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영국...유로존 위기 때 유럽연합 잔류 묻는 국민투표 의원들 제기

 영국, 유로존 회원국이 아니지만 ‘재정통합’ 필요성 역설하는 모순된 입장

‘세계 문명의 요람 로마가 (경제위기 때문에) 불타고 있는데 영국은 오히려 잘됐다며 
유럽연합(EU)과 재협상을 벌여 불리한 정책을 EU에서 빼앗아오고 EU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도 실행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정말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인가’
영국 내 집권여당인 보수당 내에서 EU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로존(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단일화폐 유로를 
채택한 17개 EU 회원국)회원국들이 영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유럽통합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EU 탈퇴에 따른 손실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당의 
이런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하다. 영국 보수당은 또 다시 유럽문제로 내전을 
치르려는 것인가?

“EU 잔류가 영국의 국익”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0월 29일자 기사에서 분석했듯이 영국은 EU 회원국으로 

잔류하는 것이 국익이다. 잔류 때의 이득이 탈퇴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손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 무역(수출과 수입)의 49%가 EU 회원국들과 이루어지고 있다. 또 EU 

회원국인 영국은 단일시장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 RBS나 HSBC 등 많은 영국의 금융
기관들이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EU 회원국에서 영업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EU 회원국에서 탈퇴할 경우 이런 이점이 없어진다. 즉 영국이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EU에서 탈퇴하면 EU회원국에 수출할 때 관세를 물어야 한다. 
현재는 회원국이기 때문에 관세가 전혀 없다. 당연히 영국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 조건이나 근무시간 등의 규정은 유럽연합 회원국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예컨대 주당 40시간 근무, 야간 근무자의 순환 근무 등 근로자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공동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은 이런 유럽의 사회
정책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내세우는 자신의 경제철학과 맞지 않다며 자주 불쾌감을 
표시해왔다. 

보수당 내 일부 평의원들(backbenchers)들이 EU 회원국 탈퇴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런 정책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영국이 EU에서 탈퇴해 
고용주들이 이런 정책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해도 정부가 유사한 규제를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근로자들의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점차 생산성을 높이는 유인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으로도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면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영국이 EU의 주요 4대회원국(‘빅4’-독, 
프,영, 이탈리아)의 하나로 유럽통합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미국의 EU정책 
수행에서 꼭 필요할 때 도와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영국이 만약에 EU에서 탈퇴한다면 미국은 최소한 EU문제에서 영국을 배제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EU 최대의 경제대국이면서 이번 유로존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과 관계를 강화해 왔다.
이밖에 자유무역과 시장을 강조하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EU는 프랑스가 선호하는 

식으로 국가개입 성격이 강하고 조합주의적 성격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나 파이낸셜타임스(FT) 모두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필자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일도 경제정책의 경우 자유무역을 강조한다.
다만 국가의 역할을 선한 목자로 여겨 공정 경쟁 질서 확립을 위한 큰 틀을 정해준다. 

핀란드나 네덜란드도 자유무역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어 영국이 탈퇴한다고 
EU가 프랑스식의 경제운영을 변모하리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다.

비회원국이 ‘재정통합’ 강화 역설하는 모순

영국은 단일화폐 유로를 채택하지 않고 파운드화를 계속 쓰고 있다. 따라서 유로존의 

위기해결책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구제금융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데이비드 캐머론 총리나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로존 위기 
해결책으로 재정통합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역설해왔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등의 재정정책은 아직도 회원국 고유의 권한이다. 회원국들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대비 3%를 넘으면 벌칙을 부과하는 안정성장협약(SGP)은
사후에만 발동되지만 그나마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정책 권한을 유럽차원으로 이양해 통합을 강화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흔히 거론되는 유로존의 단일 채권 유로본드가 재정통합의 한 예다.
그러나 보수당 내 81명의 의원들이 지난달 24일 캐머런 총리의 지시를 무시하고 EU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의회 동의안(이 안에는 EU에서의 즉각적인 탈퇴, 
재협상, 잔류 등 3가지 의견을 문의했다)을 지지했다. 비록 동의안은 의회에서 부결
되었지만 이 일로 총리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자당 의원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총리가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에 가서 EU의 위기 극복책에 대해 친구로서 
이야기해준다면 과연 다른 회원국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가 지난달 27일 유럽이사회에서 서로 핏대를 높이며 언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990년 11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존 메이저(John 

Major)는 집권 내내 자당 내 유럽통합을 결사 반대하는 의원들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보수당이 또 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으려 하나?
보수당 의원들이 상식을 되찾아 자국의 국익 차원에서 신중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해본다.


관계회복의 열쇠 히10:19-25

관계회복의 열쇠 히10:19-25


대인관계는 신앙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써 신앙은 물론이고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대인관계의
원리를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첫째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또 관계를 잘 맺으려고
시도하지만 더 큰 상처만 주고받는 경험들도 있다. 사람으로 할 수 없을 때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라. 1. 관계의 문이 열린다. 2. 남의 탓 만하는 사람도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한다.
3. 원수를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둘째 내적 상처를 치유하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사랑 받으며 살 존재로 태어난다. 그래서 충분하게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나쁜 경험이나 죄를 통해서도 상처를 받는다. 받은 내적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이것은 마음과 기억, 감정에 쌓여 관계를 깨는 장애물이 된다. 또 내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영적 성숙도 막는다.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를 갖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어 나쁜 자화상과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용서와 회개를 통해 심령 속에 쌓여 있는 영적 쓰레기를 제거하여 그리스도 안의 온전한 자로
서기를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어떻게 내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1. 예수 그리스도 피를 의지하라.
)히10:19(  2.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확신하라. 3. 인내하라.)약1:4( 4. 참된 통회와 겸손의 마음
)사57:15하반절, 시34:18, 약5:16(


셋째, 관계를 위해 헌신하라.


인간관계에 승리하기 위한 근거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외적. 내적 질병을
치유하고 죄를 사하신 것을 믿고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근거 위에서 인간 관계에 승리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1. 사람은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차이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단지 너하고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2. 주 안에서 만남은 동역자임을 신뢰하라.
    경쟁자로 여길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일정한 벽을 쌓고 대화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결고 바른 인간관계가 세워지기 어렵다.


3. 칭찬과 격려자가 되기를 힘스라.
    경솔한 말 한디로 원수가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 잘해서 평생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랑과 선행의

    격려는 인간관계를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다.
    히10: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결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의 관계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인은 관계의
승리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관계의 승리자로서 삶의 승리자 신앙의
승리자의 삶을 살아야한다.

관계의 승리자의 삶을 위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

첫째 하나님께 나가라.
둘째 내적 상처를 치유하라.
셋째 관계회복을 위해 헌신하라.


옥스포드를 ‘또’ 다녀와서

한창 언론 공부를 하던 유학생 시절, 유로저널에 서른 즈음에를 쓰기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가량이 지난 2007
2월에 옥스포드를 다녀와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옥스포드 대학 한인 학생회에서 매년
2월 한국의 구정을 기념하여 외국인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당시
내가 활동하는 가야금
& 기타 듀엣 KAYA가 연주 초청을 받아서 난생 처음으로 옥스포드를 다녀온 뒤에 느꼈던 것
들을 쓴 글이었다
.
영국 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옥스포드에서 열심히 학업 중인 우리 한국인 학생들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함
, 그들이 훗날 우리나라에 우수한 성과를 가져다 줄 것에 대한 기대 등을 글에 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옥스포드 대학과의 인연은 그 다음해인 2008, 2009년에도 이어졌다. 연이어서 같은 행사에
초청되어 연주를 했던 것이다
.
몇 년씩 같은 행사에서 연주를 하다 보니 옥스포드 한인 학생회 임원들의 세대교체
(?)도 목격할 수 있었다. 가령,
전년도에는 단순히 임원이었던 친구가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고
, 또 나는 그들을 인터뷰해서 유로저널에 실어주기도
했다
.
재미있는 일은 2009년도 당시 인터뷰를 했던 옥스포드 한인 학생회장 조한빛 군이 한국의 유명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사실
.
얼마 전에 인터뷰를 작성했던 노세현 상담가 역시 그 당시 행사에서 사회를 봤었고
, 그 때의 인연이 남아서 이번에
인터뷰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
2009년도 행사 이후 2010년도에는 옥스포드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고, 한 동안 옥스포드 한인 학생회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
그러다가 얼마 전 또 다시 옥스포드 한인 학생회에서 연주 요청이 왔고
, 지난 번 옥스포드에서의 연주가 2009
2월이었으니, 거의 3년 만에 옥스포드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오랜만에 방문한 탓인지, 이제는 아는 얼굴도 전혀 없고, 무엇보다 지금 옥스포드 학부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
, 심지어 영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학생들도 너무 앳되어 보였다.
그랬다
, 어느덧 대학생들이 내 눈에 어려 보일 만큼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눈에 나는 늙어 보일 만큼)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
처음 옥스포드를 방문했던 2007년도의 경우,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당시 학생회장 최재호 군만 해도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고
, 같이 어울려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동생뻘이었는데, 이제는 갓 20
초반인 옥스포드 학부생들과 내 나이차가 열 살이 넘어버린 것이다
.
2007년도 행사 때는 나 역시 비록 석사 과정이지만, 어쨌든 학생 신분이었지만, 이제 나는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도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
2007년도 행사 때는 연주를 마치고 이어진 제기차기 대회에서 나도 참여해서 같이 제기도 차고 그들과 어울려
놀 수
(?) 있었는데, 이번 행사에서 나는 인사말을 하면서 내가 런던 시티에서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으니, 아마
여러분들이 졸업하면 나를
(구직자와 헤드헌터 간 만남으로)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KAYA의 단골 레퍼토리인 비틀즈의 ‘Let it be’를 연주하면서, 비록 그들은 큰 박수를 보내주었지만, 문득 이제
20대 초반인 그들 중 어쩌면 ‘Let it be’를 모르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어쩌면 ‘Let it
be’는 이제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기에는 그야말로 너무 올드한 음악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
연주를 하면서 문득 문득 바라본 그들은 이제 나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젊음과 그들의 꿈을 마음껏 그려볼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미래를 갖고 있었다
.
나도 그랬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것일까...
아마 지금 내 글을 읽고 계실 나보다 더 연배가 높은 인생 선배들을 또 이런 나를 보면서 그나마 나의 젊음
(?)
부러우시겠지
...
연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컴퓨터에 저장된 옥스포드에서 찍은 지난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
2007 2월에 찍은 사진 속의 내 모습은 당시 제법 머리를 많이 길러 뒷머리가 치렁치렁하며, 지금보다 훨씬
날씬하고
, 또 지금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어떻게 보면 당시만 해도 유학을 마친 이후의 인생에 대해 참 고민했던 시절이었고, 불확실한 미래가 너무나
두려웠던 시절이었으며
, 기타 레슨과 글쓰기로 버는 돈으로 절약해가며 겨우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이제 나는 런던에서 직장을 다니며, 2007년에 비해서 훨씬 많은 돈을 벌고
그 만큼의 여유도 누리고 있다
.
하지만
, 세상살이는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어려워진 느낌이다. 가슴이 아픈 일도 그 때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 그 모든 아픔들과 고단한 세상살이를 잊기 위해 오늘도 난 내가 퉁기는 기타의 울림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