데, 촟불을 보노라면 어쩐지 마음의 피로가 풀어지는것 같아서, 심신의 피로를 느낄때
나의 피로회복 테크닠 중의 하나는 욕실의 여기저기에 촟불을 켜놓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눈을 지긋히
감는것이고, 적어도 한 주에 한번쯤은 촛불 아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메노라
촟대 하나를 구입해 창가에 두었다.

어두운 저녁길을 가는 행인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덥혀주고싶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풍성한 선물을 살수없음을 한탄하는 이들에게, 은은한 촟불을 켜보라고 하고싶다.
은은한 빛으로 감싸주는 촛불아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담은 카드를 한장씩 써보라고 하고싶다.
어쩌면 그 따스한 한마디가 직업 걱정으로, 돈 걱정으로, 가족 걱정으로 아니면 어쩌면 곧 일어날수도 있는 전쟁
걱정으로 꽁꽁 얼어붙기 쉬운 오늘, 우리의 추운 마음을 녹여주는 기적을 주지 않을까 한다.

친구 (3)

다섯 살 적에 만난 친구 성훈이에 대한 이야기 친구’, 그리고 마포구 중동에 살면서 중암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2)’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명지고등학교를 다닌 탓에,
아쉽게도 고등학교 친구라고는 단 두 명
,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 두 명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와 창원이와 경철이는 같은 반이었다. 경철이와는 앞 뒤 자리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점심을 같이 먹는 무리에 속하게 되었고
,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
경철이는 어딘가 어른스러움이 있었고, 공부도 잘 하고, 당시 또래에 비해서는 참 이성적인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철이는 남자 3형제 중 맏형이었다.
창원이와는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당시만 해도 어지간한 영화광이 아니고서는 고등학생으로서는
빠져들기 힘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본 경험을 공유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홍콩, 그리고 중국의 매력에 심취해있던 창원이는 경철이와는 반대로 위로 누나만 둘 있었고, 참 감성적인
녀석이었다
.
우리 셋은 공통적으로 셋 다 참 차분한 녀석들이었고, 별로 튀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 그럼에도 우린 그렇게 친해져 갔다.
경철이는 연신내에 살았고, 창원이는 무악재에 살았는데, 3 수능을 마치고 무악재 창원이네 집에
놀러가서 호프집을 갔다가 신분증을 까라고 해서 결국 소위 뺀치를 먹고서 노래방에 가서 차분한 남자
셋이서 청승맞게 발라드만 냅다 불러댔던 기억이 난다
.
우리가 본격적으로 어울려 논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또 창원이가 마침 일산 우리집과 도보로 10분 거리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
금요일 저녁이면 경철이가 일산으로 놀러와서 셋이서 새벽까지 어울렸다.
당시 우리들이 밟는 코스(?)가 있었다.
1차는 늘 당시 내가 통기타 라이브 알바를 하던 생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꼭
포켓볼을 치러 갔다
. 우린 4구는 절대 안 친다. 그리고 나서 Feel을 받는 날에는 새벽까지 여는 투다리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 그리고 나서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사다가 벤치에 앉아서 먹고는 담배를 피워물고
벤치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경철이는 우리집이나 창원이네 집에서
잤고
, 다음날 일어나면 셋이서 목욕탕을 갔다.
경철이는 무역과, 창원이는 철학과, 나는 영문과, 전공도 다 다르고, 꿈과 성향도 다 달랐던 우리들이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나누었는지
, 늘 그렇게 새벽까지 그치지 않는 얘기들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그 시절, 이성에 대한 동경이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 저마다의
고민과 꿈을 되뇌이던 그 시절
...
대학 2학년 때 셋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여자친구가 생겼으니, 대학 1학년 때는 정말 셋이서 그야말로
걸핏하면 만나서 놀았던 것 같다
. 심지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셋이 만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유했던 그 시절에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서른 넘어서
이렇게 만나기가 어려워질 줄은
.
대학 1, 2학년 시절에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답답함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우리가 젊었기에
그저 그 모든 갈등과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것 조차 즐거울 수 있었다
.
하지만, 우린 마냥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었고, 인생의 다음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셋 중에서 창원이가 가장 먼저 취업이 되었다.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언론의 길도 꿈꾸었던 감성적인
철학도 창원이는 녀석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
.
추운 겨울 날 창원이의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연신내에 모인 우리, 방바닥이 따뜻한 어느 횟집에서 정작 주
인공인 창원이는 취업 준비의 피로 때문이었는지 드러누워 잠이 들었고
, 경철이와 나만 냅다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창원이 녀석이 일 년 가량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그 좋아하는 중국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하러 떠나버렸다
.
우리 셋이 마지막으로 같이 모인 자리는 창원이가 중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만났던 2005년의 어느 봄날이었고,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셋이 만나지 못했다
.  
창원이는 그렇게 홍콩영화를 좋아하고 중국을 좋아하더니 결국 아리따운 중국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중국에 정착해 버렸다
.
그나마 경철이가 한국을 지키고(?) 있지만, 이렇게 창원이와 내가 외국에 정착한 탓에 셋이서 정확하게 일정을
맞춰서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선되셨던 16대 대통령 선거 날, 셋이 만난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우리 모두 서른이 되어 있겠구나 했었는데
, 세월은 기약없이 흘러갔고 어느덧 우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이 되어 버렸다
.
내년에는 우리 셋이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늙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