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유로저널] 유럽전체 : 방송 PD를 꿈꾸는 박성진 님과 함께





박성진

- 대학에서 방송통신 전공

- 춘천 강원민방(GTB) FD활동

- 대학 재학 중 다큐멘터리 ‘위대한 탄생’ 제작

  한국방송진흥회(KBI)전국대학생영상 페스티벌 본선진출

  국민대학교 10주년 기념 전국대학생 영상 페스티벌 대상

  KT공모전 장려상 수상

- 마운틴TV(산악 전문 케이블 채널) 제작 PD로 근무

유로저널: 언제, 어떤 계기로 인해 방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박성진: 원래 고등학교 시절에는 호텔리어 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호텔리어’ 때문이기도 하지요. (웃음) 수능을 보고나서 호텔 관련 학과들을 여럿 지원했는데 경쟁률이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 중에서 딱 한 곳은 언론정보학부를 지원했습니다. 일종의 소위 말하는 ‘안전빵’이었는데 정작 원했던 호텔 학과들은 다 탈락하고 언론정보학부 한 곳만 합격했습니다. 잠시 재수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재수는 그야말로 서울대에 가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무조건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듣다보니 이게 상당히 재미가 있더군요. 수업 과제가 뮤직 비디오 만들기, 단편영화 만들기 같은 것이었는데,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나중에는 공모전에 나가서 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엄지손가락은 최고를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른 네 손가락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일종의 왕따이기도 한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이 작품은 방학 중에도 끊임없이 작업을 할 정도로 공을 들였더랬는데, 그래서 함께 작업하던 팀원들 중 포기한 이들도 있었고, 그렇게 고생한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이 쪽으로 본격적으로 나가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케이블 채널인 마운틴 TV에서 제작 PD로 근무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박성진: 아직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산을 참 싫어했는데, 마운틴 TV가 산악 전문 채널이다 보니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산을 세 번 씩이나 찾아야 했습니다. (웃음) 그 덕분에 우리 나라의 산은 거의 다 가본 것 같습니다. 산과 관련된 행사, 산림청장님 인터뷰, 엄홍길 대장님 인터뷰도 해봤고, 산악용품 업체 취재도 있었습니다. 제가 영국에 오기 전에 해외 촬영도 계획 중에 있었는데 그 전에 그만두고 떠나와서 아쉽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근무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박성진: 케이블 방송국의 경우 아무래도 회사가 작아서 업무 분담이 확실하지 않다보니 혼자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방송이 나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거의 혼자서 다 소화해야 했습니다. 주 7일 근무를 한 셈이지요.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서 밤을 새는 경우도 많았고, 강도 높은 업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이로는 막내에 속하는데, 현장에서는 지휘를 해야 하는 PD의 역할이라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좋았던 점, 배운 점은?

박성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 산 싫어했더랬는데 일을 하면서 산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첫 30분은 힘들지만 이후부터는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고, 그 때부터는 정상을 향해 전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산악회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게 됩니다. (웃음) 산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의외로 힘(?)이 있는 분들이 많아서 좋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업무적인 면에 있어서는 일을 하면 할수록 목표의식이 생기고 애착이 생기더군요. 제가 만드는 방송을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시청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강해지고. 그리고, 일을 하면서 PD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PD는 단순히 지시하는 역할이고, 돈도 잘 벌고, 그렇게 폼(?)나는 직업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PD가 되어 일을 해보니까 PD는 엄청난 책임감에 시달리고, 끊임없는 스케줄과 약속에 정신이 없는, 그리고 생각보다 돈도 매우 적게 벌고, 정말 쉽지 않은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근무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 혹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성진: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요. 그런 만큼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간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만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딱 한 번 방송을 펑크낸 적이 있었습니다. 대형 사고를 친 셈이지요. 혼자서 밤샘 작업을 하다가 그만 졸아서 방송 전까지도 편집을 마치지 못해서 예정된 방송을 펑크내고 결국 재방송을 대체하여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국장님께서 책망을 하지 않으시고, 감사하게도 일부러 더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나마 케이블이어서 넘어갔던 것이지, 만약 지상파였으면 즉각 해고감입니다.

유로저널: 방송분야 전공자들의 졸업 후 진로는 어떠한지요? 방송국 입사를 위해서는 관련 전공이 필수라고 보시는지요?

박성진: 사실, 방송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해서 졸업 후 무조건 방송 분야로 취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배나 동기들을 보면 졸업 후 은행원이나 일반 회사원으로 가취업하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특히, 지상파 방송의 경우 굳이 방송 관련 전공이 아니어도 소위 언론고시를 통과할 경우 얼마든지 입사가 가능합니다. 물론, 지상파 방송의 경우 공채가 6차 시험까지 있으며, 심지어 술예절을 측정하는 단계도 있다고 하니 정말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언론고시를 통해 입사하는 지상파 방송과는 달리, 케이블은 오히려 입사 전부터도 카메라 기술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익히고 있어야 입사할 수 있습니다. 케이블의 경우 입사 후 당장 실무에 투입되어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로저널: 방송일의 장단점은?

박성진: 아직 제가 감히 방송일의 장단점을 논할 단계는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느끼고 경험한 한도 내에서 말씀드린다면, 일단 방송일의 장점은 자신의 생각과 꿈을 화면에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송인으로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겠지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시청자들과도 직간접적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으며, 특별히 PD는 리더의 자리입니다. 한 편의 방송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 역시 장접입니다. 반면에 단점이라면 하닌 일의 분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입니다. 정말 최정상의 극소수 인기 PD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열악한 수입구조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방송은 시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로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개인 여가 시간도 매우 부족한데, 또 술은 많이 마시게 되어서 몸도 망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지혜롭게 조율하면서 방송의 즐거움과 보람을 만끽하는 게 최선입니다.

유로저널: PD 지망생으로서 뽑은 최고의 작품은?

박성진: 일단 드라마로는 미국 드라마인 ‘로스트’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영어공부 차원에서 자막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빠져버려서 그냥 한글 자막으로 열심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 드라마는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정말 탁월합니다. 시차를 넘나들면서 등장인물 개개인의 사연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또 그것을 풀어주며 관객을 흡입합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몇 명 주인공에게만 중점을 두는데, 이 작품은 그 외 주변인물들에 대한 시선도 뛰어납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 회를 보지 않으면 못 견디도록 만드는 게 이 드라마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그램 중에서는 ‘VJ 특공대’를 뽑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VJ 개개인들이 PD없이 직접 6mm 카메라로 촬영해오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자칫 재미없는 논픽션으로 전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기법, 나레이션 등을 훌륭하게 연출하고 있으며, 특히 시청자의 시선으로, 카메라 워킹이 시청자의 시선을 따라다니는 게 탁월합니다. 또, 시청자 참여도 뛰어나서 진정 시청자와 함께 만드는 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맛집 취재에서는 해당 식당에서 음식맛을 본 일반인이 꼭 등장하는 것이지요.

유로저널: 잠시 주제를 바꿔서, 그렇게 한국에서 활동하시다가 영국에 오게 된 계기는?

박성진: 마운틴 TV 근무 시절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등록만 해놓고 거의 못 나갔지요. 그런데, 수업게 가보니 다들 영어로 잘을 말하시데 저만 잘 못하더군요. 생각해보니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한 적 없었습니다. 한 번은 가족과 태국 여행을 갔는데 제가 영어를 못해서 챙피했던 적도 있었고요. 이에 어머니께서 서른 살이 넘으면 외국에 나갈 도전 정신이 약해질 터이니 그 전에 다녀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영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토익 점수를 높이거나 하는 목적보다는 그야말로 언어로써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쓰레기도 많고, 길거리에서 담배도 많이 피우고, 또 꽁초를 길거리에 버리고. 좋은 점이라면 한국에서는 성격이 급했는데 영국에 와서 느긋해지고, 특히 영국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없는 듯 하여 마음이 참 편합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외국인들과 한국 음식 모임도 갖고, 기회만 된다면 계속 머물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PD 지망생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PD가 되고 싶으신지요?

박성진: PD가 일단 시청율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거짓된 프로가 될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방송이라는 것 자체가 연출입니다만, 그럼에도 누가 봐도 ‘저건 짰다’라는 소리를 안 듣는 PD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한 방송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제가 직접 방송을 경험하기 전에는 ‘왜 짜고하냐’ 했는데 막상 해 보니 어느 정도는 필요하더군요. (웃음) 그럼에도 최대한 자제해야 겠지요.

유로저널: 앞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박성진: 원래 저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는데, 그 전에 꼭 제대로 예산을 투자해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입니다. 흔히 다큐멘터리를 ‘인간극장’ 같은 것으로만 여기시는데, 저는 그보다는 자연의 변화, 생물의 변화를 다룬 본격적인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장기간의 작업이 요구되지만, 그만큼 완성하고 나면 기쁨도 클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하는 얘기가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돈 많은 아내를 두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 만큼 예산이 많이 필요한 게 다큐멘터리다 보니 대부분 PD들은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방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그 만큼 힘들면서 상업성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생을 좀 하더라도 야외에서 활동적인 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다운 진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방송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성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아직 누군가에게 조언을 드릴 자격은 없습니다만, 역시 제가 경험한 한도 내에서 말씀 드리자면, 막연히 방송일이 멋져 보여서 방송일을 하려는 분들께는 다시 한 번 방송에 대해 잘 알아봐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라도 경험하셔야 합니다. 방송은 단지 보여지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궂은 일도 많이 해야 하고, 그렇다고 고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방송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충분한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롭고 유익한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좋은 방송으로, 박성진 PD의 작품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유로저널] 유로저널 : 건축의 세계를 엿보다, 건축가 이상혁 님과 함께






이상혁 님은 현재 런던에서 세계적인 건축회사 Foster + Partners에서 근무 중인 몇 안 되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Foster + Partners는 영국에서는 런던 시청(London City Hall),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를 건축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담당하여 그야말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상혁 님의 이야기를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는 건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훗날 세계적인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학도들에게는 유익한 동기부여를 드렸으면 한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동안 인터뷰를 통해 수 많은 분들을 만나왔지만, 건축을 하시는 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단, 언제, 어떤 계기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부터 시작해 볼까요?

이상혁: 사실 저는 건축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도 모르고 입학해서 대학교 때는 나름대로 작품을 한다고 밤을 새곤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이 재미도 있었고, 시험이나 자격증에 관심을 두는 다른 학과들과는 달리 강의실에서 라면도 끊여먹고 술도 마셔가며 (웃음) 나름 자유롭게 보내는 생활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건축에 진지한 친구들이 건축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면 저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워서 책과 건축잡지를 닥치는 대로 다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대학원 논문을 진행하면서 30년이 넘은 작은 아파트 단지에 사례 조사 차 방문했는데, 그 전까지는 간접적으로 책으로 접하고 제도판에서 피상적으로 고민한 내용들이 주민들의 요구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인해 주거공간들이 자연스럽게 변형되어왔던 모습을 보고서 한동안 그 아파트의 마당에서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처음으로 건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그곳을 들락거리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들과 얘기를 나누었으니까요.

유로저널: 건축가가 하는 주요 업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이것은 건축의 간단한 진행과정을 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처음 건축가를 만나 그들의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건축가는 이를 바탕으로 부지의 맥락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도시,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이너 등)과 엔지니어들(구조, 설비, 교통, 조경 엔지니어 등)과 협력작업을 통해 초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건축가는 디자이너(designer)일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데 있어서 조율자(coordinator)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초고층이나 대규모 건물들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이 과정들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에 한 명이 아닌 다수의 건축가 그룹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경험)들을 하셨는지요?

이상혁: 많은 분들이 비슷하겠지만 저도 대학원 졸업 후에 설계사무소에 입사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면서 건축의 기본적인 실무과정들을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실무를 하면서 설계사무소와 대학교, 정부(시청)과 대학교들 간 협력작업으로 이루어진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면서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건축을 바라보게 되었고요. 그러다 참 흥미로운 경험을 하였는데, 우리나라 3대 사찰중의 하나인 양산 통도사의 장경각이라는 16만 도사기판 전시관을 포함하는 사찰들을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통건축에 문외한 이였던 저에게 이 프로젝트는 정말 힘든 과제였습니다. 많은 사찰과 전통가옥들을 둘러본 후 책상 앞에 앉았지만 무엇인가를 재해석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저에게 들었던 생각은 그냥 좋았다, 아늑했다, 고즈넉했다 등등의 몇 마디였으니까요. ‘공간(space)’이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을 던져준, 참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영국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게 되셨는지요? 특별히 영국을 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이상혁: 한 번쯤 건축을 전공하시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영국으로 오기 전에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직감적이고 굉장히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디자인 과정에 염증을 느꼈던 것 같고, 채우는 것 없이 쏟아 부어야 해서 고갈되던 제 에너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유학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을 택한 이유는 참 단순한데, 건축의 특성 상 가장 도시적인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습니다. 뉴욕과 런던 두 곳이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런던을 택하게 된 것은 Oxford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런던 Heathrow 공항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이 흥미로웠습니다. 아파트라는 근사한 선물이 나오도록 시발점을 제공한 나라이지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얄미웠지만 근/현대적인 것들이 어떻게 혼합되어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유로저널: 영국에서 졸업하신 학교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다른 종합대학들과 달리 AA School은 건축과 관련된 학과들만 있는 아주 작은 사립건축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에서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공원을 디자인한 Zaha Hadid, Rem Koolhaas, Richard Rogers, 등 많은 세계적 건축가들이 그 학교를 나와 활동하고 있고, 이 학교의 진보적인 교육방식이 세계의 건축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들이 지면을 통해 소개된 학교라 간단히 제가 느낀 부분만 말씀 드릴까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학교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제를 정하고 디자인을 진행하는 과정입니다. 물론 자기가 속한 프로그램에서 전체적인 주제가 주어지긴 하지만 학생들이 선택하는 디자인의 시발점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는 한,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건축과 동떨어진 그 어떠한 것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해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상호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건축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결과물이 무엇이 될 지는 초반 디자인 단계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는 건축디자인의 색다른 시도, 즉 건축이 아닌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건축으로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여졌습니다.

유로저널: 현재 근무 중이신 회사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현재 저는 Shanghai Bank Headquarters, Free University, Swiss Re HQ, London City Hall, Millennium Bridge, Crystal Island, Beijing Airport 등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 Foster + Partner에서 근무 중입니다. 40년의 전통을 가진 대규모 설계집단이지요.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도전(challenge)’이라는 동기가 부여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디자인 회사들과 달리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디자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오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Sustainable Design’에 관한 관심은 이 회사가 아주 오래 전부터 추구해 온 디자인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해외에서 건축 공부를 하시고 해외 업체에서 근무도 하셨는데, 한국의 건축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상혁: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학교 설계과정과 실무과정에서 보여지는 공통된 문제는 디자인 진행과정의 부족일 것 같습니다. 학교 설계스튜디오의 경우, 학생들이 초반 설계를 진행해나갈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현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그대로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공공연하게 사회적 이슈화되는 주제를 따르는 등 내적인 문제의식이나 자기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디자인 과정 중에 일어날 내적 호기심이 상쇄되어 결국은 자기 작품에 스스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무의 경우 설계 환경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미비합니다. 그로 인해 설계비가 외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회사로서도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고,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에 투여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들이 부족한 결과들로 이어집니다. 즉 디자인 과정에서 검토되고 수반되어야 할 많은 과정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개선된다면 한국의 건축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한국 건축가가 있는지요? 또 해외 건축계에서 한국의 위치는?

이상혁: 다른 분야와 달리 해외 건축계에서 한국의 위치는 아직 미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해외 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고, 또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시기도 젊어지고 있어서 곧 어떤 화두를 던질만한 건축가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요즈음 한국의 대규모 회사들도 서서히 외국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으니 점점 그 입지가 나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로저널: 건축가로서 직면하게 되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상혁: 건축의 태생적 문제가 미학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에서 감성적인 부분과 분석적인 부분 양면의 칼날로 다른 영역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사고해야 하는 면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건축가로써 업무를 진행해나가는데 있어서 누구나 호소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러한 점이 다른 분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건축, 건축가의 매력이 있다면?

이상혁: 건축가의 매력은 천재 건축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건축가를 예술가라고도 부르지만 다른 예술분야처럼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천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통상 젊은 건축가라고 부를 때도 보통 인상 깊은 작품을 보여준 4,50대의 건축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런 것을 보면 열정을 가지고 상당량의 경험과 인내를 감수해야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야이지요. 일견 힘든 과정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문화를 창조하는 직업이니 탐구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유로저널: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이제 막 건축학과를 입학하는 이들부터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막 진출한 후배들까지)

이상혁: 영국에 오기 전 친한 후배와 함께한 송별회에서 형은 왜 건축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 대답을 못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번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건축이 왜 흥미가 있을까’라고 질문해보니 많은 대답들이 생각나더군요. 문제는 열정을 유지시킬 수 있는 흥미거리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자기 분야에 대한 부단한 관심과 노력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이 창작 활동이다 보니 건축공부를 1,2년만 하더라도 자기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대단합니다. 이것이 동기부여와 열정을 배가 시킬 수는 있으나, 가끔은 자기 개발을 유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실무 현장에서 이 욕심은 자칫 협력 작업의 분위기를 깨뜨리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않았을 때에는 프로젝트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에 자기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디자인에 대한 문제의식과 자기 성찰로 유도하고, 오히려 소통(Communication)을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여 자기 개발을 이끌었으면 합니다.

유로저널: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다면?

이상혁: 아주 소박하지만 건축가로써는 어려운 꿈이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많은 경험을 하고 나면 저희 가족들을 위한 공간을 제게 의뢰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제가 가장 잘 알면서도 까다로운 건축주를 만날 것 같습니다. (웃음) 저도 물론 그 까다로운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겠지요.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 즉 건축주의 요구사항 및 부지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해석될 지 저도 궁금합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그 보금자리가 제가 건축가로서 경험했던 그 모든 과정들을 집약하여 보여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열정을 계속 유지해야겠지요.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롭고 유익한 얘기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유로저널] 독일 :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장 25일부터 4주간 열린다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장 25일부터 4주간 열린다
라인마인교회합창단 11월28일(토) 오후5시 뢰머에서 연주



독일은 기독교 국가인 만큼 대부분의 경축일과 국가 명절이 종교적인 절기로 되어 있다. 특히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온 국민이 즐기는 2대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성탄절기를 맞아 독일은 보통 3-4주간 크리스마스 장이 서는데 올해도 11월 25일을 전후해 크리스마스 이브 전까지 전국 곳곳에서 장이 열린다.

전통적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방문객 수가 많은 성탄시장은 쾰른 성탄시장으로 해마다 약 5백만명이 다녀가며 이 외에도 유명한 성탄시장으로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민과 관광객 등 300만명이 방문하는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장은 올해 30여 미터 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 뢰머 구시청사를 중심으로 파울스플라츠, 마인카이 등에서 11월25일(수)부터 12월22일(화)까지 4주간 열린다.

크리스마스 장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양초, 크리스마스 장식, 호두까기 인형 등 성탄용품들이나 가죽장갑이나 털모자 같은 겨울용품과 함께 각종 먹거리들도 판매한다.

특히 크리스마스 장의 명물로 "글뤼바인"이라는 뜨겁게 데운 포도주가 있다. 한잔 마시면 몸이 훈훈해져 쌀쌀한 날씨에도 추위를 견딜 수 있어 어른이면 누구나 한잔씩 마셔보는데 매년 다른 모티브로 그림을 새긴 예쁜 사기잔에 담아주기 때문에 이 술잔들을 취미로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글뤼바인 술값은 2.5유로, 그리고 별도로 잔값 2.5유로를  내야 한다. 물론 마시고 나서 잔을 돌려주면 2.5유로를 돌려 받는다.

성탄시장이 서는 첫날인 25일 오후 5시에 구시청사 뢰머베르크에 설치된 무대에서 크리스마스장 개막식이 열린다. 페트라 로트 프랑크푸르트시장의 개막 연설에 이어 성탄 노래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국민적 명절인 만큼 이 기간중 여러가지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린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니콜라이교회에서는 매일 9시5분, 12시5분, 17시5분에 타종을 하며,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18시에 관악기연주회가 열린다. 또 전통적인 행사로 뢰머를 중심으로 위치한 10 곳의 교회에서 50개의 종들이 순서에 따라 타종하는 벨연주회가 있다. 올해는 11월28일(토) 16:30-17:00와 12월24일(목) 17:00-17:30 두 번 실시한다. 그리고 12월6일(일) 니콜라우스날을 맞아 뢰머 무대에서 특별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장에는 특별한 순서가 마련돼 있어 동포들의 방문을 추천한다. 다름아니라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소재 라인마인교회 합창단이 뢰머광장 무대에서 한국어-독일어-영어로 캐롤송을 연주하는 특별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연주시간은 11월28일(토) 17:00 부터 약 50분 동안 진행된다.

마침 이날 50개 종이 울리는 교회 벨연주회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뢰머광장에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연주회를 구경하려면 주차문제 등을 고려할 때 일찌감치 서두른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밖에도 12월5일과 6일에는 아이제르너 슈텍(Eiserner Steg)에서 옛 증기열차가 특별운행하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티켓구입 등 자세한 것은 웹사이트 www.frankfurt-historischeeisenbahn.de/ 를 방문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 성탄시장이 서는 시간:
2009년11월25일 – 12월22일, 월-토 10:00 – 21:00, 일 11:00 – 21:00.




유로저널 프랑크푸르트 김운경
woonk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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