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1일 목요일

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2)


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2)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를 게재합니다.

3. 포기할 수 없는 도전 그리고 감사한 분들

손발이 떨렸다.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졌다. 정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구나. 다시 바로 데카틀론 안으로 들어가서 이 상황을 알렸고 그들은 나 대신 경찰서에 전화해줬다. 전화상으로 경찰은 내가 경찰서에 가야 한다며 여기서 가까운 경찰서 두 군데를 알려줬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둘 중 더 가까운 경찰서로 달렸다. 도착하여 건물 정문이 잠겨있음을 확인할 때 경찰관 한 명이 문을 열며 말 한 마디 대뜸 던지고 들어갔다. "끝났다." 인터폰 벨을 눌러보았으나 그 너머에 있는 경찰관도 "끝났다."라고만 말하고 인터폰을 끊으려 하였다. 아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 할 필요도 없고, 야간에도 근무하는 경찰서나 그런 지점은 당연히 있을 것인데 끝났으면 어떻게 하라는 다른 대안을 줄 관심도 없다는 것인가? 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경찰관이 나보고 여기로 오라고 했다.”라고 재차 반복해 외쳐 댔다. 그제서야 잠겨있는 문 안에 있던 경찰관은 밖으로 나와 내 얘기를 들었다. 
결국 조금 전 데카틀론에서 들은 나머지 다른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꼬우면 출세해야지 다른 곳에 가면 해결해 주겠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가지고 나왔던 후드자켓은 자전거와 사라져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이끌고 다음 경찰서에 갔다. 별거 아니라는 듯한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증명서를 받고 이제 끝났으니 가보란다. “혹시 내 자전거가 무슨 색깔인지 안 궁금해?” “응.” 그렇다. 난 여태까지 허황된 소망과 춥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축제에 흥분한 사람들과 부딪쳐가며 이 곳에 왔던 것이다. 
자전거 색깔조차 궁금하지 않다는 경찰관에게 “내 자전거 사진 줄까”라고 재차 물어본 난 참 미련했다.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올린과 친구들은 곧 집에서 나올 참이었고, 난 와이파이가 있는 따뜻한 곳에서 그들을 기다릴 셈으로 두오모 광장 앞 버거킹으로 향했다. 날씨는 더욱 서늘했고 점차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버거킹에서 기다리다 심지어 잠까지 들었던 나는 친구들을 아직 만나기 전에 결국 집에 혼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낮에만 해도 밀라노와 난 함께 들떴는데, 내 출전을 경축하는 술자리를 잔뜩 기대했는데, 난 밀라노로부터 등을 돌렸다. 
사실 술을 좋아한다. 덴마크에서 김치 한 번도, 옷 한 벌도 안 사 먹고, 안 사 입은 대신, 덴마크에서 일을 갖고 수입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래도 술은 사 마셨다. 친구들과 술을 즐기는 건 한국 친구들과나 외국 친구들과나 다를 게 없이 즐겁다. 
경찰서에서 보고서 작성을 다 마친 후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여겼지만 그 엄청난 피로는 정말 대단했다. 집에 돌아와서 침낭을 피자마자 바로 그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즉 모험 6일, 비록 자전거가 도둑맞았지만 올린의 생활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날 까지만 올린 집에서 묵고 월요일인 모험 7일엔 올린 집에서 나오기로 했다. 이건 포기할 수 없는 여행이다.
비록 분해도 자전거와 샀던 모든 장비를 다시 사야 했다. 이젠 정말 예산 문제였다. 단순히 아까운 호화 호텔이 싫어 카우치서핑을 찾았던 것과 달리 이제 아까지 않으면 여행을 끝낼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무료 숙박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에서 밀라노 한인센터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하여 사정을 알렸고 한인센터에서 밀라노 한인교회 이리노 목사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난 안전한 곳에 지붕만 있으면 매트리스와 침낭 깔고 잘 수 있다고 말씀 드렸고 목사님께서는 다음날 오라고 하셨다. 모험 7일, 한 상자 가득 들은 짐, 뚱뚱해진 배낭과 이키아 가방 하나 들고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가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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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한인교회 이리노 목사님
이 목사님께서는 일이 있으셔서 나가시고 한영진 집사님께서 날 맞이해 주셨다. 잠시 대화 끝에 한 집사님께서는 자기 집 안에서 잠자리를 마련해 줄 상황이 안되고 그렇다고 찬 바닥에서 자는 것도 안쓰럽기 때문에 차라리 따신 한인민박에서 아침밥 든든히 먹으라며 민박집에서 며칠 묵을 치의 돈을 건네주셨다. 이렇게 큰 돈을 받고자 온 것은 아니고 울타리와 지붕만 있으면 되는데, 결국 한 집사님의 언변에 못 이겨 봉투를 받고 교회를 나왔다. 한 집사님은 유쾌하신 분이셨다. 근처 바에 들어가 주스와 이탈리아 식의 간소한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더 나누고 헤어졌다. 
난 다시 처음 이틀을 지낸 민박집을 향했지만 이 돈이라도 아껴 써야 할 것 같다. 이번의 검색어는 '밀라노 한인 학생회'이다. 역시 구글신 아니 던가. 우리 구글신께서는 밀라노 한인 학생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담긴 명단을 찾아주었다. 그 중에 첫 번째 남자이름의 학생인 김명식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인정이 많다. 흔쾌히 약속 장소를 정했고 이날은 김명식씨와 함께 잤다.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 늦게 퇴근하는 정말 바쁜 박사 유학생이었다. 게다가 그날 즈음에 집 하수구가 막혀 여러모로 손님을 들이기가 불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음날은 다른 잘 곳을 찾기로 했다. 
이렇게 잠깐 잠깐 머무르는 방법으로는 숙박비는 아껴도 시간낭비가 심했다. 어제 오늘 음식을 잘 해먹지도 못해 여러모로 심신이 피곤한 상태였다. 벌써 모험 8일인데, 차라리 호스텔 하나 잡아 다시 자전거와 모든 장비를 준비하고 빨리 출발해 버릴까…. 오늘 하루 더 찾아보자. 밀라노로도 카이스트에서 교환학생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스트 국제협렵팀에 내 사정에 대한 기술과 함께 교환학생 온 학생들 연락처를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다음엔 밀라노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총영사관의 한미영 행정원은 총영사관이 직접적으로 도와줄 적당한 방법이 없어 미안하다고 날 위로해주며 총영사관 당직 전화번호, 민박집 전화번호와 함께 밀라노 한국순교자천주교회의 김지현 요한 신부님 연락처를 알려줬다. 좀더 힘을 내자. 김 신부님께 전화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이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잠시 기다리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제발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로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한 신자부부네 집에서 준비가 끝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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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화상통화
아, 드디어 안정된 거처를 구했다! 그 부부는 유성채 아저씨, 기효순 아주머니였다. 바로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며, 지금 운영하는 한국식품점 가게에 찾아가 직접 인사 드리겠다고 전했다. 이제 우리 부모님께 전화할 차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머니께서 먼저 페이스북 영상통화로 전화를 거셨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어머니께서는 왠지 내가 페이스북에 있을 것 같아 오래간만에 들어와봤고 페이스북에 영상통화 기능이 있길래 한 번 클릭해 본 것이라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오래간만에 아들과 영상통화하여 그저 행복해 하셨다. 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했는데 어머니께서는 도둑 맞은 것에 대한 염려는 전혀 없으셨다. 그래 이것도 어머니 말씀대로 큰 경험이다. 
가족처럼 챙져주신 유성채 아저씨, 기효순 아주머니.JPG
가족처럼 챙겨주신 유성채 아저씨, 기효순 아주머니
돈 몇 푼어치 잃어버린 게 뭐 대수이랴. 난 우리 어머니로부터 ‘전화위복’을 배웠다. 10살이던 어느 날 학교 숙제로 종이로 된 자동차를 만들었다. 실수로 어머니께서 밟으셔서 자동차를 망쳤고 난 어린 마음에 울었다. 어머니께선 날 달래며 같이 다시 만들자고 설득하셨고 우리는 당연히 더 멋진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때 어머니께서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한 마디를 말씀해 주셨다. '전화위복' 이 말은 해가 지날수록 내 가슴 깊은 곳으로 점점 더 파고 들어왔다. 모든 일은 결국 다 잘 될 거야.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날 위해서 돌아간다고 굳게 믿는다. 다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날 위해서'는 돌아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위복'은 더욱 증명만 될 뿐이었다. 후회할 법한 일이 생겨도 그것은 더 좋은 것을 부르는 나비효과였다. 삶에 있어서 후회할 필요는 전혀 없고, 다시 행복해 지면 된다. 왜냐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걸 아니깐. 영화 선리기연의 손오공 역 주성치가 말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오.” 역시 후회하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나에게 일어난 도난 사고도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수단이고 더 좋은 결과를 유래하는 사건이다. 
언제나 즐거운 앞날이 기대된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 아저씨는 남는 방 두 개로 가끔 민박집처럼 운영하였고 신부님께서는 내 숙박에 대해 금전적 지원을 해주시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흘 머무르는 동안 아주머니 아저씨께서는 날 가족처럼 매우 따뜻하게 챙겨주셨다. 모험 12일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밀라노를 떠나자. 김 신부님은 일이 있으셔서 직접 찾아 뵙진 못하여 전화로만 인사 드렸고, 이 목사님은 찾아 뵙고 인사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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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든 준비를 갖춘 새 자전거
두 분 다 좋은 말씀 전해 주시며 앞 길의 편안을 빌어주셨고, 난 드디어 첫 야영지를 찾아 나섰다. 적당한 야영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람의 통행이 없고 안전한 곳을 과연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몇 시간 헤맨 끝에 밀라노 시 외곽의 축구장 사이 작은 잔디밭(좌표 45.48915, 9.047371)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과연 안전할까, 누가 와서 야영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모험에 기대와 흥분을 안은 채 별일 없길 바라며 침낭 안에 몸을 맡겼다.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 
eurojournal@eknews.net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1)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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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험의 서곡은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고 나는 이탈리아로 가고 있다. 어두컴컴한 창 밖은 앞으로 나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일이 년 후의 나의 미래까지도... 이제 나에게 집은 없다. 주소 없는 여행자로 세계 속에 나는 내 던져진 것이다. 
이제 나의 집은 텐트이고 이웃은 전 세계 모두가 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새로운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오랜만에 큰 여행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해서 자전거 타고 약 두세 달 간 덴마크 코펜하겐까지 돌아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KAIST입학이 결정되고 같이 KAIST에 가게 될 친구와 둘이서 그해 가을에 호주로 배낭여행을 떠나 45일을 여행했고, KAIST 1학년이었던 이듬해엔 포항공대에 같은 시기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문 친구와 둘이서 30일 동안 정말 한 푼도 없이 국내 무전여행을 하였다. 이게 2003년이었으니- 나는 03학번이다- 2012년인 지금으로부터 보면 벌써 9년 전이다. 
아직도 호주, 국내무전여행 둘 다 모두 생생한데 그래도 오랜만이다. 2010년 가을학기에 덴마크공과대학(DTU, 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지난 2월까지 계속 덴마크에 거주하다가 이제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혹은 취업하여 일에 전념하기 전에 9년만 에 큰 여행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사실 자전거로 유럽 여행하는 것은 덴마크에 오기 전부터 꿈꿔오던 것이었고, 덴마크에 오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는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었다.
덴마크는 물가가 비싸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 미리 자전거를 하나 구입하여 덴마크에 올 때 가지고 왔다. 게다가 교환학기가 끝나면 2011년 1~2월의 겨울이기 때문에 중학교 때 입고 안 입던 오리털 파카, 스웨터 등도 모두 챙겨왔다. 
하지만 계획보다 일년 후인 2012년 2월에 난 지금 시작하고 있다. 지난 두 여행과 더불어 이번 여행을 하게끔 영향을 준 인물이 두 사람 있다. 바로 이찬양씨와 문종성씨다. 호주배낭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는 아직 영어도 못하고 해외 나가본 적도 없고 오래 여행해본 적도 없어서 사실 호주에서의 홈스테이를 고려했었다. 그런데 그 때 여행을 즐겨 하던 -현재는 전문 여행가가 되었지만- 이찬양씨의 홈페이지를 통해 용기를 얻어 긴 배낭여행을 단행하게 됐다. 
무전여행 결정 시에도 역시 이찬양씨 홈페이지로부터 많은 용기를 받았다. 그런 이찬양씨가 2007년에 자전거로 세계일주여행을 떠났고, 그의 자전거 세계여행기를 읽으며 역시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도중 2011년 가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여행 중이던 문종성씨를 만났다. 그로부터 생생하게 들었던 수많은 자전거 여행의 아름다운 일화들은 날 무척이나 감동시켰고 이번 자전거 여행을 결행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그 아름다운 일화들은 거의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고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나의 도전에 성공하겠다는 목적의식도 물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을 이해하고 배우며 견문을 넓히는데 있다. 그런데 단지 자전거로만 하는 큰 여행이 아니다. 이찬양씨 문종성씨가 그렇듯 나 역시 텐트, 침낭 등 여러 장비와 함께 캠핑하며 여행할 것이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저가항공 이지젯 비행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온 자전거와 덴마크에서 프랑스 친구와 같이 여행할 때 쓰던 텐트, 침낭, 자동충전식 에어매트리스, 중학교때 입던 겨울 옷들 등이 함께 타고 있다. 비행기가 코펜하겐 공항을 뜬지 두 시간이 다 되가 곧 이탈리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착륙하려 한다. 지금은 2012년 2월 21일 밤 10시 30분경, 나의 서곡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마치고 이제 나의 모험은 시작된다. 오늘이 모험 첫째 날이다. 

 2. 채비를 다 갖춘 떠나기 전날 자전거와 장비 모든 걸 도둑맞다니
 밀란 말펜사 공항에 도착한 나에겐 짐이 많았다. 자전거를 포장한 자전거 박스, 짐으로 가득 찬 커다란 배낭 그리고 거기에 모자라 한 박스 가득한 짐. 나는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자전거 뒷짐받이는 이미 한국에서 장착해 왔기 때문에 앞패니어(자전거 바퀴 양쪽에 다는 가방)를 달기 위한 앞짐받이를 알아봐야 했고 물론 앞패니어와 뒷패니어도 역시 구입해야 했다. 또한 캠핑스토브 및 가스연료 등 캠핑장비 몇 가지도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나는 며칠간 밀라노에 머물러야 했는데 도난의 염려 때문에 이 많은 짐들을 호스텔에 놔둔 채로 밖을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돈을 좀 쓰더라도 채비가 끝나 떠나기 전까지는 한인민박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룻밤에 30유로라니 엄청난 비용이다. 재작년 덴마크에서 만난 교환학생 친구들끼리 셋이서 독일에 여행 갔을 때 두 명만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나는 몰래 들어가 빈 침대에서 이불 없이 자고 아침도 번갈아 가며 먹으며 점심, 저녁 치 빵, 쨈, 햄까지 몰래 싸가지고 나오며 여행하던 나 같은 참으로 저렴한 여행자에게 한식으로 아침상을 차려주는 한인민박은 말 그대로 초호화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덴마크에서 1.5년 살면서 김치 한 번 사 먹어본 적 없고 한국식당에 내가 먹고 싶어서 간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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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출신의 한인민박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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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민박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밀라노 도착한 다음날부터 자전거 가게들을 방문하며 자전거장비 가격을 알아보는데 캠핑장비까지 사려면 이게 하루 이틀 안에 바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인민박은 부담이 매우 컸기 때문에 비용이 안 드는 카우치서핑(현지인 집의 소파에서 숙박비 없이 지내며 같이 음식을 해먹거나 이야기 하는 등의 교류를 하는 일. 현지인을 호스트라고 하고 방문하는 여행객을 카우치서퍼라고 한다)을 알아봤고 다행이 호스트를 한 명 찾아서 밀라노 셋째, 넷째 날 밤(즉 모험 셋째, 넷째 날 밤)은 그 호스트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호스트랑은 나의 모험 넷째 날 밤까지로 약속했는데 모험 다섯째 날이 밀라노 카니발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고 호스트가 나와 같은 또래이고 유쾌해서 호스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축제 마지막 날 같이 술 마시고 밤새 놀기로 하고 하룻밤 더 있기로 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종일 밀라노 자전거 가게만 돌아다니면서 찾은 저렴한 자전거 가게에 맡겨놓은 자전거도 다섯째 날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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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올린
호스트의 친구 유린.JPG
호스트의 친구 유린
다섯째 날 자전거를 찾고 스포츠용품점에서 캠핑장비를 구입하고 호스트와 축제를 즐기고 나는 그 다음날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에 보통 많이 쓰는 자전거 뒷패니어가 한 쌍에 110유로가 넘었는데 내가 찾은 자전거 가게는 처음보는 브랜드의 가방에 사용이 약간 불편했지만 품질은 좋아 보이고 가격이 50유로밖에 안됐다. 앞뒤 패니어 함께 생각하면 이미 120유로는 절약한 셈이고 게다가 앞짐받이도 다른 데보다 30~50유로는 저렴하게 구입했다. 
이동거리 등도 함께 측정해주는 자전거 속도계, 안전을 위한 LED 라이트, 물병 케이지를 구입하고 브레이크패드를 갈고 이미 장착된 산악용 1.95인치 두께의 타이어에서 도로에서 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1.75인치 두께의 타이어로(속의 튜브를 교체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가장 좁은 타이어. 좁을 수록 포장도로에서 빠르다)도 교체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다섯째 날 점심나절 모든 장비를 갖춘 자전거를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챙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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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 자전거 가게에서 구글 번역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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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가게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
축제 마지막 날을 위해서인지 단지 날 위해서인지 그날 밀라노의 햇살은 얼마나 따스하던지 그저 기분이 좋았다. 입고 있던 후드자켓은 자전거 패니어에 기분 좋게 넣어 놓고 즐거워 보이는 분장한 사람들 사이로 나 역시 웃으며 유유히 자전거를 몰며 카이롤리 카스텔로(Cairoli Castello) 메트로 역 앞에 있는 스포츠용품점 데카틀론으로 향했다. 데카틀론에 도착한 때는 오후 6시쯤, 그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고 그 반대편 가까이에 밀라노의 중심거리가 있는데다가 이날이 축제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그 주변엔 축제를 즐기러 나온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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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맡겨 놓은 동안 관광객으로서
데카틀론 입구 바로 앞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 자물쇠로 잠그고 들어가 약 한 시간가량 스펀지 매트리스, 랜턴, 등산양말, 작은 온도계와 나침반이 함께 달린 비상용 호루라기 등을 구입하였다. 이제 우리 호스트 친구들과 음주가무 할 차례다. 게다가 내일이면 드디어 출발한다. 들뜬 마음으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저녁이어서 사람은 많았고 밖은 어두웠다. 
어둡고 앞에 사람들이 많아 자전거가 잘 안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여전히 잘 안보이네? 없나? 없나? 설마 없나? 정말 없나? 자전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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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자전거 세워놨던 자리

덴마크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
eurojournal@eknews.net

충남 도민들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안 희정 지사를 만나서....


충남 도민들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 안 희정 지사를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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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참여정부시절,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우광재 좌희정'이라 불렸고, 노 전대통령으로 부터 '부하가 아니라 정치적 동료'라고까지 평가받는 등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안희정 충청남도지사를 이번에 만나면서 느껴지는 것은 도백 2년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지방 분권에 대해서는 야권에서는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안 지사는 인터뷰 중에서 지방 도백으로서의 권한 행사가 도정 운영의 20% 안팎에 불과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없는 현실을 은연중에 표현함으로써, 무엇인가 답답함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꿈을 향해 달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는 1965년생으로 충남 논산시에서 태어났으며,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친노 486(4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신)그룹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는 안희정 지사는 지난 4.11 총선에서 낙동강 밸트가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문재인 대망론’이 탄력을 받지 못할 경우 김두관 경남지사와 함께 유력한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김 지사나 안 지사나 대권도전을 위해서는 도지사직을 사퇴해 도와 정든 도민등을 떠나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권 도전 발표와 함께 도지사직을 사퇴한 상황이기도 하다. 
마침 이번 주에 매일경제 신문에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인터뷰(본지 4 면)가 게재되어, 정치적인 내용은 이 전 지사와 일맥상통할 것으로 판단하고 또한, 현직 도지사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유로저널에서는 안 지사에게는 정치적인 질문보다는 충청남도의 도백으로서의 입장과 도정에 대한 질문으로 제한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유로저널: 충청남도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주십시오. 

안 지사: 우리 충남은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동과 서로 내륙과 해안을 연계하고 있으며, 사통팔달로 연결된 교통망으로 인해 전국 어디서나 2시간대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백제문화와 호국충절의 중심지이자 국난극복의 충신열사와 선비정신이 도민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자부심 높은 고장입니다. 그런가 하면 충남은 전통농업도이면서도 최근에는 반도체, 전자·정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도청이전 신도시 건설로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환 서해안권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 2012년 도정운영 방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안 지사 : 금년도는 국가적으로 총선(4월)과 대선(12월) 실시되고 우리 충남에서는 당진시 탄생(1월) 및 세종시 출범(7월)과 도청이전(12월) 등으로 지역은 물론 국가의 균형발전을 촉진해나갈 매우 소중한 시기입니다. 
반면에, 주변상황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 등으로 국내외 경기 불안 지속, 지역간.주민간.세대간 양극화로 대립과 갈등 심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미래 성장동력 확보 한계 그리고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불안 우려 등으로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내년도 민선5기 도정은 대화와 소통, 공정과 투명, 참여와 창의, 견제와 균형을 토대로 도민화합과 지역안정을 꾀하면서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을 구현하도록 노력하겠다. 
특히, 2012년도를 도정 혁신의 원년으로 삼아 각 분야에 걸쳐 혁신 마인드를 불어넣는 한편 일하는 방식 개선 등으로 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등 전국에서 가장 좋은 지방정부를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유로저널: 3농 혁신이 충남도정의 제1 과제다. 3농 혁신을 유로저널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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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사 :한 마디로 정리하면 농어업인 농어촌이 잘 살자는 운동입니다. 잘살기 위해서는 국민들과 합의해서 국가적인 농업보조정책에 대한 총 정리가 필요합니다. 즉, 농민은 마음 놓고 생산을 하고, 판매는 각 농협과 정부조직, 우리 도시의 소비자들이 함께 판매를 책임져 주며, - 이것을 전제로 해서 우리가 지금 친환경 농수축산물 품질혁신 작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친환경 육성을 위한 친환경 농축수산업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첫 번째 방향으로 삼고 있고, 두 번째로는 이렇게 생산되어지는 농축수산물들이 지역에서 순환되어지는 순환식품 체계를 가져야 합니다. 멀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까지 가고 많은 유통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충남에서 생산한 걸 충남에서 소비하는 그런 유통구조의 혁신과정이 필요합니다. 
농어업 농어촌 문제가 좀 더 잘살기 위한 작업, 품질혁신 유통혁신 그리고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결하는 새로운 소비혁신, 이런 운동을 통해서 농어업에 농어촌에 새로운 내일을 개척하자는 운동입니다. 

유로저널: 지방분권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지방분권을 효과적으로 실현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안 지사: 자치발전을 위한 지방정부의 정책개발능력 제고와 함께 중앙과 道, 道와 시.군간 역할의 재정립을 통해 지방자치의 선진화 구현입니다. 중앙과 道의 관계는 국가 권한의 지방이양을 촉진하고, 지방정부의 정부정책 평가제도 도입 및 국정운영에 참여 등을 통해 정부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또한, 道와 시군의 관계는 道와 시군간 자치사무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읍.면.동 근린생활 단위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생활자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일본 정내회(주민자치회)는 교통.쓰레기 문제 등 지역현안을 협의하여 해결하고 있으며,미국 또한 주민자치조직을 통해 역시 주차공간, 주류 영업시간 등 자율결정 하는 등 지역 주민 생활문제를 해결합니다. 

유로저널: 도청이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도청 이전 신도시 건설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 

안 지사 : 내포신도시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3년간 약 2조원의 사업비를 들여 인구 10만명이 살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특히, 내포신도시는 그동안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을 도내지역으로 이전하는 단순한 토목사업이 아니라, 도청을 도내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계기로 충남 16개 시군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環(환)황해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현재 신도시 건설상황의 경우는 계획된 공정대로 정상적으로 추진이 되고 있습니다. 행정타운의 중심인 도청사는 지상 7층 지하 2층 규모로 골조공사는 금년 초에 이미 완료했고 현재 내부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6월말까지 완료하고 5개월간 시범가동을 거친 후에 12월에 도청을 현지로 완전 이전할 계획입니다. 

유로저널: 단순히 청사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 시대’ 를 열기위한 복안이 있으신지요 ? 

안 지사: 앞으로 1년 뒤에는 도청이 내포신도시 이전을 계기로 충남의 새로운 중심, 환 황해권의 성장거점 도시로 조성됩니다. 대전광역시 분리이후 23년만에 도민의 품안으로 돌아와 새로운 충남의 시작과 함께 광역행정의 중추기능이 내포지역으로 전환되면서 도민의 자긍심 및 생활권 형성에도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각종 문화, 의료, 교육, 행정, 교통기능이 통합적 지원되는 거점도시로 부상되면서 세종시, 천안·아산시와 트라이앵글 구조를 형성 충남의 성장발전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행정타운 도청사, 교육청사, 경찰청사 등 3개 청사 동시이전을 위한 조성공사 등이 계획대로 정상 추진 중인 데다가 유관기관 및 단체들 121개중 102개소가 이전 확정을 결정했습니다. 
또한, 각종 도시기반 시설의 완비로 초기 입주민을 위한 정주여건 조성에 박차를 가해 공동주택 3,000호 건립, 유치원, 초.중학교 각각 1개교가 설립되고 교통시설, 하수처리장, 집단에너지 공급시설 등도 정상적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내포신도시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충남의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중심도시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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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안 지사께서 왕도와 문화의 중심지 충청남도와 함께 3 농 혁신,행정 혁신, 새 도청에서 꽃 필 새시대 등 민선 5 기의 웅대한 계획들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바쁘신 도정 가운데 장 시간 인터뷰를 통해 재유럽 한인들을 위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유럽에 거주하는 재유럽 한인들을 위해 간단한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 지사: 재유럽 한인 동포 여러분,유로저널 독자 여러분 ! 안녕하세요. 충청남도지사 안희정입니다. 
외국에서의 생활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십니까? 낯선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괴리감도 컷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생활하시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고국에 있는 저희들 또한 부끄럽지 않게 좀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아시겠지만, 올해 우리나라는 큰 행사가 있습니다. 총선은 이미 치렀고 12월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갈등과 반목보다는 아름다운 조화의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충남 또한 그동안 대전에 있던 도 청사 시대를 마감하고 홍성과 예산 경계의 내포시로 이전합니다. 
새로운 충남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성원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비록 지면으로나마 여러분을 뵙게 되어 반가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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