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옛날의 나는(XIV)

옛날의 나는 잘 살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릴 때 부모 말 잘 듣고 어른 앞에서는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아서 어른의 말씀을 공손히 듣고 말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학교에서는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다들 부러워하는 학교를 마치고 누구나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에서도 한 번의 슬럼프를 제외하고는 항상 선두를 달리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가정을 이루고부터는 모범적인 가장이었고 아이들도 성공적으로 잘 자랐습니다신앙생활도 열심이었습니다신앙인으로서 베풀고 나눌 줄도 알았습니다무엇을 해도 열과 성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늘 칭찬을 들었습니다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웃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칭찬을 들었습니다어려서는 어린 대로청소년기에는 청소년으로서성인이 되어서는 성인으로서 집안의 모범이었고 동네 이웃의 모범이었고 학교의 모범이었고 직장의 모범이었습니다그리고 누구나 나를 부러워하였습니다그러한 만큼 항상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였습니다참기도 많이 참았습니다화가 나도 참고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더워도 참고 추워도 참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학업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주위의 도움도 뿌리치고 죽을 힘을 다해 역경을 헤쳐나갔습니다주위 사람들은 그러한 저를 대단하다고들 말하곤 하였습니다그리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까지 왔다고 하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마음에 잔뜩 담고 살다가 빼기를 하면서 보니 잘 살아온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한 순간도어느 누구한테도 -부모형제자매한테도친구한테도직장 동료한테도그 밖의 모든 지인(知人)한테도 - 잘 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삶에서 마주친 만물만상에게도 잘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삶의 모든 것들이삶의 순간순간이 오로지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사랑도 미움도 그러하였고 남을 위한다는 선행(善行)조차도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였습니다신앙도 죄인인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죄인은 잘난 것이 조금도 없는데도 잘나고 오만(傲慢)하였고 죄인인 내가 사는 동안 행복 하려 하였고 죽어서도 잘 되려고 하였습니다위선(僞善)의 존재가 착한 척하며 위선의 삶을 살았습니다천하의 부끄러운 존재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한 삶을 살았습니다.

 옛날의 내가 잘 살았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錯覺)이었습니다허망한 존재가 미망(迷妄)을 헤매는 허망한 삶이었습니다꿈이었습니다.


 
새해 첫 글이자 오랜만에 여러분들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유학생으로 런던에서 언론 공부를 하고 있었던 2006 12공부를 하는 중에 실제로도 언론 일을 경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당시 마침 글을 쓸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있었던 유로저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7 1월 첫 주에 서른 즈음에의 첫 편이었던 그런 계절이 왔으면이 유로저널에 실리게 됩니다그리고어느덧 세월이 흐른 지금은 2012 1월입니다.

서른 즈음에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당시에 저는 채 서른이 되지 않은 20대였는데, ‘서른 즈음에를 쓰던 중 진짜로 서른이 되었고이제 서른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당시에 저는 꿈만 있었지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어서 불안하기만 했던 유학생이었는데, ‘서른 즈음에를 쓰던 중 런던에서 헤드헌터로 취업도 하고비록 화려하지는 않을 지언정 그래도 하루 하루에 너무나 감사할 수 있는 안정된 삶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무심히 흘려보냈을 수도 있었던 삶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글로나마 간직할 수 있었고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른 즈음에를 쓰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쓰면서 알게 모르게 만난 분들이 많습니다처음 뵈었는데 제가 서른 즈음에를 쓰는 전성민인 줄 아시고 반가워해주시는 분도 계셨고이메일을 주셔서 제가 쓴 어느 서른 즈음에’ 이야기에 너무나 공감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가끔은 서른 즈음에에 나름 시사적인 이야기도 썼지만결국 많은 분들이 가장 공감해주시고 좋아해주시는 이야기는 제 이야기,즉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의 살아가는 이야기더군요.

특히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공감들을 해주셨습니다퇴직하신 아버지에 대해 썼던 아버지의 퇴직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한인사회 어느 원로분께서도 참 좋아해 주셨고또 역시 이 무렵 아버지의 퇴직을 접하게 되는 제 또래 젊은 독자들도 눈물이 났다면서 공감을 표현해주셨습니다.

그럴 때면 너무나 감사하고또 행복합니다제가 글을 쓰는 목적또 음악을 하는 목적도 같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소중한 것들그냥 잊고 지내기 쉽지만 떠올려 보면 너무나 행복해지는 것들그것들을 상기시키는 게 제 글과 제 음악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제 글을 읽다 보면제 음악을 듣다 보면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고무언가가누군가가 그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이렇게 지나고 보니 결국 제가 지난 시절 글을 읽으면서 (주로 수필을 많이 읽었습니다), 또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행복을 느낀 게 결국 이러한 것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형제 하나 없이 너무나 외로웠던 어린 시절저를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주었던 글은 삶의 소중한 단편들을 담은 수필이었고,또 통기타로 소박한 이야기를 읊조리는 포크음악이나 잠들기 전 틀어놓게 되는 아름답고 잔잔한 음악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종류의 글도 읽었고다른 종류의 음악도 들었지만결국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그래서 자꾸만 다시 찾게 되는 글과 음악이 따로 있더군요.

한편, ‘서른 즈음에를 쓰면서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잃은 것도 있습니다잃은 것들은 꼭 서른 즈음에’ 때문에 잃었다기 보다는지난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만큼 변해버린 제 자신입니다.

그만큼 어른이 되어 가면서 덜 순수해졌고그만큼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영혼도 탁해지고이런 저런 갈등과 스트레스를 겪으면서가끔은 너무나 글을 쓰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이번 주도 회사에서 고객사분과 너무나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정신적으로 너무나 황폐해졌더랬습니다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고객사분과 이렇게 감정이 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참 안타깝더군요.

살다 보면또 각박하고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건만그냥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싫어집니다.

그렇게 자꾸 영혼이 상하는 일을 겪다 보면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되는 순간들이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게 될까봐 너무나 두렵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벌써 5년이나 썼습니다마치 지난 5년 동안 서른 즈음에라는 배를 타고 삶의 이곳 저곳을 여행한 기분입니다.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5년 동안이나 쓰게 될 줄 몰랐었는데...

이제 2012년이라는 새로운 여행길에 오릅니다그리고이후로도 얼마나 더 긴 여행이 될 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하지만어디까지가 될 지는 모르는 그 여행길이 너무나 행복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19) 차별성과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노만포스터의 거킨 타워


세기를 거슬러 떠나보는 유로 건축 여행 20
(19) 차별성과 효율성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노만포스터의 거킨 타워
사실 말하기 좀 민망하지만 필자는 10년 전쯤인가시티오브런던 (City of London) 한복판에 새롭게 세워질 건축물로 인해 “Gherkin” 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영국 건축계의 거장 노만 포스터 (Foster and Partners) 의 스위스 르 빌딩 (Swiss Re Building) 은 작은 절인 오이를 닮았다고 해서 거킨 (Gherkin)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80미터 높이의 거킨 타워가 세워진 런던의 30 St Mary Axe라는 곳은1992년 원래IRA 즉 아일랜드공화국의 폭탄테러에 의해 파사드는 물론 건물 일부분까지 심하게 손상된 발트해운거래소 (Baltic Exchange) 가 있던 곳이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스위스 르 건물의 형태로 보나 그 크기로 보나 작은 오이보단 느낌상 커다란 핵 폭탄 정도의 별명이 좀 더 어울릴 듯 하다.
Gherkin.jpg
클라이언트인 스위스 르 재보험회사는 노만 포스터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며 으레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별화된 안을 요구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런던시티당국의 까다롭고 치밀한 허가 절차를 염두에 둔 포스터앤드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 의 디자인 팀은 일반 타워빌딩들에 소요되는 에너지와 비교해 반에도 못 미친다는 거킨타워의 에너지 효율성을 강조하며 차별성과 효율성”, 쉽게 말하면 눈에 튀는 디자인 플러스 실용성” 이라는 디자이너의 본질적인 지상과제를 멋지게 풀어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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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패턴의 파사드 디자인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 아룹 (Arup)과의 협력관계에 의해 건물 전체의 공기흐름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개발됐다입면에 설치된 두 겹의 유리면 사이로6개의 커다란 수직 통로를 설치해 사무실 각 층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도록 자연 통풍을 유도했고 더불어 이 수직 통로를 통해 각 층의 자연 채광면적이 최대화 되며 인공조명으로 소요되는 비용까지­도 크게 절감했다게다가 이 통로는 지상 1층에 커다란 오프닝을 만들며 쉽게 접근이 용이한 공공 플라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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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르 빌딩처럼 타워 입면에 구조체 사이로 마름모꼴의 모양을 만들어내는흔히 다이아그리드 (Diagrid) 라 불리는 이 구조는 타워 디자인에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구조로서 특별히 추가되는 보강 없이도 충분히 타워건물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계란 모양의 스위스 르 타워 빌딩 입면에서는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마름모꼴 사이에 설치된 유리 면들이다계란 모양이니 당연히 모두 곡선 처리된 유리면들이 설치됐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꼭대기에 뒤집어 씌워진 유리면 빼고는 일체 평평한 유리가 설치되었다족히 수천 개는 넘을 고가의 곡선 유리의 제작 비용을 고려한다면 디자인 과정에서 구조설비 그리고 파사드 엔지니어와의 컨설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한 좋은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박치원
RIBA, ARB (영국 왕립 건축사)
SMAL AND PARTNERS 대표
뉴카슬 대학 건축 디자인 디플로마 튜터
www.smalandpartners.com
cpark@smalandpartn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