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마지막)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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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를 가나 크고 작은 음악학교가 있는것이 의외의 발견이다.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나라
사람들은 예술에 관심이 많음을 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실내가 따듯하기에 물어보니 도시 전체가 흔하게
많은 뜨거운 지하수로 난방을 하니 물과 전기 값이 안든다고한다. 영국의 물가를 생각해본다.
 2011년 5월에 문을 열었다는 건물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고 바닷가에 있는 콘서트홀의 이름은 하프라는
뜻의 하르파다. 초 현대적인 디자인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엘사의 친구이자 아이스랜드의 조각가가 디자인한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품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각가의 디자인이었으니까.
항구에 자리잡은 수도로 항구에는 크고 작은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고래구경 시켜 준다고 호객을 하는
사람들의 경쟁도 볼만하다. 작은 배를 타고 항구를 벗어나 한시간 쯤 넓은 바다를 향해 나가서 대형의 밍키고래도
보았고 이삼십마리의 돌고래가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보는 행운도 있었다. 배의 한쪽 아래로 들어갔다 다른 쪽으로
나오며 웃는듯 보이는 얼굴의 돌고래들이 노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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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핀이라는 이름의 새들은 아주 재미있게 생겼다. 부리가 크고 부리와 몸의 색갈이 각양각색으로 되어 있는
자그마한 새다. 이들만 모여 사는 섬에 가 보니 흙으로 된 벽에 수 없이 많이 뚤려 있는 구멍들은 그들의 집이다.
많은 새들이 모여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보고 새처럼 짹짹거린다는
표현이 생겼나보다.
물에 여러가지 미네랄이 듬뿍 들어 있어 피부병을 고친다는 스파, 블루라군(Blue Lagoon)은 시내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가까이 접근하니 유황냄새가 심하고 흰색의 유황(sulfur)으로 인해서 물 빛이 회색과 푸른색이
섞인것 같아 보였다. 섭씨 39도의 물에 주위는 4 미터 높이의 용암으로 된 벽으로 둘러 싸여 있고 푸른 빛을 내는
나즈막한 호수와 같은 이곳은 그래서 아주 특수한 분위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피부가 예뻐지는 꿈을 꾸며
얕트막한 물 속에 편히 앉아서 잡념을 거두어 낸다.
다음 행선지는 세계에서 최초의 국회가 있었던 역사적인 곳이다. 940년에 시작된 국회라고 한다. 각각의 부족
추장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며 통치하나 아이스랜드 전체를 덴마크나 놀웨이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족의 추장들이 모여서 힘을 합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 최초의 국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곳은 최초의 국회가 있었던 자리일 뿐만아니라 몇 만년 전에 해저에 존재했던 두개의 대륙이 맛 닿아 있던
곳으로 지금은 다시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해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지금 지상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지형을 눈 앞에 확실히 보니 얼마나 신기한가. 갈라진 사이는 양 편이 돌 담처럼 보이는 바위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사이가 아주 넓은 골짜기 같은것에 놀랐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중심에서부터 지상까지 늘 변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폭포하면 나이아가라폭포, 빅토리아폭포, 블루나일 폭포 등등 큰 폭포를 많이 봐서인지 웬만큼 물의 양이 많지 않으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된다. 그러나 이 Golden 폭포라는 뜻의 굴포스(Gulfoss) 폭포는 물의 양도
많고 두개의 층으로 되어있으며 폭이 넓다. 물이 떨어지는 깊이는 105피트라고 하니 물 떨어지는 힘이 엄청 세어서
우렁차게 들릴 수 밖에 없다. 물 떨어지는 강도만큼 많은 량의 물 안개가 끊임없이 대기를 채우고 거기에 짙은 빛의
무지개가 선명하게 보여 너무도 고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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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로 빼 놓을 수 없는 곳 중의 또 하나. 폭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땅에서 뜨거운 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이 솟아 오르는 분수 혹은 간헐천(geyser)을 빼 놓을 수 없다. 뜨거운 물이 땅 밑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어느 순간
치솟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 높이가 30피트쯤 될것 같다. 이렇게 세군데를 돌아 보는데 버스로 7시간 걸렸다.
이 배의 선장은 트럼펫을 부는 놀웨이에서는 파트타임 음악선생이다. 크루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밤에는 승무원들의
쇼가 성황리에 끝났고 자정이 넘은 한 밤의 쇼에서는 선장이 2시간동안 수준 높은 재즈를 연주해서 떠나기 아쉬워하는
승객들의 마음을 달랬다.
선장의 이별의 칵테일 파티에는 처음 환영의 파티때와 마찬가지로 승객들은 모두 성장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선장의
이별의 말과 항해 중에 있었던 일, 승무원들의 안녕을 고하는 말의 순서가 있었다. 주방장의 재미있는 농담과 함께
그간 승객이 먹은 감자가 4톤, 아침 식탁에 놓이는 종이에 싼 버터가 거의 3만개, 생선이 3톤이 넘고 채소가 8.4톤,
우유가 4.7톤, 소고기가 2톤이 넘는다라는 말에 우리 모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 체중을 그 만큼 늘려서
돌아가는게 아닌가 하며 그러나 최고급의 음식을 대접 받은것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이별이 아닌 안녕을
그들에게 고했다.
이렇게해서 북극에 가까운 사람이 살것 같지 않았던 그린랜드를 보고 화산이 터져 유럽전체의 대기에 화산먼지가
너무 많아 일주일 동안이나 전 유럽의 상공에 비행기가 날지 못했던 화산의 나라 아이스랜드를 돌아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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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2(

손선혜의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에 가다)2(

지난번 이 배를 탔을 때에 불란서인인 주방장에게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했다. 불고기, 즉석김치(겉절이),
그리고 시금치나물의 조리법을 알려 주었다. 새로운 메뉴를 내 놓는 결정을 하는데는 수속절차가 엄중하여 시간이
많이 걸렸으나 설득에 성공! 나의 시식으로 잘 만들어졌음을 확인하고 부페에 선을 보였었다. 대 성공이었다.
바로 그 주방장을 이번에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워한다. 이번에는 갈비, 파썰이, 생선전을 가르쳐 주었다.
이번에도 대 성공! 부페에 내 놓으니 아주 인기가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내 끼니도 걸르고 내가 마치 직접
장사하는 양 서브하는 자리에 서서 손님들에게 요리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곳 꽈꼬톡은 남부 그린랜드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배에서는 꽈꼬톡에 대한 역사 지리 그리고 구경할 만한 것을
소개하는 전문가의 강의를 들었다. 제일 큰 도시라지만 항구 가까이에 자그마한 분수가 있는 광장이 있고 그린랜드에서
유일한 털을 다루는 공방이 있다. 이 광장에는 그린랜드에 유일하게 있는 분수가 있는데 이 도시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허나 너무도 볼품이 없고 물이 뿜어 나오지도 않는 작은 분수다.
그린랜드에는 아이스랜드에서 1775년에 앤더스 올슨(Anders Olsen)이라는 사람이 건너와 처음 정착했다고한다.
아이스랜드사람들에게 이곳에 푸른땅이 있다고 하며 이주하도록 설득했다고 해서 이름이 그린랜드라고한다.
 문이 닫혀있는 교회 하나와 조그만 박물관을 보았다. 문이 닫혀있는 교회 옆에는 조그만 창고크기로 교회와 같은
색의 건물이 있다. 호기심에 물어보니 그것은 시체실이라고 한다. 땅이 너무 꽁꽁얼어 매장이 불가능할 때에 시체를
보관하는 곳이라고.



맑은 날씨에 푸른 하늘을 이고 산 모퉁이를 돌고 또 오르고 내리며 바다처럼 보이는 커다란 호수 주위를 한바퀴 도니
그 거리가 자그마치 12킬로미터다. 그린랜드에서 보기드문 좋은 날씨에 산행을 하니 상쾌하게 피곤했다. 산에서
만나는 그린랜드의 젊은이들은 인사를 잘하고 미소를 잃지 않고 묻지도 않은 산길을 가르쳐 주는 등 친절하다.
우리나라 지리산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이 생각난다. 하루코스를 생각하고 올라간 자리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다섯 명의
여승들의 설득으로 4일동안 함께 지리산을 종주했다. 젊은이들과 여승들이 갖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산장에서는
담요를 빌려쓰면서 가는 길은 여간 즐거운것이 아니었다. 준비없이 왔다고 또 다른 주위 사람들이 주는 음식은 어찌나
많았던지. 얻은 떡이 세 광주리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한 젊은이는 내 신발 끈이 잘 매어 있지 않다며 ‘어머니,
앉으세요’ 하더니 다시 잘 탄탄히 매주며 ‘잘못하면 발목 다칩니다.’ 했던 기억도 새삼스레 떠오른다. 미지의
여행길에서 처럼 미지의 인생길을 즐거운 동반자들과 함께 하면 덜 힘들고 더 즐거운 것은 모르는 일은 아니나
새삼스레 가슴이 따듯해진다. 이렇게 예정에 없었던 지리산행은 내게 오래 남는 추억이다.



다음에 닻을 내린 곳은 나사수악(Narsarsuaq), 오늘도 날씨가 좋다. 이곳은 선착장에서 시작되는 길, 하나가
전부이고 집 몇채의 주민들이 전부인 듯 보인다. 그 길의 끝에 활주로가 있어 경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산길을 안내
하는것이 전부인듯 하지만 그래도 관광안내소가 있어 빙하에 가는 길 표시가 있는 지도를 판다. 크지도 않은 지도
한장에 10파운드다. 비록 급경사의 산과 바위가 있다고는 하지만 왕복 16킬로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산 넘어 산,
깊은 산에 있는 빙하까지 갔다. 마지막 정상까지의 300미터 높이의 바위산은 주로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하는 급경사의
길이어서 힘들었다. 배에서 출발한지 9시간 만에 돌아왔다. 힘든 산행이었으나 바로 눈 앞에 수 만년 동안 전 부터
그렇게 있었을 그 장관의 빙하를 보았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다음 행선지는 나노탈릭(Nanortalik). 나노탈릭은
‘폴라베어(복극곰)가 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나 지금은 곰이 육지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한다. 1778년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고래기름과 물개가죽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작은 곳이기는 하나 호텔,
박물관, 관광안내소, 우체국, 은행, ATM,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수퍼마? 과 교회가 있다. 마을의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걸어서 5분거리다.
배에서 내리니 온 동네사람들이 자기네 고유의 의상을 입고 나와 박물관안내도 하고 매시간 교회에서 열리는 합창
공연에 우리들을 안내하느라 바빴다. 타운홀에서는 자기네 고유의 춤을 보여주며 과자, 케이크, 커피를 대접하는등
온 마을이 축제 기분이었다. 배의 승객은 850명인데 그곳 주민은 1300명이라니 우리의 방문이 그들에게도 큰
이벤트인 것 같았다.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통나무로 만든 배, 카약을 타고 기술을 보여주는 쇼를 보고 정이 많은 나노탈릭사람들과
헤어졌다. 배가 닻을 내렸던 항구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항구다. 그들의 따듯한 환영과 많은 양의 자료를 규모있게
잘 정리해 놓은 박물관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그런가보다
바로 이곳이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북극의 빙하로 덮힌 곳이라고 상상했던 곳이다.
배는 ?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아이스랜드를 향하여 2일간 바다를 항해했다. 수많은 크고 작은 빙산들, 몇 만년씩이나
오래된 빙산이 푸른 빛을 낸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온통 빙산들 뿐이다.



아이스랜드로 갈 때는 바람이 세어서 강풍의 정도가10 이었고 갑판에도 나갈 수 없었다. 센 바람과 함께 빙산들이
너무 많아서 배가 속력을 내지 못했다. 결국 애초에 기항하려던 이사표르드(Isafjord)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아이스랜드의
수도 레이캬빅(Reykjavik) 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레캬빅에서 3일 밤을 묵게 되었다.
아이스랜드의 수도 레이캬빅에 사는 딸의 친구인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인 엘사를 만났다. 그의 안내로 짧은
시간동안 많은 구경도하고 아이스랜드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스랜드의 수도 레이캬빅은 18만의 인구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름의 ?은 ‘자욱한 만’이라고 한다. 시내의 한 가운데 제일 높은 곳에는 대형 물탱크들과
거대한 크기의 둥근 지붕을 만들어 놓았고 넓은 조망대를 만들어 그 이름을 진주(The Pearl)라 하며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온다.
어느 동네를 가나 크고 작은 음악학교가 있는것이 의외의 발견이다.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나라 사람들은
예술에 관심이 많음을 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실내가 따듯하기에 물어보니 도시 전체가 흔하게 많은 뜨거운 지하수로
난방을 하니 물과 전기 값이 안든다고한다. 영국의 물가를 생각해본다.

<다음 주에 계속>



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17) 도시 속 복고풍 장식물 같은 노팅험 아트 갤러리

세기를 거슬러 떠나보는 유로 건축 여행 20
(17) 도시 속 복고풍 장식물 같은 노팅험 아트 갤러리
10년 전 월살 아트 갤러리 (Walsall Art Gallery)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영국의
카루소세인트 존스 (Caruso St John) 설계 사무실은 지난 2009년 영국 중부 노팅험 (Nottingham)
이라는 지역에 오픈한 현대미술 갤러리로 재활하며 또 한번의 왕성한 건축활동을 예고했다.
갤러리가 지어진 땅은 본래 산업용지의 땅이었다. 이 부지 너머 언덕위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세기에 지어진 영국 전형의 잘생긴 조적건물들이 자리를 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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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의 전체적의 볼륨은 주변 건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단지 갤러리 파사드의 금빛과 빛 바랜
녹색이 배경의 적색 벽돌과 대조를 이루며 눈에 띌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로마에 오픈한 자하하디드의
맥시 (Maxxi) 갤러리의 율동적이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선들과 비교하면 노팅험 갤러리는 오히려
둔탁하며 정적이다. 멀리서 보면 별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갤러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이런 실망감은 서서히 호기심으로 둔갑하고 갤러리 입면의
프리캐스트 패널에 새겨진 텍스처가 불과 몇 미터 내의 시선에 들어오는 순간 그 섬세함에 감탄대신
조용한 침묵만이 흐르게 된다. 그물모양의 레이스가 물결모양의 11미터 각 패널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평소 그들의 건축작업에 남다른 예술적 감성을 표현해오던 카루소 세인트 존스는 산업
혁명이래로 노팅험의 큰 자랑거리이자 명물이 된 망사모양의 레이스를 건물 파사드에 새겨 넣는 실험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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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은 또한 대지가 지닌 역사적 문맥도 중요시 생각하는데 한때는 철길이 지나가던 산업용지였던
갤러리 대지를 염두에 두어선가 언뜻 스치는 전체적인 건축물의 첫 인상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치 산업설비용품처럼 정교하고 내구성이 강한 듯하지만 자하의 맥시 갤러리처럼 매끄럽고 초현대식
같은 느낌은 오질 않는다. 오히려 복고풍 장식 같다.
현대 건축을 Speed-read architecture 라고 표현한다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건축
앞에 대부분의라는 단어가 놓인다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건축물들은 언뜻 보기에 좋아야 한다. 게다가 흔히 얘기하는 “Wow factor” 와우
라는 함성이라도 나온다면 최고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해 많은 젊은 건축가
들이 유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 노팅험 갤러리는 천천히 시간을 갖고 훑어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High-resolution
architecture 말하자면 고해상도의 건축물이다. 사진에선 안 보이지만 갤러리 지붕에 설치된 132개의
피라미드 모양의 천창들 또한 갤러리 내부의 섬세한 디테일과 어우러져 방문객들의 시선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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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험갤러리는 매년 200,000명의 방문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총 방문객수를 생각
한다면 그 수를 십만명가량 더 추가해도 크게 지장이 없을 듯 하다
. 발전소 건물을 현대 미술관으로
바꿔버린 테이트 모던 디렉터 니콜라스 세로타
(Nicholas Serota)는 최근 이 갤러리를 방문한 후
유럽에서 가본 몇 안 되는 최고의 갤러리 중 하나라고 극찬을 했다
.
그리고 필자가 여기에 한 술 더 얹어볼까 한다. 나는 우리네 인생을 닮은 듯한 혹은 사람냄새가 나는
듯한 건축물을 좋아한다
. 노팅험 갤러리는 분명 그 중 하나라고..

박치원
RIBA, ARB (영국 왕립 건축사)
SMAL AND PARTNERS 대표
뉴카슬 대학 건축 디자인 디플로마 튜터
www.smalandpartners.com
cpark@smalandpartn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