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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일 수요일
독일 : 전 북한정보요원 김정률의 고백서「독재자를 고발한다」충격!
전 북한정보요원 김정률의 고백서「독재자를 고발한다」 충격!
독한협회 NRW 지회 신년상견례와 심포지움 열어
독한협회 NRW 지회가 새해를 맞아 지난 23일(일) 본(Bonn)의 구스타프 하이네만 하우스에서 신년하례식과 함께 북한문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신년인사에 나선 김의택 본분관 총영사는 “45년 전에 창설된 독한협회가 그 동안 문화교류와 친목활동을 통해 양국간 친선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치하하는 한편, “한국과 독일이 수교한지 127년이 경과한 지금 독일은 통일을 일구었지만 아직도 분단상태에 있는 한국은 여전히 통일에 관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독일의 사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총영사는 끝으로 독한협회 회원들과 참석자들을 향해 “토끼처럼 영리하게 좋은 한 해를 이끌어 갈 것”을 기원하고 협회의 발전과 그간의활동에 감사를 표했다.
이번에 열린 심포지엄은 “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북한” 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최근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폭 등 일련의 사건들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한반도였던 만큼 독일인들은 이번 주제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심포지엄은 시종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먼저 「독재자를 고발한다」(Im Dienste des Diktators)의 저자 잉그리트 슈타이너-가쉬가 김정률씨에 대해서 청중에게 소개했다. 김씨가 아쉽게도 건강 문제로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저자는 김씨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밝히면서 그의 고백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설명했다.
김정률, 그는1974년부터 20여 년간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 소비재와 무기들을 조달하는 등 김일성 부자를 위해 손과 발이 되었던 전 북한정보요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북한 체제에서 탈출, 잠적 15년 만에 세상으로 나와 북한의 진실을 폭로했다. 김정률은 동독 유학생 출신의 북한 엘리트로서 오스트리아 빈을 거점 삼아 유럽 전역에서 김일성 부자의 사치품과 군수 물자를 조달했으며, 1994년 북한 체제로부터의 탈출을 결심하고 슬로바키아에서 잠적했다. 북한 주민들의 피폐한 일상과 대비된 권력층의 향락에 환멸을 느낀 그는 오스트리아 기자의 손을 빌어 밝힌 뒤늦은 고백서『독재자를 고발한다!』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로얄 패밀리의 삶과 숨겨진 비화들을 거침없이 토해내었다.
김정률의 증언을 토대로 책을 쓴 잉그리트 슈타이너 가쉬와 다르단 가쉬는 김정률과 벌인 수차례의 깊이 있는 인터뷰와 각종 자료, 북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잉그리트 슈타이너-가쉬는 북한 입국을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서방기자로서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며 일간지 ‘Kurier’의 국제 정세 편집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책에서 김정률은 김일성의 사망을 계기로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것으로 예상해 북한체제로부터의 탈주를 감행, 15년을 숨어 살아왔으나 북한정권은 여전히 변화의 조짐도 없이 과거 자신이 해오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판단, 이같은 잘못된 사회를 죽기전에 고발하겠다는 결심했다며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지도 모를 생명의 위험에도 두렵지 않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저자 또한 김정률의 고백을 통해 폐쇄된 사회 북한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참석자들은 비밀기관 요원인 김씨에게 부여된 가공할 업무들을 들으며 충격과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영화같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한 인간의 처절한 삶과 양심선언, 그리고 북한국민들의 참혹한 실상, 권력의 최고자리를 누리는 자들의 호화판 생활을 듣는 청중은 한편으로는 연민을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특히 강연에 이어진 DVD 시청시간에 탈북 시인 장진성의 시 「내 딸을 100원에 판매한다」가 소개됐을 때 독일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북한사람들의 삶에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음은 독일인들의 반응이다:
“뼈만 남아있는 시체와 다름없는 북한백성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쳤다”, “가난 때문에 자기 딸을 100원에 팔아야 할 정도라면 인권은 완전히 박탈 당했을 터,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생명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북한의 공개처형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이다”, “음식이 풍부한 21세기에 식량이 부족해서 어린이들을 기아상태로 죽어가게 하다니…”, “정권유지를 위한 거미줄식 통제체제는 기본권이 유린당한 북한백성들의 거대한 감옥이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정보통제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든단 말인가”
이어서 도이치 벨레(DW)의 Silke Ballweg 기자의 진행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연사는 오스트리아 빈대학 Sabine Burghart 교수, 베를린 자유대학 Holmer Brochlos 교수, 전 주한독일대사 Michael Geier 등이 참여했다 . 이날 토론에서 언급된 북한관련 비판적 발언들은 거의 모두 사실에 근거했다.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북한 식량부족의 원인은 현재 북한이 시행하고 있는 계획경제체제의 모순과 기후의 영향 등에 의해서 비롯됐고, 북한은 현재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이념무장을 통해 지탱해 나가고 있다. 또한 북한은 천연자원, 공구류, 무기 및 마약 밀매 등을 통해 어려운 재정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놀라운 일은 독일을 비롯한 해외주재 북한대사관들이 평양의 재정지원 없이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핵실험, 작년에 있었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습격 등의 참담한 사건들은 아마도 북한이 수차례 시도해왔던 협박과 화해, 협력제의와 협박이라는 순환 사이클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특히 Brochlos교수는 1970년 방문했던 당시 평양과 현재의 북한을 비교하면서 “1970 년대 평양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면서 평양은 하나의 섬”이라고 주장했다 . “처음 평양에 들어서면 아주 좋은 인상을 주는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라고 느껴지겠지만 몆 시간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이 위장된 가짜 도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리가 깨끗한 것은 고위층만이 차를 보유할수 있고, 이로 인해 차량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체류하는 동안 평양에서 딱 한번 교통정체를 겪었는데, “당시 평양에 하나 밖에 없는 신호등이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해서 다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서있어야 했다”고 밝혔다.
또 빈 대학에서 온 Burghart 교수는 “북한 주민의 20% 정도만 잘먹고 지내며 평양을 벗어나 외곽지역으로 나가면 도처에서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들의 모습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 자유시장이라는 경제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일정한 효과를 보자 북한 정권은 오히려 겁을 먹고 이내 다시 이를 금지시키고 말았다. 이후 다시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또 자유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시장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예를 들어 사과나 바나나 3개를 놓고 하루종일 서있어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즉 바나나 하나조차 팔리지 않는 구매력이 상실된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Geier 전 주한독일대사는 "북한이 2010년에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무력공격을 저지른 것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구축하는 한편, 북한주민들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탈북자의 경우 1970 – 80년도에는 주로 북한의 고위층들이었으나, 1990-2000 년대에는 민간인들인데 이중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들의 숫자가 더 많다.", "북한은 미국에 평화조약 체결을 요구하면서 북한의 핵 보유 용인, 주한미군철수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을 거듭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전적으로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북한의 전형적인 챗바퀴 돌기식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Bochlos 교수는 "한국의 통일을 전망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정신적인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북한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힘들고 한민족이라는 느낌을 갖기에는 그동안 서로가 너무 격리되어 있어서 통일을 하기까지 심리적인 세대차이의 문제점도 따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
안순경 독한협회 NRW 지회장은 이날 “독일인들이 두 시간여에 걸친 토론과 질의응답 등 심포지엄을 통해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뜻있는 행사에 초대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전하면서 “이번행사를 주최하며 우리가 북한에 대해 많이 알아야 언제든 통일이 될 때 조금은 쉽게 통일시대를 이끌어갈수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명감이 커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로저널 프랑크푸르트 김운경
woonkk@hotmail.com
독일 :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독일지회 초대임원 상견례 및 연석회의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독일지회 초대임원 상견례 겸 연석회의
지난 1월 29일 오후 1시, 에쎈에 소재한 파독광부기념회관 및 재독한인문화회관에서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독일지회(지회장 권영목) 초대임원 상견례 겸 연석회의가 열렸다.
유상근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회의는 권영목 지회장의 개회선언과 국민의례 후 '향군의 다짐'을 홍윤표 독일지회 이사가 낭독했다.
권영목 독일지회장은 인사에서 상견례 겸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초대임원으로 선임된 여러분들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독일지회가 바른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 조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영목 지회장은 독일지회는 본부의 정관에 근거하여 일하며 지회가 별도의 정관이나 운영규정을 갖지 않음으로써 일관성 있는 재향군인회 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음을 알렸다.
이어 향군 모임의 의미와 회원의 구분, 회원증에 관한 사항, 향후 활동방향과 주요사업을 설명하였다.
격려사에 나선 주독대사관 김태식 국방무관은 재향군인회 독일지회 창설 후 처음 갖는 상견례에 오신 분들께 '새해 인사를 대신 전해드리라는 문태영 대사님의 부탁을 받았다'며 문 대사의 안부를 전했다.
김태식 국방무관은 독일에 국방무관으로 근무한지는 1년 반밖에 되지 않았으나, 오래전에 개인적 인연으로 두이스부륵 지하광산에 들어갔다 나와 검은 빵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독일지회가 재향군인회 해외지부로서는 물론, 독일 내 많은 한인단체가운데에서도 으뜸가는 모범단체로서 독일지회 발전을 빌며 국방무관으로서 도울 수 있는 모든 협조를 다 하겠다고 했다.
이어 유상근 사무총장은 내빈과 임원소개를 하고, 각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상근 사무총장은 주요업무보고를, 이정하 재무위원은 재정보고를 하였다.
이 날 상견례 및 연석회의에는 주독대사관 본분관 안창훈 서기관, 국방무관부 최은욱 연구관, 북부유럽민주평통유럽북부협의회 서성빈회장,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고창원회장, 재독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이승직회장, 재독해병전우회 강승창 부회장 등 약 40명의 독일지회 초대임원들이 참석하였다.
회의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뷔페로 준비된 식사를 하며 재향군인회 독일지회의 정체성 정립과 지회발전에 따른 의견을 나누었다.
독일지회는 2011년 주요사업으로 안보세미나, 안보체육대회와 안보건강세미나를 계획하고 있다.
독일 유로저널 오애순 기자
mt.1991@hotmail.com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독일 : 도르트문트 한인회 설 잔치 및 창립 40주년 기념행사-동영상 보며 40년 세월 회상
도르트문트 한인회 설 잔치 및 창립 40주년 기념행사-동영상 보며 40년 세월 회상
2011년1월29일 도르트문트 한인회(회장 최월아)는 창립 40주년 기념 및 설 잔치를 쾨테 고등학교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한복을 입은 남자, 여자 임원들의 의상에서 설날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책상 위에는 내빈석, 자문위원석, 전임 회장석 등의 안내글이 세워져 있었으며 기자석까지도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 배정되어 있어서 최월아 회장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6시20분경 약 250석의 자리가 꽉 찬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었다.
개회사에 이어 국민의례 순서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경례 시간에는 먼저 가신 전직회장(고 김재택, 고 김병옥, 고 미승일)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들의 명복을 빌고 하늘에서도 행사에 함께 하여 축하해 줄거라 믿었다.
최월아 회장은 환영인사에서 원근지역에서 오늘 행사를 축복해 주기 위해 참석해 주신 내빈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손님들이 많이 와 줄까, 뭔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시작 20분이 지난 지금 자리가 꽉 찬 것을 보니 감동했다. 또 선물 포장 하나에도 신경을 썼는데 포장지도 한국에서 공수해 왔다. 이 행사를 위해 경제적, 시간적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임원들께 깊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관객에선 박수로 수고한 이들을 격려했다.
그는 또 많이 신경 쓰고 준비했지만 혹 부족한 것이 있다면 참석자들이 채워줄 것을 부탁하며 손님과 주인이 아닌, 이곳에 참석한 모두가 주인이라며 만족하고 흐뭇한 저녁이 되길 원했다. 오늘저녁 이곳에 온 것이 후회 없는 밤이길 희망하면서 2011년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했다.
재독한인총연합회 최병호 회장의 환영인사는 정용선 수석부회장이 대신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도르트문트 창립40주년을 축하하고, 재독한인총연합회는 새해를 맞아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벌써 다음주 2월3일 구정 날에 있을 <제1회 재독한인가요제>에 많은 참석이 있길 희망하고, 3월에는 3.1절 기념 웅변대회, 8.15 광복절 행사 등을 알리고 전 교민이 동참해 주길 희망했다.
주독일 대사관 본분관 김의택 총영사의 축사는 임승철 서기관이 대독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도르트문트 한인회의 역사는 재독동포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0년대 독일에 오신 광부, 간호사들이 주축이 된 우리 동포사회는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앞으로도 도르트문트 한인회가 구심점이 되어 동포사회의 발전과 번영, 동포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며 즐거운 축제의 시간이 되길 원했다.
이어서 도르트문트 시(市) Sierau 시장의 축사는 Vietor 씨가 대독했다.
지라우 시장은 뜻 깊은 도르트문트 한인회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됨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독일의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그는 또 본인은 “‘독일은 새로운 것을 발명한다’ 는 것에 확신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발명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함께해야 한다”고도 했다. 3월15일 세계화 회담에 참석하여 여러분들의 성공에 대한 처방전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며 오늘밤 여러분들에게 행운을 함께 하길 빌었다.
주독일 대사관 표창장 증정이 임승철 서기관으로부터 있었는데 얼마 전에 작고한 미승일 씨 미망인 한경숙 씨에게 전해졌다. 이 날 한경숙 씨는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하여 최월아 회장이 대신 받았다. 한경숙 씨는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아 주위의 귀감이 되어 임의택 총영사의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1부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도르트문트 한글학교 학생들이 나와 세배와 노래를 했다.
세배 후 전임 회장과 단체장들은 세배한 어린이들에게 세배 돈을 주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황오균 회원이 구수한 목소리로 가요 메들리를 들려 주었다.
한편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지원민간인단체 독일후원위원회에서는 김명규 씨를 비롯 강원도민들은 참석자들에게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며 이번에는 꼭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를 희망했다.
2부 순서 역시 김시균 씨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지나 45년간의 도르트문트 한인들의 추억의 사진이 동영상으로 보여졌다. 1960년대 비행기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여성과 멋진 남성, 간호사로 광부로 일하는 모습, 야외에서 고기 구워먹는 모습, 운동하는 모습 등등 1세대의 땀과 눈물, 한숨이 보여져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연혁보고는 정옥신 부회장이 했다.
공로패 증정에는 지금까지 도르트문트 한인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공이 큰 16명의 전임회장(김영택, 고 김재택, 김정환(내한), 구옥자, 황무림, 정용석, 임만구, 고 미승일, 고 김병옥, 이승민, 오민영, 조광연, 원종희, 서정숙, 최월아, 정용선) 들에게 나무로 만든 예쁜 공로패가 전달되었다.
초대 여성한인회장을 지냈던 구옥자 씨는 초창기 어려움도 많았는데 벌써 40년 이상이 지났다며 세월이 빠름을 얘기하며 항상 건강하라고 당부했다.
3부행사는 이승민 씨의 사회로 노래와 춤, 복권추첨이 진행되었다.
노우종 씨는 쎅스폰으로 개여울, 내어머니, 장녹수를 들려주고, 해바라기 합창단은 아바의 노래를 율동과 함께 불렀다.
복권추첨은 크고 작은 물건마다 예쁘게 포장이 되어 받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했는데 상마다 이름도 아름다웠다. 상차림상(맥주/와인 잔), 건강상(마사지기), 나들이상(식권), 문학상(만년필), 잔칫상(전기팬), 멋쟁이상(화장품), 아차상(비데), 가족상(밥솥), 끼니상(쌀) 등등이었으며 2011년 도문동 대상인 복주머니는 본에서 온 김옥순 씨가 받았다. 천정에 걸린 복주머니를 푸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복주머니에는 500 유로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최월아 회장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조심해서 귀가하고 건강한 2011년이 되길 바란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독일 유로저널 오애순 기자
mt.1991@hotmail.com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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