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6일 수요일

[유로저널] 유럽전체 :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온 비아 트리오(Via Trio)와 함께

비아 트리오(Via Trio)는 바이올린 이주희, 첼로 서지윤, 피아노 이은혜로 구성된 3중주 팀으로 이번에 새로운 음반 ‘Via Trio International version – 아리랑을 들려주러 유럽에 간다’를 들고 진짜로 유럽을 찾아왔다.

이 음반에는 아리랑을 물론 ‘고향의 봄’, ‘푸른하늘 은하수’, ‘섬집 아기’ 같은 우리들의 동심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의 동요들과 서양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대니 보이(Danny Boy)’같은 곡들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있다.

비아 트리오는 유럽에 도착하여 차량을 렌트해 바이올린, 첼로, 키보드를 싣고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연주 활동을 펼쳤다. 유럽인들은 비아 트리오를 통해 아리랑 및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한국의 동요들을 접했다.

유럽 일정을 거의 마치고 한국으로의 귀국을 이틀 남겨놓은 비아 트리오와 비아 트리오의 기획/제작자인 Hymns Music 송힘 대표를 만나보았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아리랑을 들려주기 위해 유럽을 찾은 비아 트리오와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비아 트리오라는 팀 이름이 독특한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이주희: 네, 비아 트리오(Via Trio)라는 이름은 제가 지었는데, 일단 말이 예뻐서 (웃음), ‘비아(Via)’라는 단어에는 ‘길’, ‘통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저희들의 음악이 바로 그런 길,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유로저널: 비아 트리오의 이번 유럽행은 어떤 계기, 또는 의도로 기획되었는지요?

송힘: 많은 한국의 음악인들이 해외 무대에 도전하면서 미국을 많이 시도하는데, 미국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비해 아직 유럽 시장은 한국 음악인들의 시도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다양성과 전통을 존중하는 유럽의 문화는 한국적인 정서와 멜로디를 담은 비아 트리오의 음악에 더없이 적합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멜로디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유로저널: 그 동안 어떤 일정으로, 유럽 어느 곳에서 연주 활동을 했는지요?

이주희: 저희는 7월 22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했고, 저희가 머물렀던 라인 민박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통해 유럽에서의 첫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라인 민박 주인인 슈나이더 부인, 슈나이더 부인이 초청한 독일인 노부부 등 네 분을 모시고 연주를 했습니다. 이후 독일 바덴바덴 거리 공연, 프랑스 아비뇽 연극 축제에서의 거리 공연, 특히 아비뇽에서는 한국인 참가자가 비아 트리오가 유일했습니다. 이후 다시 독일 하이델베르그 거리 공연, 베를린 거리 공연, 베를린 사랑의 교회 연주, 체코 프라하 거리 공연, 네덜란드 로테르담 교회 연주, 프랑스 파리 국립극장 옆 광장 거리 공연, 노트르담 성당 광장 거리 공연, 그리고 영국 런던 구세군 노숙자 쉼터 공연, 킹스톤에서 개최된 한인축제, 구세군 한인교회 연주, 에딘버러 페스티벌 거리 공연, 그리고 오늘 런던 온전한 교회 연주까지 마쳤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틀 뒤 8월 25일에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유로저널: 이번 유럽 일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송힘: 저는 체코 프라하에서 했던 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거리 공연을 하려면 음향 장비에 필요한 전기를 인근 상점 등에서 양해를 구하고 빌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프라하에서는 주변에 전기를 사용하게 해 주는 상점이 없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도 공연을 못할 뻔 했는데, 다행히 딱 한 곳의 상점에서 전기를 제공해 주어서 30분 가량 허락을 받고 공연을 했습니다. 관객도 참 많았고, 특히 한국인 관객들의 응원과 호응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사실, 다른 곳에서는 간혹 저희가 한국 음악을 연주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저희를 피하는(?) 분들도 계셔서 서운한 적도 있었거든요.

이주희: 저는 독일 하이델베르그 거리 공연이 가장 예쁜 영상으로 떠오릅니다. 공연할 때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저희 공연 의상인 이영희 선생님의 옷이 마침 ‘바람의 옷’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서서 연주를 하는데, 바람에 옷이 날려서 정말 바람의 옷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희가 어느 초콜렛 가게 앞에서 공연을 했는데, 가게 주인 할머니께서 장미꽃을 뿌려주셔서 저희 공연이 더욱 아름답게 장식될 수 있었습니다.

서지윤: 저는 유럽에 도착하고서 첫 거리 공연이었던 바덴바덴 캠프장 카페테리아에서의 연주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야외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첫 공연이라 설레이기도 했고, 관객들의 호응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은혜: 저는 에딘버러에서 가졌던 하우스 콘서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관객들도 많이 와주셨고, 무엇보다 공연 장소가 실내라서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거리 연주는 음향 등 여러가지 여건으로 집중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실내에서는 그런 여건이 잘 갖춰지게 되고, 아무래도 관객분들의 집중도가 높다보니 연주하기가 훨씬 편안합니다.

유로저널: 이번 일정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혹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송힘: 아무래도 비아 트리오 멤버들간 융화의 문제였습니다. 현재 멤버가 올해 2월에 결성 되었고, 불과 6개월 만에 이렇게 함께 생활하며 연주하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멤버들 간 불화가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어도, 음악인들이라 워낙 개성이 강해서 융합의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연주를 할 때는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준 멤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피소드는 워낙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프라하에서 저희가 주차해 둔 저희 차 옆에 주차된 차가 견인되고 있어서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저희 차도 견인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황스러움이란. (웃음)

이은혜: 저희가 렌트한 차가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차여서 큰 악기들과 짐도 싣고 다니다 보니 이동 중에는 늘 짐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서지윤: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첼로 하드케이스를 독일에서 영국으로 부쳤는데 아직 도착을 안 했습니다. 이제 이틀 뒤면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는 꼭 받았으면 좋겠네요. 저에게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첼로 하드케이스가 가장 큰 에피소드입니다.

이주희: 송힘 대표님께서 언급한 주차 위반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전에 역시 프라하에서 진입하면 안 되는 도로를 달리다 경찰한테 잡혔는데, 한국식으로 사정 사정하고 저희 음반도 드려서 겨우 용서를 구했던 게 생각납니다.

유로저널: 이번 유럽 방문을 통해 무엇을 얻으셨는지요?

송힘: 어떻게 보면 저희가 시장개척을 위해 유럽을 찾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더 큰 희망과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유럽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동경했는데, 저희 연주를 보고 박수를 보내고 저희들의 음반을 구입하는 분들을 보면서, 실제로 이번 기회를 통해 그 다양성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시장에 목말라 있었는데 이번 유럽행을 통해 그에 대한 희망을 봤습니다.

이주희: 저는 너무 바쁜 일정에 정신이 없어서 일단 한국에 돌아가봐야, (웃음) 저는 이번 유럽행을 통해 앞으로 제가 소화해야 할 큰 숙제를 얻은 것 같습니다.

서지윤: 저는 특별히 이번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의 부족한 면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더 성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정말 몇 년치 연주를 이번 유럽 일정 한 달에 다 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 앞에서의 부끄러움도 많이 없어지고, 이제는 어디서도 연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은혜: 저는 예전에 여행 차 유럽을 방문했을 때는 그저 이국적인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과 또 함께 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 계획이 있다면?

송힘: 저희 비아 트리오가 유럽의 관객들에게 아리랑 들려주고 떠나면 비록 저희는 잊혀질 지라도 저희가 연주한 아리랑의 멜로디는 이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리랑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게 되고, 그래서 한국을 알게 되고, 또 자연스럽게 저희 비아 트리오도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라도 한국의 멜로디를 전하는 비아 트리오로 세계에 알려지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유럽 한인사회, 한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정 중 그저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만으로 많은 분들께서 저희에게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들이 이렇게 유럽 각지에 많이 계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유로저널: 앞으로 유럽 무대에서 비아 트리오를 더욱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일정 잘 마무리 하시고, 한국에 귀국 하셔서도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아 트리오 홈페이지: club.cyworld.com/viatrio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전유럽 한인 대표 신문 유로저널, 영국 한인 대표 신문 한인신문, www.eknews.net>

[유로저널] 독일 :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현호남-우리의 문화예술을 독일에 알리고 싶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현호남-우리의 문화예술을 독일에 알리고 싶습니다.

요즘 독일의 한인신문들은 <제1회 산다여(山茶如) 축제에 초대합니다>라는 전면광고를 내고 있다.
‘산다여(山茶如)’ 의 뜻은 “차나무처럼 혹독한 추위에서도 굳은 절개를 지키며, 늘 한결 같이 초심(初心)을 간직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이번 행사를 준비 중인 현호남 (사단법인 문예원 원장)씨를 만나봤다.

Q : 행사가 9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 동안이나 진행되는데 이렇게 큰 행사를 준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사실은 10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Q :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A : 김치담그기, 전통다례시연과 여러 가지 체험 행사로 차 시음, 한복입기, 한지공예, 다식 만들기, 종이 접기,
     전통 성년식과 전통혼례가 있습니다.

Q : 많은 행사들을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누가 도와주나요?
A : 한국에 있는 재단법인 한국차 생활예절교육원 산다여 이사장인 언니(현호임) 등 이사 8명이 직접 독일에 와
    서 행사를 함께 진행합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Q : 안내장 만드는 일에 특별히 신경을 쓰셨다던데?
A : 우리나라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 궁인 운영궁에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촬영을
     했습니다.
    팜플랫보다는 엽서가 오래 간직할 수 있겠지요. 액자에 걸어둬도 손색이 없을겁니다.

Q : 지금까지의 반응은 어떤가요?
A : 관심 있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예비 신랑 신부를 위한 전통혼례식과 18~20세의 남녀를 위한 전통 성년식도 무료로 치러줄
    예정입니다.
    지원자 신청을 많이 받을수가 없어서 그들은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게 됩니다.
    
Q : 행사 기간 중 직접 만든 작품도 선보이겠지요?
A : 예, 제가 직접 만든 한지 공예품과 닥종이 인형 작품이 전시되고 한국 다기와 전통예복, 꽃가마등이 전시됩니다. 독일인들에게 녹차를 알리고 거리캠페인도 열립니다. 교민 1세들도 뿌리교육을 위해 자녀들과 함께 오셨으면 해요.
  
Q : 행사 전에 다른 곳에서 사전 준비가 있다던데?
A : 한국정원에서 축제를 열기 전인 9월 5일과 6일, 햅스타인 시에서 준비차원의 행사를 갖습니다.
     햅스타인에 제가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앞으로 프랑크푸르에 한국전통문화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시장님도 참석합니다.

Q :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특별히 바라는 게 있다면?
A : 내년에는 더 큰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기대해 주시고 이번 행사에 주위분들과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현호남 원장 소개
  수원에서 태어나 상명여고와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결혼과 함께 1981년 독일에 이민한
  후 명품 <서왕모드> 매장을 운영했다. 수익금 대부분을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에 사용하고 각종 한인회 행사에
  는 서왕모드 의상을 상품으로 후원하는 등 여러 한인 단체 임원으로 활동하며 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업을 접고 재독동포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서왕쉼터를 운영했었으며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들을 알리
  기 위해서 그는 꽃꽂이, 종이접기, 비누공예, 종이조각 등을 가르칠 수 있는 10여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준비된 마음으로 독일과 유럽지역에 한국의 전통을 알리고자 한다.

****행사장 안내:
       9월5일과6일
                      Lanzenhainer Str.6a,  36358 Herbstein
       9월11일~13일
       제1회 산다여 축제 장소: 프랑크푸르트 한국정원(Greuneburgpark)
                                        Sebastian‐Rinz‐Str. 4/2,  60323 Frankfurt am Main


독일 유로저널 오애순 기자
mt1991@hanmail.net
    <전유럽 한인 대표 신문 유로저널, 영국 한인 대표 신문 한인신문, www.eknews.net>

[유로저널] 유럽전체 :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하동욱, 라윤선 님과




하동욱
- 경남 마산 출생
- 광운대학교 환경공학과 4학년 재학 중

라윤선
- 전북 무주 출생
- 대학 졸업 후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사회복지 공부 중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두 분을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먼저 언제, 어떠한 계기로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하동욱: 저는 2007년 겨울 인도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제가 전혀 몰랐던 사실, 즉 세상이 뭔가 공평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인도현지에서 해외봉사활동 중인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친구들이 주로 유럽 국가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다들 자신들의 나라를 자신 있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부러웠고, 저도 우리 대한민국을 저렇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해외봉사활동에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무릎팍 도사에 한비야 씨가 나와서 2009년을 사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에는 독립을 위해 살았고, 독립 후 한반도 전쟁 이후에는 재난 복구를 위해 살아 왔습니다. 2009년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방안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인도 등 세계 각지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도움을 주는 활동에 대한 생각을 인도 여행 당시에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라윤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프리카, 인도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훗날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가 많은 사진 작가들이 NGO단체와 협력해서 사진을 통해 홍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잠시 머물며 사진을 찍어서 그들의 삶을 전달하는 1차원적인 도움이 아닌, 제가 먼저 그들의 삶에 동참하여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그들과 교감이 된 후에 사진을 찍는 게 맞는 순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떠나야겠다고 구체적으로 결심한 것은 언제, 어떠한 계기였는지요?

하동욱: 2008년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저희 과에서 개최한 취업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취업특강에서 만난 강사님들과 회식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제가 저희 환경공학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어서 강사님들과 교수님들과 함께 회식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 동안 잊고 있었던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면서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 다음 날부터 해외봉사활동 단체를 찾기 시작했고, 이틀만에 지금의 단체를 찾아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뭔가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별로 오래 걸리는 성격이 아니라 1월 초에 단체를 찾아 바로 지원하고 2월 말에 영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라윤선: 한국에서 어린이 보육시설 및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좀더 폭넓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NGO단체를 통한 해외봉사활동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의 봉사활동은 마음은 있어도 처음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시작하게 되었는데, 해외봉사활동은 까다로운 자격조건 때문에 저를 망설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CICD는 국적, 연령, 학력 등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그 과정에서 혹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하동욱: 부모님께서는 사실 제 인생에 크게 관여하시지 않는 편이라 크게 반대는 없으셨습니다. 또한, 두 분 모두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들이라 충분히 이해해 주셨습니다. 다만, 조금 걱정 하셨던 점은 제가 4학년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고, 부모님 생각은 취업을 준비하기 위한 영어공부나 자격증 취득을 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장기 해외봉사활동 보다는 차라리 어학연수를 가라고 추천도 하셨지요. 사실, 지금도 힘들면 돌아와서 어학연수를 가라고 하십니다. (웃음)

라윤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걸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곤 했습니다. 저의 결정에 항상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결정과 책임은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부모님들도 저를 믿어주시고 지켜봐 주셨습니다. 이번 또한 마찬가지였고, 부모님 역시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물론 내색은 안 하셨지만 걱정이야 하시겠지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30대 초반인 저의 연령대엔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자유로운 입장도 아니니 더욱 그러셨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로저널: 현재 참여하고 계신 영국의 CICD라는 단체는 어떻게 선정하셨는지요?

하동욱: 우선 인터넷으로 해외봉사활동을 찾다보니 가장 먼저 한국의 유명한 단체들이 보이더군요. 그러나, 그런 곳들은 대부분 종교적 성향이 강한 단체거나, 제 생각에는 해외봉사활동 지원자격으로는 과한 자격조건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활동기간도 두 달 정도가 가장 긴 프로그램들었습니다. 사실, 두 달 정도면 봉사활동이 아니라 여행에 가까운 의미일 듯 하고, 봉사활동을 대상 지역의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을 방해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러다 보니 해외단체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영국의 CICD라는 단체를 알게 되어 여러모로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이번에 참여하게 되는 아프리카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라윤선: 영국에서 6개월 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마치면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는데 저희가 참여하게 될 프로젝트들은 크게 3가지로 분류 됩니다. 길에 버려졌거나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초등교육을 진행하는 CHILD AID 프로젝트와 HIV/AIDS 퇴치를 위한 TCE(Total Control of the Epidemic) 프로젝트, 그리고 유럽각국에서 수집한 헌옷들로 운영하는 Clothes and Shoes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저희가 가게 될 곳은 콩고 민주공화국이고 TCE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HIV/AIDS 퇴치를 위한 프로젝트로, 이에 대해 무지한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질병에 관한 정보 및 에이즈의 위험성을 알리고 에이즈 퇴치를 위한 캠페인 등을 벌이게 됩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교육 프로그램이 끝나는 11월부터 콩고 민주 공화국 TCE프로젝트로 투입 되어 2010년 5월까지 6개월간 활동하게 됩니다.

유로저널: 현재 영국에서 참여하고 계신 CICD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라윤선: CICD의 프로그램은 학교수업, 체험실습, 모금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선 대부분 아프리카 및 AIDS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실제적인 상황들을 직접 체험해 보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모금활동은 학교를 떠나 원하는 영국 내 다른 지역에 가서 학교에서 발행한 잡지를 길거리에서 판매해 아프리카 봉사활동 경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유로저널: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행복하거나 보람을 느낄 때는?

하동욱: 누군가 제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Korea’라고 말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불과 5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던 나라의 국민이 (물론 제가 그 시절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 때 받았던 도움을 다른 곳에 나누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이 스스로 가장 대견합니다. 물론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라윤선: 모금활동을 다니면서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을 때면 ‘내 인생이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받은 도움을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하동욱: 남을 돕는 행위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역시 가장 힘든 점은 재정적인 문제와 연관된 모금활동입니다. 저희가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서는 일인 당 3200파운드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돈은 순수하게 저희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입니다. 즉, 그 외의 경비, 학비, 생활비 등은 모두 저희들의 사비로 부담하게 되고, 따라서 필요한 예산을 거리에서 잡지를 판매해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영국의 거리에서 잡지를 판매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물론, 간혹 좋은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 무시를 당합니다. 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백인들 보다는 흑인들이나 인도인들이 비교적 관심을 보이고 잡지를 사주곤 합니다. 사실, 여기서 오는 죄책감이나 스트레스가 가장 힘듭니다. 아프리카나 인도로 가서 활동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나 인도인들에게 잡지를 파는 아이러니가 가장 저희를 힘들게 합니다.

라윤선: 저는 워낙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거리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잡지를 판다는 것 자체가 힘들 뿐더러 동양인이라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몇 번은 용기를 내어 한복을 입고 시도를 해보았으나 몇몇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길거리에서 여러 번 울기도 했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다면?

하동욱: 봉사활동을 통해 제가 뭔가 엄청난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도 가져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정말 아주 작은 활동이라고 생각 합니다. 제가 지금 25세로 100세까지 75년을 더 살수 있다고 가정 한다면, 앞으로 70년 이상은 뭔가 세상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제 꿈입니다.

라윤선: 콩고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면 인도에 들러서 배낭여행을 하고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한국으로 귀국갈 계획입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및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훗날 제가 아프리카나 인도 등으로 다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제가 찍은 사진을 통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더 어려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두 분의 모습에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일정을 마치시고, 앞으로 더욱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귀한 일들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 후기: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느라 바쁜 이 시기에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일에 삶의 일부를 희생하고 있는 두 젊은이의 모습에 한 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두 분의 사연을 통해 공감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작은 정성으로 값진 일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콩고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하동욱, 라윤선 님을 후원해 주실 분들께서는 아래 연락처를 참조하셔서 도움의 손길을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 연락처]
모바일: 079 4117 7907
하동욱: spacek111@naver.com
라윤선: kft0406@naver.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kft0406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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