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6일 화요일

[김용복 목사 칼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 창37:5-11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 창37:5-11


성경에는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 비범한 인생을 살게되는 많은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이런 비범함의 공통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고 그 꿈을 성취한 삶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성취하는 지를 배워보자.

첫째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한다.

씨앗을 심어야 싹이 나고 열매를 얻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꿈은 마치 씨앗과 같다. 먼저 하나님의 꿈을 받고 그 꿈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그 꿈이 성취가 된다. 하나님의 꿈을 받으려면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행2:16-18은 성령이 꿈을 주신다고 말씀한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꿈을 주신다. 그리고 받은 꿈을 끝까지 간직하라. 자신의 약함, 환경, 고난 등이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주신 꿈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신뢰하라. 요셉은 하나님께 받은 꿈 때문에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가는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셨다. 고난은 꿈을 포기하라는 사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꿈을 통해 명품 삶이 될 것이라는 증거임을 확신하라.

둘째 하나님의 꿈을 말하라.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그 꿈을 형제와 부모님께 말하였다. 그리고 그 꿈을 말한 후에 격려를 받기는커녕 아버지께는 꾸중을 들었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께 꿈을 받은 사람들은 요셉과 같은 반응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받은 꿈을 말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꿈을 말하면 그 꿈이 더 구체화되어 흔들리지 않는 꿈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루는 동역자를 만나게 해 주신다. 당신의 꿈을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 드려라. 그리고 자신에게 늘 말해 주라. 사람들이 그 꿈을 알도록 말하라.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함으로 애매한 고난도 받았지만 말한 것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라.

셋째 하나님의 꿈을 준비하라.

꿈을 받을 때 현실은 꿈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꿈은 사장, 재벌, 리더가 되어있지만 현실은 말단사원, 학생 또는 버스비가 없어 걸어 다니고 있을 수 있다. 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현실에 불성실한 채 시간을 허비한다. 하나님의 꿈을 받을 때 하나님이 꿈을 반드시 이루실 것으로 받아야 함과 동시에 이제부터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꿈을 받은 사람은 영적인 것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현재 주어진 삶에 성실해야 한다. 요셉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성실하였듯이(창39:22-23 ) 지금 맡은 일에 타의추종을 불어할 수준으로 살라.
결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꿈의 성취를 통해서 최상의 축복된 삶을 살 뿐 아니라 세상을 축복되게 하는 삶은 산다.
지금 당신 안에 어떠한 하나님의 꿈이 있는가?
당신은 꿈 때문에 설레이며 그 꿈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말하며 살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주어진 삶에 성실하여 주변에서 칭찬 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전 유럽 한인대표 신문 - 유로저널 - www.eknews.net>

[유로저널]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2.

<문화현장/ 영국인의 이야기 5>

꽃을 키우지 못하는 여자하고 사는 그 남자, 로버트 2.



나는 그녀가 권한 차를 마신 후, 프란세스에 대한 안부와 근황을 매개로 그들과 어색한 만남의 틈 메꾸기를 시도한다. 그들과 나는 전혀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이고 아마도 로버트는 난생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프란세스는 네 살이 많은 그의 누이였고 나는 프란세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수년째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인터뷰는 그녀의 고아원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동생으로 지켜본 누이의 삶에 대한 진솔한 증언을 취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카메라를 셋업하면서 조명을 신경 쓰다, 다시 방 안의 벽을 세심하게 돌아다본다. 색 바랜 벽지에 프란세스가 그린 수채화가 생경하게 걸려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이 사실 그녀의 삶과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바로 보았다.
낡은 소파에 몸을 묻고 카메라 앞에선 그는 모든 것이 예전보다는 분명 낫고 자기는 행복
한 사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50여 년 전 런던의 서민 주택은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 수도 물은 집 밖에서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비싼 연료비로 목욕물을 데우는 것도 여의치 않아 한번 데운 물로 전 가족이 차례로 사용하곤 했다.





<자료 사진/ 50년대의 영국의 서민주택>







<자료 사진/ 50년대의 영국 주부>


로버트와 프란세스는 어머니의 불편한 몸과 정신 쇠약으로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5살이 되기 전에 부모와 헤어져 고아원으로 갔다. 그곳서 프란세스와 함께 독립할 나이가 되기까지 생활을 했다. 당연 지금 가지고 있는 이 허약한 가정과 퇴색해 보이는 낡은 집도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계단에 수북하게 쌓인 먼지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분명 좋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남자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의 삶이 어둡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내가 어둔 내 그림자에 눌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버트는 그의 아버지의 불행한 삶을 세습한 것과 같이 보였고 그의 두 자녀는 자신과 프란세스의 삶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카메라 앞에서 굳어진 그의 표정을 풀기 위해 농담을 던진다. 그러나 그는 아주 짧은 순간 반응하고 이내 다시 긴장을 한다. 고아원 생활부터 질문을 하려다 난 순서를 바꾼다.
프란세스가 이혼을 할 때 로버트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는 말을 떠올리고 그 장면부터 증언을 듣기로 한다. 자신이 몸으로 체험한 불행보다 누이의 불행이 그래도 덜 무겁지 않은가 하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3/프란세스는 지금 불우 아동을 집에서 돌보는 작은 포스트 훼밀리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계층이 다르다고 사는 방법이 달라야만 하는가?

1996년 프란세스(Frances)는 수영장엘 가려고 나서다가 와인 창고에서 남편이 16살의 여점원과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때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이 때 남편에게 살의까지 느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녀는 우선 집을 뛰쳐나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이 때 남편의 시누이가 함께 있자고 프란세스에게 제의를 했다.
난 그 때 상황을 다시 잠시 요약하여 로버트에게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로버트(Robert)는 이렇게 말했다.
“그 때 저도 저희 집으로 와 있을 것을 제안했어요. 프란세스는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묻는다.
“프란세스가 남편이 함께 잔 것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키스 정도 한 현장을 목격 한 것만으로 그렇게 과민하게 행동을 할 필요가 있었을 까요?”
한국 여인 중에 50이 넘은 부인이 자기 남편이 젊은 여자하고 키스 한번 했다고 집을 뛰쳐나갈 여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는 내 생각 때문에 질문을 했다. 내 질문에 로버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왜요?”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전 유럽 한인대표 신문 - 유로저널 - www.eknews.net>

[유로저널] 꼬마야! 땅을 짚어라!


-강소희 포토 에세이 - 꼬마야! 땅을 짚어라!


친구들이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면 줄넘기를 하지요,
아기를 업은 큰언니도 같이 뛰고 싶지만
아기가 다칠까봐 줄만 돌리고 있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 "


<전 유럽 한인대표 신문 - 유로저널- www.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