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칼럼을 쓰는 입장

제가 칼럼을 쓰는 입장에 관하여 두어 번 독자 여러 분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보통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되는 책(학자의 저서, 고전, 경전 등)이나
학자나 성직자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칼럼의 내용에 나의 경험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사실이 아닌 자기 나름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허상에 불과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러한 경지의 존재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두 번째는 아는 것을 말하는가, 된 것을 말하는가 라는 칼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말과 글은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되어 말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면서 얻어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문헌을 참고하고 요즘은 인터넷을 뒤져서 그것을 토대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경지만큼의 칼럼을 썼습니다.

 또한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책에서, 세상의 귀감(龜鑑)이 되는 사람에게서, 신앙이나
수양(修養)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은연 중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면 그냥
그렇게 삽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얼마든지, 그리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어떠한
말보다도 진실되고 차원 높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하여도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서 칼럼 쓰기를 제의 받고는 자신이 없어 두 달여를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써보겠다고
하였더니 한번 시작하면 일년은 써야 된다는 말에 또 망설이는 나를 보더니 최소한 여섯 달은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되든 한번 써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아홉 해째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주제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꺼내어 자판을
두들기면 됩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정도 그러한 경지가 되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주제가 떠오르지만 그때그때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저의 칼럼은 허상의 마음세상에서 참 세상에 한 발짝 내디딘 입장에서 참 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고 좋은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하시어 다 함께 참의 존재가 되어 하나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기를 거슬러 훑어보는 유로 건축 20선 마치 물결치듯 보이는 테네리페 아트 센터(15)

2008년 스페인 테네리페 (Tenerife)섬에 지어진 TEA (Tenerife Espacio de las Artes) 라는
아트 센터는 런던의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헤르족 드 뮤론 (Herzog De Meuron) 에
의해 장장 20년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다. 말이 20년이지 빠르게는10년이면 도시 하나쯤이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는 요즘 감히 갤러리 프로젝트 하나로 20년이라.. 솔직히 지긋지긋했겠다는 동정심까지 든다.


espacio artes exterior.jpg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었던 1999년 당시만 해도 헤르족 드 뮤론은 스킨 디자인을 그 어떤 디자인요소
보다도 중요시 여긴 때였다. 테네리페 아트 센터 파사드는 바다의 물결 이미지를 컴퓨터의 픽셀 작업을
통해 만들어 냈다. 무심코 그려진 듯 보이는 수도 없이 천공된 콘크리트벽 부분 부분에 고정 유리 창문을
설치해서 뻘건 대낮엔 유리 창문들이 빛에 반사되며 그리고 밤엔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조명 빛에 찰랑찰랑
물결 치듯 보인다. 이들 창문의 수는 1200개나 되고 720개의 다른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센터 대지가
바란코 (Barranco)강에 면하고 있고 그 강은 바다에 이르는 자연 순리를 생각한다면 입면 디자인의 의도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espacio artes interior.jpg


삼각형으로 각진 지붕 모양과 천정은 주변 풍경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갤러리가 "사회적
경관" (Social Landscape)을 자극하기를 바라는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센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방 어디에서든 진입이 가능한데 이런 배려도 아마 사회적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위한 조치일 것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출입이 가능하다는 말은 자칫 교차로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목표가 정말 모든 이들을 위한 "Crossroad" 혹은 잠시 들러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spacio artes inteiror2.jpg

두 개 층으로 구성된 전체 면적 20000m2 은 각각 현지 출신인 초현실주의아티스트 오스카르 도밍게즈
(Oscar Dominguez)의 이름을 딴 아트 갤러리, 사진 촬영 센터 그리고 공공 도서관으로 나뉜다.



tenerife.jpg


전체 건물의 형태를 결정짓는 데는 뜰 혹은 중정이 큰 역할을 했다. 도서관의 독서열람실을 관통하는 퍼블릭
광장의 전체 벽면은 유리로 처리해 안과 밖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실내에 충분한 빛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가늘고 긴 중정들이 만들어 내는 조망과 빛은 건물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테네리페
센터의 중정들은 주변의 이웃 건물들과의 연계성도 고려해 디자인되었다. 예를 들어 전에는 병원이었다
자연사박물관으로 바뀐 옆 건물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고려해 건물측면에도 삼각형으로 긴 중정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런 가늘고 긴 중정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건물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나누어 졌고
그래서 두절된 동선을 다시 부드럽게 잇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는 걱정도 앞선다.
처음부터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어우러지는 "사회적 경관"으로서의 공공 시설을 목표로 했고
또 도시의 옛 것과 현대 도시의 새로운 문화공간을 부드럽게 연계시키려는 그들의 실험이 그래서 부디
성공했기를 기원한다. 

박치원
RIBA, ARB (영국 왕립 건축사)
SMAL AND PARTNERS 대표
뉴카슬 대학 건축 디자인 디플로마튜터
www.smalandpartners.com
cpark@smalandpartners.com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요16:13

성령의 권능은 우리의 생활에 3가지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죄로 막힌 하나님과 관계를
치유하고 이웃과 관계를 치유한다. 그리고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이러한 권능으로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 믿게 함으로 치유하여 회복하신다. 성령의 권능의 나타남에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떤 믿음을 통해서 나타날까?

첫째 성경을 기반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이어야 한다.

바른 신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성령의 인도를 믿어야 한다. 성경만을 고집하며 성령을
무시하거나 성경 없는 성령의 인도만을 주장한다면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 없이 말씀만을
외치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에 실패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사두개인들은 어떤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 성경도 모른다고 책망을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없이
말씀만 붙잡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말씀 없이 성령만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듯이 성령없이 말씀
만을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은 말씀의 기초 위에 성령의 인도를 믿는 신앙이다.

둘째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구현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과 구원 이후에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신다. 또 구원얻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신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성령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뵙자
말자 거룩해지기 시작했다. 모세가 온 지면에 있는 사람보다 온유한 자가 된 것도 온유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을 던지는 백성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의 고민은 행하는 신앙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으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이 되게 하신다.

셋째. 육신을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 경은 육신을 좇으면 망한다며 엄하게 경고한다. 육신은 타락한 죄악의 성품으로 마귀를 좇아 스스로를
도적질하고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한 때 선을 원하는데 자기 안에 다른 것이 자신이 미워하는 악을
행하게 한다고 탄식하였다.(롬7:15, 롬7:21-23) 바울은 악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육신이고 이 육신은
성령을 좇을 때에 이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갈5:16-17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른 믿음은 육신을 이기기 위해서
금식하고, 결심하는 것보다 성령을 좇는 것을 따르는 신앙이다.

결론

성령의 권능은 믿음을 통로로 나타나 개인,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성령이 권능을
나타나기 원하는 자마다 자신의 믿음이 바른 믿음인가를 살펴야 한다.

1. 당신의 믿음은 말씀을 기초하여 성령께 인도하심을 믿는 신앙인가?

2.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생활 속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인가?

3. 당신은 성령을 좇아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신앙인가?

우리 교회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