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5일 수요일

미주지역으로 이주한 옛 광부들 40 여년만에 독일 방문

미주지역으로 이주한 옛 광부들 40 여년만에 독일 방문

심금 울린 양해경사장 축사, 장내는 숙연한 감동 물결쳐
'파독산업전사'들 옛 친구 얼싸안고 감격의 포옹
옛 일터 아헨지역과 뒤스부르크 탄광촌 돌며 감회에 젖어보기도




독일로 파견된 8천 여명의 한국인 광산근로자들은 3년간의 노동계약기간이 끝나고 대부분 귀국했다. 그러나 20%  정도는 독일에 남아 오늘날의 재독동포사회를 형성했고 또 일부는 제 3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들 700 여명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주로 미주와 호주지역으로 이주 해갔으며 지난 40 여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기회의 땅'에서 자신들의 꿈을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그들이 지난 17일 독일 땅을 다시 밟았다. 40년전 젊은 꿈과 애환이 담겼던 광산을 방문한 옛 산업전사들. 독일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는 그들의 가슴은 벅차올랐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곳엔 여전히 그들을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타지로 이주한 광부들은 우선은 자신들이 선택한 땅에서 어떡하든 정착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허리띠 졸라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쟁과도 같은 이민생활에 뛰어든지 어느덧 사십 성상.  이제는 역경과 시련을 다 이겨내고 편안하게 지내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하나 둘 환갑을 넘기면서 노후를 맞은 그들이 다시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업도 제 궤도에 올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자녀들도 대부분 출가해 마음의 짐도 덜었다.

미국과 카나다 등 미주지역에 정착한 그들은 여타 이민자들과 달리 단단한 끈으로 묶여있다. 독일 광부시절 천 여미터 지하갱도, 생명을 담보한 막장 생활을 하며 다져진 그들의 우정은 미국에 갔다고 변할 수는 없었다. 서로 문안하고 왕래하며 함께 골프를 치면서 더욱 우의를 다진 그들은 지난 2008년 뉴욕, 시카고, 롤스엔젤레스, 뉴저지 등지의 파독광부들을 중심으로 뉴저지 골프 대회를 열었다. 이것이 '파독산업전사대회'의 시작이었다.

뉴욕에 거주하는 김성환(1965년 6월, 제5진으로 파독, 함보른 탄광 근무)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1차 대회에 이어 2009년에는 시카고에서 2차 대회가 열렸다. '파독산업전사'란 바로 2차 대회 때에 대회장이었던 신길균씨가 제안해 채택된 명칭으로서 파독광부 뿐만 아니라 파독간호사까지 포함해 이들이 조국이 어려웠던 시절 경제발전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감당한 산업역군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것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찾자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올해 3차 대회는 독일에서 열렸다. 출가한 딸의 친정과도 같은 마음의 고향, 이곳 독일 루르지역에서 뜻깊은 3차 대회를 개최하면서 '파독산업전사대회'는 이제 정기행사로 자리매김 됐다. 이번 독일대회는 마침 광복절과 비슷한 시기에 일정이 잡히면서 아얘 광복절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치르기로 했다. 당초 40 여명의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11 명이 방문했다. 이번 대회규모는 독일을 제외한 네델란드, 스위스 등 유럽지역에서 참가한 산업전사들을 포함해 약 30명 정도가 된다고 주최측이 발표했다.

공식행사가 시작된 18일(수), 미주지역 동우회장 김성환사장을 비롯해 시카고의 신길균사장 등 재미동포 일행은 버스를 전세 내 그들의 젊음이 묻혀있는 탄광단지를 돌기로 했다. 오전에 뒤쎌도르프 호텔을 나선 이들은 아헨을 향해 출발해 뒤스부르크 함보른 탄광까지 둘러보면서 이곳 저곳 추억이 서린 장소와 옛 거리, 기숙사 등을 찾아다녀 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져 온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광산터를 바라보자니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옛 일터 함보른25광산 인근, 발줌(Walsum) 탄광 입구에서 깊은 감회에 잠긴 김성환씨는 말한다: "40 여년 전 젊었을 때 일했던 곳을 다시 와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젊은 열정을 바쳐서 일했던 이곳,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어서 웬지 낯설기도 하고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다. 당시 광산에서의 힘들었던 시절. 그 때를 극복했던 경험들이 이후 내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독일 광산작업은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미국생활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다. 나는 역경에 처할 때마다 독일 광산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리며 스스로 힘을 얻곤 했다. 천 여 미터 지하 막장에서 새카맣게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돈을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냈던 그 투지와 정신력이면 무슨 일이든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시련들을 헤쳐나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3년간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나의 젊은 과거에 대해서 지금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LA에서 온 이현구씨는 43년만에 돌아왔다. 1967년에 독일 떠난지 꼭 43만이다. 발줌 기숙사에 살면서 함보른의 25탄광과 발줌 탄광 양쪽에서 근무했던 이씨는 골목과 거리를 되짚어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모든 것이 많이 변해 버렸다고 말하면서도 용케도 자건거를 샀던 가게자리며 벼룩시장 자리도 찾아냈다.

저녁에는 에쎈 소재 파독광부기념회관에서 성대한 개막식이 열렸다. 문태영 주독대사는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어렵던 1960년대  광산근로자들이 만리타국 독일까지 와 피땀 흘려 번 돈이 모두 한국으로 송금되면서 조국의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때 그 분들이 세계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이제 40 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친구, 동료들과 다시 만났다. 이번 대회는 서로 만나 회포도 풀고,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는 뜻 깊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광부로 오신 이 분들은 한국 뿐만 아니라 독일 경제발전에도 기여한 바 크므로 독일에서 보더라도 귀감이 되는 분들이다. 또 많은 분들은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 정착해 살면서 그 곳에서 크게 사업을 벌리고 성공했으니 이 또한 동포들의 귀감이 되는 일이다"라고 산업전사들의 업적을 평가했다.

또 이번 3차 대회의 대회장인 고창원 글뤽아우프회장은 역시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1차적인 목적은 1963년 초창기에 오신 원로들과 후발대로 온 젊은 층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교류와 친목을 다지는 데 있다.  2차적인 목적은 우리의 2세들이 이제 세계 각 처에 퍼져 살고 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조성하자는 데 있다. 독일은 과거에 근무를 마치고 떠난 분들에게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젊은 시절 힘들게 일하며 정들었던  여러가지 추억이 서린 곳이기 때문에 이 분들은 독일에 대한 짙은 향수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이분들을 맞이해 고향의 푸근함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고 대회 취지를 말했다. 고회장은 이어서 "그 동안 우리는 한국정부에 독일광부들을 기억해달라고만 했지 정작 우리들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일에는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를 살펴보면서 미래를 꿈꿔보자는 생각으로 이번 대회의 모토도 과거를 상기하며 미래를 다듬는다고 정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개막식에는 이번 대회를 지원한 삼성 유럽의 양해경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아쉽게도 출장으로 인해 참석을 하지 못하고 축사는 윤행자 문화회관 건립추진위원회 부이사장이 대독했다. 윤행자씨의 낭낭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이 곁들인 낭독이 시작돼자 장내는 이내 숙연해졌다. 그 만큼 축사의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회중의 가슴을 후벼파며 코끝을 찡하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60년대 초 한국 농촌의 춘궁기로 배곯던 시절부터 오늘날 세계 정상급 국가로 인정받기까지의 이야기들을 광부를 주체로 해서 엮은 양사장의 축사는 어느 문학가 못지 않은 훌륭한 글이었다. 목이 메어 떨려나오는 낭독자의 감정이 회중에게 이입되면서 감동의 물결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뉴욕의 김성환씨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 눈을 훔쳐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 콧물 닦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사회자 정만윤씨는 이것은 축사가 아니라 광부들의 대서사시라고 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40여년전 함께 일하던 옛 친구를 처음 상봉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는 모습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과 흡사했다.  40년만에 소식 한 자 없이 나타난 옛 친구,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무슨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그들은 손을 맞잡고 얼굴을 부비며 껴안고 또 껴안았다. 그들은 그렇게 애틋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번 3차 독일대회는 18일에 시작해 20일까지 3일간 개막식, 골프대회, 이민회고담 발표 등 공식일정을 마쳤다. 일행은 유럽여행을 한 후 귀가길에 오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