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6일 수요일

동유럽 : 체스키 끄룸로프 오케스트라 김 창수 음악감독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현지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음악 감독 김 창수씨를 만나 그의 인생사와 음악관 그리고 오케스트라를.창단하게 된 동기 등을 들어본다.

한참 오케스트라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김 감독을 체스키 끄룸로프 성 안에 있는 유서깊은 바로크 극장에서 만났다.

“ 제 마음에는 항상 동과 서가 만나 음악으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꿈꿔왔습니다. 체코로 자리를 옮긴지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체코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있잖아요? 현대사의 이데올로기가 갈라지는 아주 중요한 나라로 우리에게 상징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안에서 문화의 정체성이 혼돈되는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동.서의 음악을 통해 현대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체코의 음악이 너무 클래식 아니면 재즈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클래식과 팝송, 영화음악을 들려주는 팝스 오케스트라를 하나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팝스 오케스트라가 많아졌지만, 아직 체코에는 이렇게 듣기 편한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라고 김 감독은 운을 뗀다.

김감독은 한국 KBS 에서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를 역임하고, 충주 KBS 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만큼 방송인으로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던 중, 러시아 공연을 계기로 러시아로 가게 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반한 그는 한국에서 방송을 뒤로하고, 러시아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고향인 노브고로드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발자취를 따라 그를 연구하게 됐고, 러시아에서 유학생으로서 힘든 시절도 보냈다. 러시아에서도 한국 여성 합창단을 모스크바에서 공연시키고, 모스크바에서 Youth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활동하기도 했으며, 러시아의 유명 바이얼리니스트( 볼쇼이극장 솔리스트 Gershenko) 등을 한국으로 초청하는등 음악 교류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캐나다로 현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치 못해 토론토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후 러시아의 음악의 깊이와 캐나다에서 느낀 현대음악을 나타내 볼 수 있는 땅으로 그는 체코를 선택한다. 체코로 오게 된 그가 처음 일하게 된 곳은 모라비아 필하모니아였다. 이곳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체코의 음악분위기를 느낀 그는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북쪽에 위치한 리베레츠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체코와 한국의 교류에 힘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든 활동들도 그의 음악에 대한 욕구를 다 채워주지는 못했다. 오페라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틈틈히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가지면서 팝스 오케스트라 창단의 가능성을 구체화시켰다. 또한 체코의 古都의 도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는 체스키 끄룸로프( Cesky Krumlov)가 일년에도 수백만명의 전세계인들이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장이 매우 아쉬운 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의 한 축인 음악이 이곳에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끄룸로프에 앙상블 챔버 오케스트라 (Cesky Krumlov Ensemble Chamber Orchestra)를 창단해서 올 4월 23일 첫 공연에 들어가게 된다. 매주에 한번씩 끄룸로프에서 가장 훌륭한 홀인 Ruze hotel Jesuit Hall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듣기 쉬운 클래식과 영화음악 그리고 Popular song등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의 가곡이나 가요를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해서 외국인들에게 부드러운 우리 노래들도 선보이려고 해요. 체스키 끄룸로프 앙상블 오케스트라 이외에 프라하에서도 프라하 팝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프라하 팝스 오케스트라는 창단공연을 6월에 할 예정인데요.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지난 3월 5일 체코에서는 가장 좋은 Beroun 골프클럽에서 저희 팝스오케스트라 쿼르텟( Prague Pops Orchestra Quartet)이 체코 정.재개인사들을 초청하여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님께서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한국 곡으로 보리밭과 사랑이여를 연주했는데요. 반응이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그 콘서트에 Beroun 시장님도 참석하셨는데, 저희 오케스트라를 2011년 Beroun 국제 축제에 연주 요청하셨습니다. 관객들이 대단한 호평을 해 주셨지요. 베토벤, 모짜르트 드보르작등을연주했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우리 음악으로는 보리밭과 사랑이여를 연주했는데요, 보헤미안의 정서와 우리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서정성이 체코인들에게 많이 어필된 것 같아요. 체코인들에게 우리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문화부 장관님께서 저희 끄룸로프 앙상블 쳄버 오케스트라에 축하사도 써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저로써야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죠.”

김 감독은 지난 2010년 한-체코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시립교향악단(정명훈 지휘)이 프라하에서 공연하게 기획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 먼저 6월에 만들어질 프라하 팝스 오케스트라의 내실을 다져서, 일단 프라하 무대에 전력 다하고, 더 나가서 인근 독일, 비엔나 등에서도 공연을 넓혀 갈 예정입니다. 아시아인으로서 100% 유럽 현지 단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꾸려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유럽인들의 음악에 있어서의 우월감을 느끼지요. 하지만 한국인의 섬세한 감성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고 한국의 음악도 이곳에 많이 소개하고 싶은 게 저의 바람입니다.”

식지 않는 정열과 꿈을 가지고 있는 김창수 음악감독의 음악활동과 오케스트라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체코 유로저널 김 명희 기자
eurojournal1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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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 거문고와 가야금을 연주하는 미국인 Theresa와 함께






* 미국에서 태어난 테레사(Theresa Thomasulo)는 미국에서 음악 교육학을 전공하던 중 인도 음악을 접하면서 동양 음악에 심취했고,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거문고를 배웠으며, 현재 런던 SOAS 대학에서 민속 음악학을 전공하면서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유로저널: 이렇게 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먼저 언제, 어떤 계기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테레사: 네,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매우 어린 나이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부모님은 음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들이셨기에, 제가 어린 나이에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많이 놀라셨죠. 제가 직접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교회의 음악팀에 참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제가 7~8세 때 교회의 중창단과 뮤지컬에서 노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로저널: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서양인 뮤지션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인도의Chennai 지역을 다녀오고 나서 많은 변화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인도를 방문하게 되셨는지요? 인도에서는 무엇을 발견하고 느끼셨는지요?

테레사: 저는 대학에서 음악 교육학을 전공했고, 성악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1월에 겨울학기 코스로 3주간 ‘인도 남부 음악 체험(Experiencing the music of South India)’을 수강했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고, 인도의 Chennai (예전 Madras)에서 인도 전통 노래, 악기, 춤 등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전혀 색다른 음악적 전통을 경험하고, 또 예술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지, 종교적, 문화적 유산에 반영되어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게 동양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서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하셨는지요? 동양 음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요?

테레사: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도에서의 경험은 제게 정말 큰 영향을 끼쳤고, 저희들의 인도 방문을 기획해주셨던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교수님께 제가 계속 인도 남부 음악을 공부해서 그것으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코스를 만들어주실 수 있겠느냐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몇 달 동안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인도 음악 전문가를 수소문했고, 결국 캐나다에 살고 계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음악가인 Lakshmi Ranganathan을 찾았습니다. 제가 인도 남부 전통음악에 매료된 것은 그것의 음색, 그리고 그 음악이 생성된 문화적 요소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은 제게 우리가 배웠던 모든 인도 노래들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고, 수업이 마친 다음에도 제게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자고 호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분은 정말 놀라운 사연을 지닌, 타인으로 하여금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주시는 분이셨고, 그 분과 함께한 것은 제 삶에서 가장 축복받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분은 지금까지도 제가 미국에 돌아가 있을 때는 저를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유로저널: 그러다가 한국을 방문하시게 됩니다. 이전에도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요? 또, 한국 방문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요?

테레사: 대학을 졸업하고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을 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서 지원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재미교포 한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그들로부터 한국 방문과 관련해 도움을 받았지만, 사실 저는 한국 문화나 한국 역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제가 일하는 학원의 원장님이나 동료분들이 모두 너무 친절했습니다. 저는 한국 음식, 한국인들, 한국 문화, 한국의 쇼핑 등을 너무나 좋아했고, 제가 일하고 살았던 방배동의 분위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 경험한 한국인들을 어땠는지요? 좋았던 점, 나빴던 점 모두 들려주세요.

테레사: 한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전혀 모르는 낯선 분들도 제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들도 있고요. 물론, 불쾌한 경험도 몇 번 했습니다만, 당연히 한국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안 좋은 사람들도 있었고요, 대신 그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굳이 안 좋았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제 약혼자와 지하철을 타거나 하면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안 좋았다는 것입니다. 제 약혼자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인 외모의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불편했던지, 마치 제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저희를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저 역시 나중에는 그들의 시선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요.

유로저널: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지내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한국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까지 배우셨고요.

테레사: 한국에서 지내는 미국인이나 캐나다인 대부분이 철저한 이방인으로 이태원, 홍대 등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는 것에 비해 저는 한국에서 조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제 한국인 친구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고, 한국 문화를 전면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 음악 교습도 받았으며, 한국 요리도 배웠습니다. 휴가 때나 가족 방문 때 저를 데리고 다녔던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 저를 잘 맞출 수 있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어는 외국인들이 배우기에 매우 어려운 언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떤 점이 많이 어려우셨는지요?

테레사: 한국어를 배우면서 저는 실용회화가 참 어려웠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실수를 할까봐 두려웠지요. 또, 아무리 제가 한국에서 살았지만, 모든 한국인들이 저를 보면 저와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더군요. 저는 그들과 한국어로 대화해서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말이죠. (웃음) 이후 저는 한국어 개인 교습도 받았고,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가급적 한국어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와서 SOAS 대학에서 공부하는 중에는 한국어와 관련된 학교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한국인 친구들과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어를 계속 익히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 지내면서 거문고를 배우기도 하셨더군요.

테레사: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여가시간이 생기면 한국 음악을 배우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제가 적을 두고 있던 런던 SOAS 대학의 도움을 받아 한국 내 대학들의 전통 음악 코스들을 수소문했고, 한국 전통 음악 강사들에게 저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를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결국 한 분 선생님께서 저 같은 초보자도 받아 주시겠다고 해서 그 분께 거문고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거문고는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악기였지만, 다행히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참 잘 가르쳐 주셨고, 저를 많이 격려해주셔서 어려워도 즐겁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 돌아와서 지금은 영국 런던의 SOAS 대학에서 ‘민족 음악학(Ethnomusicology)’을 전공하고 계십니다. ‘민족 음악학(Ethnomusicology)’이 생소하실 독자분들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테레사: ‘민족 음악학(Ethnomusicology)’은 단순히 정의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용어입니다. 현재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계속 연구 중이기도 하고요. 제가 정의하는 민속 음악학은 세계의 다양한 음악 문화와 전통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제가 SOAS 대학에서 이수하고 있는 MMUS 학위를 위해 저는 세계의 두 지역,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의 음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음악, 성별, 흩어진 실향민들의 음악 등을 연구/분석 하고, 또 해당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민속 음악학의 범주 내에서 공부합니다.

유로저널: 지금은 런던에서 가야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야금까지 배우게 되셨는지요? 본인이 경험한 가야금과 거문고의 차이점은?

테레사: 런던에 있는 한국 전통음악가들을 찾아보기 위해 주영한국문화원 웹사이트를 방문했다가, 영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가야금 연주자 정지은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선생님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았고, 그 음악에 매료된 저는 곧바로 선생님께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거문고를 배웠기에 선생님께 혹시 런던에 거문고 선생님이 있는지, 아니면 저에게 가야금을 가르쳐 주실 수 있는지를 문의했습니다. 아쉽게도 런던에는 거문고를 가르쳐줄 수 있는 분이 없었지만, 다행히 정지은 선생님이 흔쾌히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선생님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우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유로저널: 본인이 경험한 가야금과 거문고의 차이점은?

테레사: 가야금과 거문고는 비슷해 보이면서도 기본부터가 다른 악기입니다. 먼저, 전통 가야금은 12줄이지만, 거문고는 6줄입니다. 또, 거문고는 16프렛으로 되어 있지만, 가야금은 프렛이 없습니다. 가야금은 손으로 연주하지만, 거문고는 술대로 연주합니다. 그리고, 가야금은 일반 서양 음계 기보법을 사용하지만, 거문고는 정간보라는 한문으로 된 기보법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두 악기는 소리도 매우 다르고, 연주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연주법도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전통 음악과 전통 악기가 해외에서 충분히 알려졌다고 보시는지요?

테레사: 현재 한국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으며, 매우 우수한 자료들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네스코(UNESCO) 역시 한국 전통 예술을 보존하고 발간하기 위해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한 정보와 접근성이 개선되고, 외국에서 한국 전통 음악 공연들이 더욱 활성화되어 더욱 많은 이들이 한국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다면?

테레사: SOAS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저는 미국 뉴욕에서 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자격증이 있어서 몇 년 동안은 초중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가 공부한 다양한 전통음악도 연계해서 가르치고요.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박사 과정을 이수한 뒤에 대학에서 민속 음악학과 같은 강의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여행도 하고, 글도 쓰고, 제가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도 하고 싶고요. 하지만, 누구도 미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제 흥미를 자극하는 어떤 직업의 기회가 온다면 거기에 맞게 제 진로를 새롭게 설정할 수도 있겠지요. 미래라는 것은 무궁무진(limitless)하니까요!

유로저널: 오늘 흥미로운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한국 전통 음악을 많이 사랑해 주시고 전파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멋진 미래를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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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런던의 한국인 파티쉐 정은미 님과 함께









몇 년 전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한국에서 새롭게 각광받게 된 직업이 있었으니, 바로 ‘파티쉐(Patisserie)’였다. 파티쉐는 드라마 속 삼순이처럼 케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디저트를 담당한다. 당연히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파티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런던의 세계적인 호텔에서 파티쉐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한국인 파티쉐 정은미 님을 만나보았다.

정은미
- 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
- 런던 르 꼬동 블루(Le Cordon Bleu) 파티쉐 과정(Patisserie Diploma) 수료
- 한국 크라운 베이커리 근무
- 여주대학교 제과제빵 강의
- 런던 사보이(Savoy) 호텔 근무
- 런던 버클리(Berkeley) 호텔 근무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어떻게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정은미: 네, 이렇게 제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에 제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제가 1남 5녀 중 막내라 언니들이 요리를 하고 저는 설겆이만 하느라 요리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면 요리를 좀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제 전문분야인 디저트는 잘 하지만 한식 요리는 잘 못합니다. (웃음)

유로저널: 생각보다 단순한 의도로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셨군요. 막상 대학에 입학해보니 어떻던가요?

정은미: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에는 요리를 직접 실습하기보다는 이론 위주였고, 대부분이 졸업 전에 학원을 다녀서 한식 자격증 따더군요. 저는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자격증을 땄는데, 그래서 더 제가 요리를 못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당시 대부분 졸업생들은 영양사가 되려 했는데, 막상 영양사 실습을 나가보니 여러가지 측면에서 제가 갈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제과제빵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정은미: 대학에 입학하고서 우연히 제과제빵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막상 제과제빵을 접해보니 일반 요리보다 좋더군요. 제가 만든 빵이나 과자가 오븐에 들어간 그 냄새, 빵 반죽을 만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과 졸업생 대부분이 영양사를 지망했고, 당시에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제과제빵을 하는 경우가 워낙 없었기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기들처럼 영양사 면접도 보러 다니지 않았는데, 그런 저를 보시고 제과제빵 동아리 강사 선생님께서 저를 제빵학원에 강사로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동아리에서 신입생을 가르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고, 결국 그 제빵학원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크라운 베이커리 내 교육기관(기술연구소) 강사직에 합격하여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근무하셨고, 대학 강의도 맡는 등 한국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갑자기 유학을 결정하게 되셨는지요? 또, 영국을 택한 이유는?

정은미: 당시에는 이러한 분야로 외국에서 유학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유학을 다녀오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더욱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고, 여러모로 제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도전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르 꼬동 블루로 정했는데, 르 꼬동 블루가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지만, 영국을 택한 이유는 영어도 너무 어려운데 다른 언어를 해야 하는 국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웃음) 또, 영국은 공부하면서 일도 할 수 있기에, 자비량으로 유학을 온 저로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가 필요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 해도 막상 유학생이 런던에 와서 해당 분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정은미: 처음에는 작은 샌드위치샵에서 일을 했는데, 영어가 안 되니 구석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설겆이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호텔에서 근무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선생님께 런던에서 어느 호텔 제일 좋냐고 여쭤보니 사보이 호텔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길로 이력서를 들고 사보이 호텔에 갔는데, 주방 담당자를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경비원한테 “나 정말 사보이 호텔 좋아하는데, 여기서 꼭 일해보고 싶다. 셰프(주방 담당자)를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 이력서를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정식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주방 담당자와의 면접을 통과하자, 저를 인사과로 데려가서 요리 테스트가 아닌 인성 테스트를 한 시간이나 보더군요. 제가 영어가 워낙 약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사보이 호텔에는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 직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영어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런데 막상 사보이 호텔에서는 그렇게 오래 근무하지 않으셨습니다만.

정은미: 네, 아쉽게도 몇 달 뒤에 사보이 호텔이 수리 공사를 하게 되어서 한 동안 문을 닫아야 했고, 저 역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습니다. 사보이 호텔이 문 닫기 두 달 전 호텔 분야 채용 박람회가 있었고, 저는 다섯 군데 호텔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 중 가장 우수한 호텔이었던 버클리 호텔에 면접을 보러 갔고, 저는 면접에 초코렛으로 만든 배 작품을 가져갔습니다. 당시에도 취업비자를 쉽게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다행히 파트타임으로 3개월을 근무하고 나서 취업비자를 지원받아서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원래 영국에서 그렇게까지 정식 취업을 하시려던 계획이었는지요?

정은미: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유학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면서 영국에서 좀 더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일단, 한국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너무 많고, 또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리 기계나 메뉴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일하는 디저트 분야는 재료가 매우 중요한 만큼, 저로서는 영국에서 더욱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유로저널: ‘파티쉐’라는 용어가 한국분들께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데요.

정은미: 파티셰는 쉽게 설명드리자면 모든 디저트를 다루는 역할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류급 호텔에만 있는 역할인데,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커피와 차 문화가 많이 발전하면서 디저트도 덩달아 발전하여 파티쉐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초코렛 역시 파티셰의 영역이고요. 특히,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파티셰’라는 용어가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제과제빵 학원 붐이 일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로는 드라마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려진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제과제빵에 종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유로저널: 파티쉐라는 직업의 매력이 있다면? 일하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신지요?

정은미: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요리는 정말 그 일을 미치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죠. 하지만, 그렇게 힘들어도 막상 다른 직업으로 옮겼다가도 다시 돌오는 게 또 이 일입니다. 맛은 물론 모양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디저트를 완성하는 과정 자체는 재미가 없지만, 완성품이 나와서 손님에게 나갈 때는 정말 뿌듯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것을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합니다.

유로저널: 반면에 가장 힘든 점은?

정은미: 앞서도 언급했듯이 육체적으로 참 힘든 일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강한 체질을 타고났는데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단, 일을 하게 되면 보통 9시간, 10시간 씩 서 있어야 하고,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면 실수도 하기 때문에 요리를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하던 것을 완성은 해야 하고,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완성해야 하니 만들던 것을 확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미각과 후각이 약한 편이라 체질적으로 요리하는 일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 요리 보다는 강의 쪽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유로저널: 본인이 만든 디저트를 직접 드시기도 하시는지요?

정은미: 저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먹지 않고, 대신 그냥 테스코 제품을 사먹습니다. (웃음) 만들면서 여러 번 맛을 봐야 하고, 또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더욱 달게 만들다 보니 막상 만들고 나면 예쁘기는 하지만 직접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으시다면?

정은미: 우선은 다른 몇 군데의 런던의 호텔에서 파티셰 커리어를 더 쌓은 뒤에, 초코렛과 웨딩케익을 보다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제가 경험한 분야들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는 게 최종 꿈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로운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세계인들이 정은미 님이 만든 멋진 디저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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